교육부가 2025년 새로운 고교체제개편을 예고했다. 내년 상반기까지 시안을 마련한 뒤 오는 2024년 시범운영을 거쳐 이듬해 전면시행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 지난 7월 29일 교육부는 올해 업무계획에서 외고 폐지 방침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느닷없는 폐지 방침 언급은 외고에 큰 충격을 줬다. 외고 교장단은 격한 어조의 성명을 발표하며 철회를 촉구했고, 학부모들 역시 거리로 나섰다. 이들은 정부가 충분한 의견수렴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한데다 신뢰성마저 저버렸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전국외국어고등학교 교장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향근 안양외고 교장은 지난 <새교육>과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와 달리 새 정부에선 공정하고 상식적인 교육정책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지금은 허탈감과 분노가 앞선다”고 솔직한 심경을 토로했다. 지난 1984년 외고가 도입된 이래 교육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또다시 폄훼와 폐지의 대상이 된 것에 대한 서운함이 물씬 묻어났다. 교육부가 미래지향적 관점을 폐지 이유로 든것에 대해서는 “교육부엔 미래가 있느냐”는 말로 쏘아붙였다. 이 교장은 서명운동과 집회, 법적 대응 등 철회를 위한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수월성 교육의 중요성과 교육정책의 신뢰성을 강조한 뒤, “교육을 제발 정치적 논쟁의 대상으로 삼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교육부가 외고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그 이유가 뭐라고 보나.
“교육부가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외고를 폐지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 그동안 전국의 외고들은 많은 노력을 통해 외국어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분야의 글로벌 리더를 키워냈고, 사회통합에 헌신적 기여를 해 왔다. 이 같은 교육적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었는지 의문이다.”
- 교육부는 외고가 미래사회에 적합하지 않은 측면이 있어 폐지하려 한다는 입장인데.
“도대체 교육부가 생각하는 미래 사회에 무엇인가? 미래 사회에 적합한 교육은 무엇인가? 그리고 과연 교육부는 미래 사회에 적합한가? 미래교육을 말하려면 적어도 10년, 20년은 내다보고 교육의 방향을 잡은 뒤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오히려 우리 아이들을 한곳으로 몰아 당장 입맛에 맞는 교육만을 한다면 대한민국은 더 이상 미래지향적인 국가가 아니다. 교육은 포퓰리즘과 정치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더라도 교육은 지속가능해야 한다.”
- 학부모들은 외고 폐지가 정치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번 결정의 배경이 교육적 관점인지, 정치적 관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대한민국은 「헌법」에서 보장한 여러 권리와 의무에 책임을 다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기본적으로 이번 외고 폐지 정책은 「헌법」에서 보장한 국민의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 정치적 관점에서 결정되었다면 더 큰 문제이다. 국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선거를 통해 선출된 사람들이 국민의 기본권리를 무시한 결정이기 때문이다. 공정과 상식,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교육의 다양성과 학생·학부모의 교육선택권을 확대하겠다고 했던 대통령의 선거공약과 인수위원회의 공약은 다 어디로 갔는가.”
- 절차적 민주주의를 무시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만 5세 입학처럼 외고 폐지 역시 공론화 과정이 생략된 채 일방적으로 발표됐는데.
“집에서 가구를 하나 버릴 때도 가족들과 상의해서 버린다. 또한 학교현장에서 수학여행 장소를 변경하거나 진행 여부가 불가피하게 번복이 될 때도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들과 협의를 통해 의견을 수렴한 후 최종 결정을 한다. 하물며 국가의 중요 정책을 발표하는데 공청회나 토론회 한번 없이, 그것도 업무보고에서는 하지도 않고 기자들과의 사전 브리핑에서만 언급했다는 것은 평소 교육주체에 대한 존중이 전혀 없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이는 교육의 비전과 전략, 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소통하는 시스템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 외고 폐지를 철회하지 않으면 법적 대응 등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했다. 구체적인 방안이 있나.
“지금은 중학교 학생들이 진로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이러한 때에 외고 폐지를 운운하며 학교 선택에 혼란을 주고 있다. 학생과 학부모 모두 분노와 허탈감을 느낀다. 전국외고교장협의회와 학부모협의회가 철회를 요구하며 성명을 발표하고 거리로 나간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학생들의 교육선택권의 불확실성을 해소할 것이다. 또 자유로운 고교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외고 폐지 철회 서명운동과 집회 등을 계획하고 있다. 이후 진행은 교육부의 결정을 지켜보며 대처해 나갈 것이다. 필요하다면 소송 등 법적 대응도 불사할 각오다.”
- 실제 외고를 준비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은 이러다 폐지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외고의 위기는 예전부터 계속되어왔다. 하지만 그 어려움을 기회로 만들어 지금도 우리 교육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번 위기도 기회로 만들 것이다. 항상 학생들과 학부모님들께 하는 말이 있다. “믿고 맡겨 주신 만큼, 또 믿고 지원해 주신 만큼 신뢰와 정성을 다하겠습니다”, “좋은 선택은 좋은 결과를 낳게 합니다”라고 한다. 모든 외국어고등학교 교육공동체는 외고의 안정적인 지위를 확보하고, 외고가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인식을 모든 국민에게 심어줄 것이다. 경쟁력 있는 학교교육과정 운영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 윤석열 대통령을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하는 윤석열 정부의 교육에 거는 기대가 크다. 그런 의미에서 세 가지를 주문하고 싶다. 첫째, 교육적인 측면에서 수월성 교육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학생·학부모의 교육선택권을 보장했으면 한다. 사회계층의 편 가르기나 평등교육을 앞세워 잘하는 학교를 끌어내리는 정책은 교육발전을 저해할 뿐이다. 둘째, 백년지대계인 교육은 교육정책의 일관성과 정부·교육당국의 신뢰성이 제일 중요하다. 셋째, 교육이 정치적 논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아 실패하는 예전의 전철을 밟기보다 교육의 주체들이 주도적으로 교육을 혁신할 수 있도록 보다 더 많은 자율권과 힘을 실어줬으면 한다. 지금 많은 외고 가족들은 불안과 허탈, 분노의 감정을 감출 수 없다. 대통령께서 우리들의 진심을 이해하고 교육수요자와 교육주체들의 입장에서 (외고 폐지를) 재고해 주시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