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학부모상담전략❷ 

2022.11.07 10:30:03

 

학부모상담이 끝나면 진이 빠진다. 학생상담보다 2~3배는 힘들다. 나도 작년까지 학부모였고, 지금도 여전히 자녀를 키우는 엄마인지라, 부모 마음을 모르지 않기에 더 힘들다. 담임교사도 마찬가지다. 말썽을 피우는 학생과 생활하면서 힘들었던 부분이 있기 때문에, 부모의 훈육방법에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혼날 짓을 했으니, 화가 나서 속상한 마음에 그럴 수 있지’라고 학부모 마음에 더 공감이 갈 때가 있다.  

 
가장 혼란스러울 때는 ‘학생이 표현한 부모의 모습’과 ‘내가 상담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부모의 모습’이 너무나 다를 때이다. 순간 학생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자기중심적으로 뭔가 과장해서 이야기한 것은 아닌지, 내가 학생의 말을 순진하게 믿고 잘못 판단한 것은 아닌지 갑자기 불안해지기도 한다. 특히 학생이 평소에 거짓말을 자주 했거나, 문제행동을 반복했다면, 그 불신은 더 커진다. 자칫하다가는 학생의 말보다 부모의 말을 더 신뢰하는 함정에 빠져, 학생의 힘듦을 외면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하지만 아이 앞에 서 있는 학부모와 교사 앞에 서 있는 학부모의 모습은 다를 수 있다. 교사와 통화를 하거나 면담할 때의 학부모는 그나마 이성적인 상태지만, 아이 앞에서는 부모의 감정을 마구잡이로 배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서는 학부모상담에서 흔히 빠지는 함정을 살펴보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해본다.

 

상담하며 알게 된 이야기를 학부모에게 말해야 할까?
학생과 상담한 내용을 학부모에게 공개해야 하는지, 공개한다면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깊은 고민에 빠져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학생과의 관계를 위해 비밀을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학부모에게 학생의 상황을 알릴 것인지 결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간혹 학생에게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안심시킨 후, 학부모에게 ‘아이에게는 아는 척하지 말라’면서 고스란히 내용을 전달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비밀은 입 밖으로 나가는 순간,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무심코 ‘담임선생님이 그러시는데…’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담임교사와 학생과의 신뢰는 깨져버린다. 따라서 꼭 전달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학생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전달할 내용을 사전에 아이와 함께 정하는 것이 좋다.

 

(상담이 모두 끝난 후) “○○아, 오늘 상담 내용 중에 이 부분은 부모님이 아셔야 할 것 같아. 선생님은 비밀유지의 의무도 있지만, 학생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학부모에게 학생의 상황을 알려드려야 할 의무도 있거든. ○○이에게 진짜 무슨 일이 생긴다면, 부모님은 더 속상해하시고, 더 힘들어하실 거야. 선생님이 부모님께 어디까지 이야기하면 괜찮겠니? (아이와 전달할 내용을 상의한 후) 이렇게 이야기하면 괜찮을까? 선생님이 부모님께 전화 드리기 전에 ○○이가 먼저 ‘학교에서 상담을 했는데, 오늘이나 내일 부모님께 연락하신다고 했어요’라고 말해줄래? 언제쯤 시간이 괜찮으신지 여쭤본 후, 쌤에게 알려주고. 할 수 있지?”

 

대략 10명 중 8명은 부모님과 전화통화하는 것을 허락한다. 나는 상담기록지에 학생과 결정한 전달내용을 기록한 후, 학생이 직접 부모님의 전화번호를 적도록 한다. 무언의 ‘개인정보활용 동의서’이다. 학생이 부모님의 전화가능시간을 알려주면, 학교전화로 통화를 시도한다.   

 

“어머니, ○○이와 상담을 하던 중 이런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래서 요즘 많이 힘들었었나 봅니다. 혹시 집에서도 예전과 다른 점이 있었나요? 아, 더 자세한 내용까지는 ○○이가 비밀로 해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아마, 어머니께서 먼저 ‘학교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는데, 엄마에게도 이야기해 줄 수 있겠니?’ 하며 말문을 여시면, ○○이가 이야기할 거예요. 엄마에게 말하고 싶었는데 엄마가 걱정할까 봐, 혼날까 봐 겁나서 말을 못 했다고 하더라고요. ○○이와 이야기 나눠 보신 후, 궁금하시거나 더 나눌 이야기가 생기시면 지금 이 번호로 연락주시면 됩니다.” 

