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이 최근 세간의 화두가 되고 있다. 흔히 문해력은 ‘문서화된 정보를 이해·활용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된다. 혹자는 ‘남의 글을 읽고 이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필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해석하는 능력이고, 나아가 ‘나는 어떤 관점을 갖고 있나’를 고민하고, 주변인과 대화하는 능력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정의한다(정남환, 2021). 하지만 이렇게 넓은 의미로 사용하면 문해력 저하의 원인분석이나 문해력 증진방안 제시의 초점이 흐려지므로, 이 글에서는 ‘타인의 글을 읽고 이해(필자 의도파악 및 해석 포함)하는 능력’으로 좁혀서 사용하고자 한다. 또한 성인이 아닌 청소년 문해력에 국한하여 논의하고자 하며, 따라서 갖춰야 할 문해력 수준은 학교급별 혹은 연령대별로 달라야 함도 전제로 한다.
문해력 저하의 원인별 대책
OECD가 시행하는 국제학력평가 읽기영역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은 2006년 1위에서 2015년 7위, 2018년 9위로 계속 하락하고 있다. 교육부가 시행한 학업성취도평가 결과를 보면 중학교 3학년 국어를 기준으로 기초학력 미달학생 비율이 2017년 2.6%, 2018년 4.4%에서 2020년 6.4%로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어서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는다. 청소년 문해력 저하 원인은 세대차론, 공교육 책임론, 상황론 등으로 나눠볼 수 있다. 원인별로 대책까지 간단히 살펴보자.
가. 세대차론
청소년들의 문해력이 낮다며 제시한 대부분의 예는 사용하는 어휘나 문법의 세대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지, 청소년들의 문해력 자체가 성인보다 낮은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 세대차론이다.
일상생활에서 접해보지 못한 단어를 만나면 우리 뇌는 이미 알고 있는 유사한 단어를 떠올리며 뜻을 유추하게 된다. 최근 언론에 오르내린 ‘사흘’과 ‘4일’, ‘금일’과 ‘금요일’, ‘심심한 사과’ 등은 세대 간 사용 어휘 차이로 인해 발생한 문제이다. 젊은 세대는 사흘이라는 용어 대신 주로 삼(3)일을, 금일 대신 오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심심한 사과라는 용어는 일상생활에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이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서는 세대 간의 열린 접근이 필요하다. 일상생활을 할 때, 그리고 대중을 대상으로 글을 쓸 때에는 청소년도 염두에 두며 널리 쓰이는 어휘를 활용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일상생활 속에 사용하는 단어는 극히 제한적이어서 글마저 일상용어 위주로만 쓰게 된다면 우리말 중에서 사용 가능한 어휘는 점차 줄어들게 될 것이다. 이는 우리말 표현력을 줄여, 기존 어휘 대신 새로운 신조어를 만들어야 하거나 아니면 외래어를 차용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따라서 젊은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일상용어 위주로 글을 쓰더라도, 꼭 필요한 단어는 그대로 사용하면서 그들이 익혀가며 문해력을 향상시키도록 자극할 필요도 있다. 물론 그 글이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인지, 교과서인지, 아니면 학술논문인지에 따라 전문용어 사용 수준은 달라져야 할 것이다.
나. 공교육 책임론
공교육 책임론은 그동안 한자교육 소홀, 독서교육 소홀, 배움중심교육과 활동중심교육에 대한 오해로 인한 인지교육 소홀 등 공교육이 젊은 세대의 문해력 저하를 불러온 주원인의 하나라는 주장이다.
