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연구소장과 모함

2022.10.12 23:55:18

필자는 대학 교수이며 대학 여성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2020년 경자년 새해를 맞이해 먼 곳에 있는 친구에게 인사겸 안부를 전하러 전화를 걸었다. 덕담을 담은 인사가 오가고 다음을 기약하며 전화기를 놓으려는 즈음 친구는 올해 필자에게 뒤를 꽝치는 나쁜 일이 생길 것 같다며 건강에 유념하라 했다.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주역을 공부한 뒤 모임만 있으면 운수를 봐준다고 하여 친구들은 생년월일을 맡겨놓고 있다. 평소 사주팔자나 토정비결을 단지 재미로 여기고 있는 필자는 고맙다고 하고 가볍게 인사를 마쳤다.

 

정년을 2년여 남기고 안식년을 보내고 있던 필자는 인생 2막을 위한 준비로 심신이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일요일이면 집 근처 종교시설에 가서 전능하신 신께 인사도 드리고, 안면있는 분들과 일상을 주고 받고 단체에 필요한 활동도 하며 지냈다.

 

평소와 다름없는 일요일이 돌아오고 늘 그러하듯이 남편과 함께 한 주일을 잘 지냈음을 감사하며 성스러운 신의 영이 가득한 곳에 들어갔다. 젊은 날에는 신의 존재를 학교에서 철학으로 배웠으나 어른들이 돌아가시고 건강에 대한 필요성과 관심이 늘어가면서 장례식에서만 보이던 내세가 친구들 대화의 주제로 올라오고 자연스레 종교의 무게감이 커져갔다.

 

평소처럼 예배의식을 마치고 커피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장소에 앉아있자니 불쾌한 시선이 느껴졌다. 자주 마주치므로 목례는 하였으나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던 신자분이 째려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하면서 별 생각이 없었고 때마침 일을 마치고 온 남편과 집으로 왔다.

 

그 후로도 남편과 가까웠던 신자들의 기분 나쁜 움직임들이 지속되었다. 느끼한 시선으로 바라본다거나 평소에는 살갑게 지내던 사람이 ‘잘도 지내시네요’라고 비아냥거리고, ‘우리 집은 무슨 아파트 몇 동 몇 호에요’하고 묻지도 않는 말을 한다든가, 자리에 앉아 있으니 옆에 다른 신자가 앉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집고 들어와 손을 잡으려는 부도덕함을 보였다. 아주 점잖은 분으로 알려져 있으며, 사회적 신분도 있는 사람이다.

 

'이것이 도대체 무슨 일인가?' 몇 달을 이유를 모르고 지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커피숍에 앉아 있자니 늘 알고 지내던 신자가 필자를 째려보던 사람과 함께 양해도 구하지 않고 무례하게 필자 앞의 의자를 잡아채고 당겨 앉았다. 그리고는 "도대체 어떤 사이인데 자동차를 주었나요?"하고 물었다. 또 다른 신자는 필자에게 와서 낮은 목소리로 '남편 분이 곧 이혼할 거예요" 하였다. 궁금했던 문제를 알게된 순간이다.

 

이들은 같은 종교를 믿고 있다는 사실 이외에 필자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무례를 거침없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의 전말은 5년 전, 남편이 생활이 어려워 끼니도 어렵고, 자동차도 없이 걸어서 새벽부터 한밤중까지 성전건립에 헌신하는 신자에게 오래된 자동차도 주고 나름의 적절한 도움을 주려 노력한 것인데 주인공이 필자로 바뀌고 남녀관계가 된 듯하다. 모함과 이간의 목적은 개인의 평판을 떨어뜨리고, 사이좋은 관계를 틀어지게 하려는 것이다. 늘 남을 위한 기도와 평화를 구하며 훈련을 해도 인간의 뒤틀린 심사는 절제가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왜 남편이 한 일이 필자가 한 일이 됐으며, 남녀간의 불륜으로 각색되고, 종교시설이 새롭게 변화를 시도하는 시점에 발생했을까? 충격적인 이슈가 필요했고, 한국 정서상 여성의 불륜은 사실에 관계없이 치욕스러울 것임으로 필자는 조용히 있을 것이며, 가정내 불화가 일어나 해체됨을 전제했을지 모른다. 사건을 계획한 방법은 치졸하고 죄질은 그악하다. 한국 사회는 이러한 치사함이 여전히 득세하고 있다. 승진심사에서도 통장선거에서도 작은 단체의 회장선거에서도 들리는 일이다.