 

물론 동의절차없이 즉시 학부모에게 알려야 하는 상황도 있다. 자살계획 혹은 타인을 다치게 할 계획을 하고 있거나, 임신을 했거나, 아동학대나 범죄에 노출되어 있을 때이다. 이럴 때는 학생의 의사를 존중해주며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아닌 왜 알려야하는지 설명한 후, 절차에 따라야 한다. 학생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 그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주장, 누구 말이 맞을까?
종종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는 학부모를 만난다. 자녀에게 원하는 것도 거창(?)하지 않다. 지각·결석하지 말고 학교 잘 다니고, 친구들이랑 별 탈 없이 사이좋게 지내고, 자기 방이라도 좀 잘 치우고, 본인이 먹은 것이라도 설거지해놓고, 핸드폰은 적당히 하고, 돈도 아껴 쓰고…. 듣다 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틀린 말이 없다. 그래서 부모님이 혼낼 만하다는, 자녀를 올곧게 성장시키기 위한 양육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본인이 잘못한 부분은 쏙 빼고, 부모가 혼낸 부분만 과장해서 말했구나’라며 학생을 의심하기도 한다.  

 

“선생님, 저는 공부하라고 한 적도 없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 가는 것, 그거 하나를 안 해요. 수십 번을 깨워도 안 일어나고, 늦었는데 빨리 준비해도 시원찮을 판에 세월아 네월아, 씻고 밥 먹고 화장까지 곱게 하고 있기에, 지각하지 말고 빨리 서두르라고 몇 마디 했더니, ‘신경 쓰지 말라’면서 짜증을 내더라고요. 엄마한테 무슨 말버릇이냐고 했더니, 이번에는 자기 방문을 걸어 잠그고 안 나오는 거예요. 학교 안 갈 거냐고, 빨리 가라고 또 잔소리하고…. 자기가 알아서 잘하면 제가 왜 잔소리하고 혼을 내겠어요. 자기가 하는 생각은 안 해요. 저도 아주 속상해 죽겠습니다.” 


이번엔 아이의 말을 들어보자. 분명 같은 상황인데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오늘 아침에 학교에 가려고 나오는데, 엄마가 갑자기 욕을 하잖아요. 그딴 식으로 학교 다닐 거면 그냥 때려치우라면서. 아, 진짜, 짜증나요. 맨날 성질만 내고. 무슨 말만 하면 말대꾸한다고 욕하고.” 

 

이쯤 되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이 있다. “네가 잘못을 안 했는데 엄마가 덮어놓고 욕을 했겠니? 어머니 말씀 들어보니까, 틀린 말씀 하나 없더라. 지각할 것 같아서 잔소리 좀 했다고, 엄마한테 대들고, 문 닫고 들어가고. 그런 말이 듣기 싫으면 네가 알아서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최악의 반응이다. 아이는 이후부터 마음을 닫을 것이다. 맞는 말이라서 반박할 수 없고, 자신이 잘못한 부분도 있기에 말해봤자 공감받지 못할 것을 안다. 담임교사와의 거리도 그만큼 멀어진다. 그럼 잘못된 행동을 수정하고, 본인이 더 잘하면 되지 않을까? 역시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말처럼 행동 바꾸기가 쉬우면 세상에 안 될 일이 없다. 


그럼 누구의 말을 신뢰하며, 어떻게 상담을 이어 나가면 될까? 학부모와 학생의 말은 서로 다르지 않다. 학부모는 갈등이 생긴 상황을 설명했고, 학생은 엄마가 드러낸 감정을 중심으로 설명했을 뿐이다. 그럼 누구의 말이 상황을 더 잘 설명하고 있을까? 나는 학생의 말이 더 정확하다고 본다. 몇 번을 깨워도 안 일어나서 지각하게 생긴 딸이 느릿느릿 준비하고 있을 때, 평정심을 유지하며 차분하고 부드럽게 타이르는 부모보다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는 부모가 더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부모상담을 이어가다보면 실토하는 경우가 많다. 속상한데 무슨 말인들 못하겠느냐는 항변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속상해도 하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은 있다. 부모가 드러낸 ‘선 넘은 부정적 감정’은 아이에게 크게 두 가지의 문제를 남긴다. 하나는 ‘아, 속상하면 욕(폭력)을 해도 되는구나’라는 그릇된 인식을 갖게 한다. 또 다른 하나는 왜 혼났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자신에게 욕한(폭력을 휘두른) 부모만 남는 것이다. 그래서 행동은 수정되지 않고, 갈등만 깊어진다. 중요한 것은 화난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이다(욕이나 폭력 말고도 우리는 화난 감정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 