1) 한자교육
한자교육과 문해력 관계에 대해서는 찬반론이 팽팽하다. 하지만 문해력 저하의 한 원인이 어려운 한자어에 대한 학습부족임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문해’의 상대어는 ‘문맹’이다. 과거에 문맹은 글자를 읽을 수 없다는 뜻으로 쓰였다. 그러다 보니 소리글자인 한글을 사용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맹률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다. 한글은 말을 소리 나는 대로 적을 수 있는 표음문자(表音文字)이고 익히기도 쉬워 조금만 공부하면 누구나 우리 글을 쉽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말과 글이 서로 다른 나라, 특히 한자와 같은 표의문자(表意文字)를 사용하는 나라에서는 말소리와 글자가 일치하지 않기에 글자 하나하나를 익혀야만 읽고 뜻을 깨달을 수 있기에 문맹률이 높아지게 된다.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하기 전까지 우리나라는 중국의 한자와 한문을 빌려와 우리말을 글로 기록했기에 한문공부를 하지 않은 대부분 사람은 글을 읽을 수가 없었다. 신라시대에 한자를 차용하여 이두문자라는 것을 만들어 말과 글을 어느 정도 일치시켜보려 했던 것은 문맹률을 낮추기 위함이었다.
표음문자라고 하더라도 영어처럼 한 알파벳이 여러 가지로 발음되는 문자의 경우에는 문맹률이 높아지게 된다. 미국대학에서 수업을 받으면 첫 시간에 교수가 학생들 이름을 부르면서 자기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발음하는 학생 이름은 출석부 옆에 발음기호를 적는 것을 볼 수 있다. 영어권에서는 알파벳으로 적혀 있기는 하지만 라틴어·불어·독일어 등 다양한 국가에서 사용되던 단어(발음과 알파벳이 일치하지 않는 외래어)가 들어오면서 문자와 소리가 다른 단어가 많아지게 되었다. 이런 단어들은 따로 외우지 않으면 알파벳을 깨우쳤더라도 제대로 읽을 수가 없고, 따라서 뜻도 알기 어렵다. 가령 영어로 식당은 레스토랑인데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레스타우란트(restaurant)이다. 알파벳을 뗀 사람이라도 이 단어의 철자를 따로 외우지 않았다면 그것을 레스토랑으로 읽을 수 없고, 따라서 글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즉 영어는 이처럼 단어의 철자를 외워야 하는 것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소리와 글자가 일치하는 한글로 말을 적기에 구개음화·연음법칙 등 몇 가지 발음법칙만 깨우치면 철자를 외우지 않아도 읽어낼 수 있고, 그 결과 문장의 뜻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말로 식당은 말과 문자가 일치하기에 한글만 깨우치면 ‘식당’을 ‘식당’이라고 읽을 수 있고, 그렇게 읽으면 우리 뇌는 곧바로 그 의미를 깨닫게 된다.
문해력 이야기를 하면서 굳이 외국인의 우리말 공부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최근 초·중등학생과 젊은이 중에서 한글을 깨우친 외국인들처럼 책을 읽을 줄은 알지만, 뜻은 이해하지 못하고, 말을 들으면서도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해 곡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문해력이 낮은 이유는 교과서에 사용되는 어휘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읽으면서도 뜻을 모르는 어휘가 주로 한자어이다 보니 문해력 향상을 위해서는 한자에 익숙해야 한다는 논리가 서게 되었다. 실제로 교과서를 포함한 전문서적은 주로 한자어인 해당 분야의 학술용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그 결과 초·중등 교과서에는 아주 많은 한자어가 포함되어 있다.
교과서에 쓰인 한자어휘 중 상당수는 일상 대화와 거리가 먼 전문적인 용어여서 글을 읽을 줄 알더라도 그 뜻을 바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국립국어원장을 역임한 서울대 국어교육과 민현식(2004)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8종의 초등학교 전 학년 전 과목 교과서에 쓰인 한자어는 12,787개이고, 누적 출현 회수는 223,500회이다(<표 1> 참조). 최근에는 조금 줄었을 수도 있지만 큰 차이는 없을 것으로 짐작된다. 낯선 단어가 한두 개이면 전후맥락을 보아 뜻을 짐작할 수 있지만, 모르는 단어가 여러 개 중첩되면 외국인과 유사하게 읽을 수는 있으나 그 뜻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문해력 문제를 겪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다각도로 진행되고 있다. 이를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김승호 전 함평교육장과 전광진 전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장은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한자가 병기된 우리말 사전을 제공하자’고 제안했다. 책상 위에 올려놓고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찾아보고, 그 안에 숨어 있는 한자에도 관심을 가져보도록 유도하면 한자에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이 줄어들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어휘력이 증진되면 일상에서 사용하는 어휘도 더 풍요로워지고, 문해력도 향상될 것이다. 전광진(2006) 교수가 제시한 한자어 교수·학습법(LBH 교수·학습법)을 비롯해 어려운 한자어를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기법들도 보탬이 될 것이다.