 

필자는 여성연구소 소장으로 미국 미주리대학과 국가 미래의 근본으로서의 여성과 아동, 인구정책, 질병과 실업 등으로 무너지는 가족을 돕기 위한 법률사회복지, 금융사회복지, 의료사회복지정책에 대해 양대학 교수들의 발표와 토론, 연구를 담당했지 여성의 낮은 위치와 피해, 성폭력 등은 주제에 없었다.

 

그런데 필자가 당사자가 된 것이다. 그간 필자가 알고 있었던 세계는 허상이었다. 인간은 사라지고 음식을 보며 달려드는 돼지의 게걸스러움과 탐욕에 이글거리는 식탐, 그동안은 쳐다만 보던 것을 마음대로 휘저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앞뒤 안가리고 드러내는 적나라함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간은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 키워내야 한다는 대학자들의 절절한 깨달음과 인간교육이 떠올랐다. 그 혐오스러움과 경멸스러움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덕택에 필자는 필자가 여성이었음을 끄집어 기억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여성연구소 소장이었음을 상기했다. 무엇이든 해야하지 않을까? 범죄학을 다루는 이수정 교수가 TV에서 강조한 것은 강력한 처벌만이 답이라는 것이다.

 

필자의 아들들은 "어머니는 모함 받을 위치가 되지요. 아무나 모함을 하나요?"하며 응원을 하거나 "상대적으로 어머니가 약하다고 생각했나보네요. 인간임을 포기한 사람은 어디든 있어요"하며 든든함을 보여주었다. 

 

그 위치가 어떠하든 상대를 특히 여성을 밑바닥으로 끌어내려 시궁창으로 만들고, 승진이나 자리의 필요한 이득과 게슴츠레한 시궁창의 이득까지 손쉽게 얻으려는 불쌍놈의 천격과 치졸함이 이 사회의 토양인 모양이다.  미혼의 여교수들은 풍경 좋은 호텔커피숍에 홀로 앉아 차 한잔의 여유를 만끽하기도 어렵다. '실연하였네' 등 카더라 소식통이 발동한다는 것이다. 의도치 않게 한동안 사람들에게 즐거운 가십거리를 제공하는 '선(善)'을  베풀었고,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정의'를 행해야 한다는 듯 마녀사냥에 신나게 하였으므로 또  의도치 않게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시원함'과 '고소함'을 선물하는 '선(善)' 까지  베풀게 된 듯하다.

 

사실 필자가 누구를 만나든 말든 그것은 필자의 개인사이며, 필자의 가족사이다. 그럼에도 왜그리 집단적으로 관심을 가지며 가당치도 않은  '정의' 타령인가. 일의 시작은 허세와 배은망덕으로 생각되나 그를 이용한 사람들은 황색스캔들이 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잘 알고 적절한 시기에 활용한 것으로 생각한다. 덕택에 평소에 점쟎음, 경건함, 상냥함으로 포장한 사람들의 생생한 진실을 알게 된 것은 하나의 수확인가? 여성을 해코지하는 강력한 무기로 활용되는 치사한 황색스캔들 문화. 현장에서 생생하게 그 내용을 겪은 필자는 불필요한 에너지와 시간의 낭비가 헛되지 않도록 차사함의 문화를 바꾸는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노력하려한다. 

 

이 글을 쓰고 공개하려하자 '종교시설에 누가 된다' '예상치 못하게 피해보는 사람들이 생긴다' '필자 본인과 가족들에게도 좋을 일이 없다' 등 여기저기서 만류하는 손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개하여 알리는 작업을 시작으로 여성으로서, 또한 여성연구소 소장직을 맡았던 책임을 조금이라도 지어보려한다.

오은순 공주대 교수 esoh@kong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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