 

“일찍 일어나서 학교에 왔으면 아무 문제없었을 테니, 혼나도 싸네요. ○○이도 본인이 잘못한 건 잘 알고 있어요. 문제는 어머니께서 속상한 마음에 ‘욱’하고 나간 말이 ○○이에게는 상처가 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엄마의 말과 행동에 오해가 생기고, 그러면서 점점 사이가 멀어지고, 자꾸 싸우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화가 나면 저도 모르게 말이 막 나와요. 속상하니까. 속상한데 무슨 말인들 못 하겠어요.”
“○○가 ‘아, 엄마가 속상해서 욕을 했구나’라고 이해하길 바라시나요? 만약 이해한다면 ○○이도 속상하면 욕해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속상한 마음을 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을 어머니께서 먼저 보여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욱하고 먼저 터져 나오니까….”


“음, 화가 날 땐, 무조건 ‘커피 먹고 이야기하자’를 외치세요. 일종의 타임아웃입니다. 물이 끓어 넘치려고 할 때, 찬물을 조금만 넣어도 가라앉듯이, 끓어오르는 감정을 잠깐 식히는 거예요. 커피 끓이는데 3분, 뜨거운 거 마시는데 3분 이렇게 몇 분이 지나가면 감정이 가라앉고 이성이 떠오르게 되요. 그러면 그때 말씀 하세요. 화난 감정이 없어지지는 않지만, 적어도 욕이 튀어나오지는 않을 겁니다.”

 

아이 앞에 서 있는 학부모와 교사 앞에 서 있는 학부모는 다를 수 있다
우리는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처럼 생겼을 거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흉악범을 잡아놓고 보면 지극히 평범한 얼굴이라서 더 깜짝 놀라곤 한다. 학부모도 마찬가지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간혹 “어머니와 전화통화를 하거나 만나 뵈면 너무 젠틀하시고, 괜찮으세요. 그래서 어디까지 아이의 말을 믿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라는 고민을 듣는다. 그럴 땐 이렇게 답하곤 한다.  

 

“아이 앞에 서 있는 학부모와 교사 앞에 서 있는 학부모는 다를 수 있어요. 우리도 집에서는 쥐 잡듯이 혼낼지언정 밖에서는 웃으며 자상한 엄마인 척하잖아요. 담임교사 앞에서라면 본색을 드러내기 더 쉽지 않죠. 하지만 화가 난 상태라면? 그래서 아이에게 퍼붓는 상황이었다면? 좀 다른 모습이지 않을까요?”   

 

사람은 언어로만 말하지 않는다. 표정·몸짓(행동)으로도 말한다. 잔뜩 굳은 표정과 불끈 쥔 주먹으로 “아니, 나 화 안 났어. 진짜야”라고 말한다면, 화가 난 걸까 안 난 걸까. 언어로 표현된 말보다 표정·몸짓으로 표현된 말이 더 진실에 가깝다.    
“가족이라서 더 상처받았어요.” 아이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이성적으로 상황설명을 하는 부모의 말도 틀리지 않다. 하지만 ‘가족이라서 더 상처받았을 그때의 감정’을 먼저 다독여주자. 이후 왜 부모님이 이런 감정을 드러내게 되었는지 상황설명을 듣고 난 후, ‘아, 너의 이런 행동 때문에 부모님이 화가 나셨던 거구나’라고 잘못을 일깨워줘도 늦지 않다. 아니, 그래야 자신의 잘못을 비로소 받아들인다. 스스로 알아채야 행동변화도 기대할 수 있다.
 

김미리 서울세그루패션디자인고등학교 전문상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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