2) 그 외 학교교육 방향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문해력 문제는 청소년이 소속 학년 혹은 연령대에 적합한 어휘력을 갖추지 못했을 때 생긴다. 학년 혹은 연령대에 적합한 어휘력 수준을 정하는 것은 학계·교육계 그리고 사회이다. 이들 사이에 인식차가 너무 크다면 그 인식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독서교육과 글쓰기교육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문해력은 향상될 것이다. 독서는 아날로그 책으로만이 아니라 학생들이 익숙한 디지털책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와 더불어 배움중심교육을 시키더라도 기본개념과 어려운 어휘학습은 교사 주도로 이뤄져야 한다. 배움중심이라고 하여 학생들 스스로 기본개념과 많은 어휘를 터득하도록 유도할 경우, 많은 학생은 학습 비효율성을 경험하면서 학습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는 일종의 방치이고, 이는 계층 간 문해력 격차 심화로 나타날 것이다. 교과서에서 마주치는 단어가 꼭 알아야 할 어려운 한자어일 경우, 영어단어 뜻을 익히듯이 따로 시간을 내어 익히도록 이끌어야 한다. 학생들도 일상 속에서 새로운 단어를 접할 때마다 인터넷이나 앱 사전을 꺼내어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어휘력을 향상시켜 가야 문해력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다. 상황론
문해력 저하의 또 다른 원인으로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과도한 노출이라는 현재 상황을 들기도 한다. “2014년 5월 초 미국정신과협회(APA)의 연례대회에서는 인터넷 중독 장애를 보이는 청소년은 뇌에 비정상적인 특징이 나타났다는 발표가 있었다. 한두 건의 실험이 아닌 최근 연구 13건을 종합한 결과였다”(임동욱, 2014). 긴 호흡의 글을 읽고 해독하기 위한 문해활동을 위해서는 뇌가 장시간 집중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인터넷 중독으로 뇌가 변형된 경우 그러한 집중은 어려워진다. 각종 동영상 시청시간 증가로 인한 독서시간 감소, SNS상의 짧은 글 읽고 쓰기로 인한 긴 글 독해력 저하, 팝콘 브레인 효과(임동욱, 2014)로 인한 긴 글에 대한 인내력 급감 등등을 관련 원인으로 들 수 있다.
반대 주장도 있다. 핀란드교육연구원의 카이사 레이노는 2014년 ‘<문해력과 정보통신기기 사용의 상관관계>라는 연구논문에서 “컴퓨터 사용이 전통적인 문해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고 주장했다. 만 15살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수행한 이 연구에서 레이노는 “오히려 디지털 기기가 다양한 상황에서의 문해력을 키우는 데 좋다”고 했다(정유미, 2015). 온라인에 있는 다양한 텍스트를 접하며 학생들은 ‘사회적 맥락 속 읽기’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연구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교수·학습과정에서 디지털 기기를 사용한다고 해서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님을 밝히고 있을 뿐이다. 이 연구가 보여주듯이 교육목적으로 디지털 기기를 사용할 경우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문해력 향상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우리 사회가 우려하고 있고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교수·학습과 무관한 디지털 기기 사용 및 다양한 동영상 시청시간 급증으로 인한 ‘글 읽고 생각하며 쓰는 시간’의 감소, ‘긴 호흡의 글을 읽고 생각을 정리할 기회 감소’ 등으로 나타나는 문해력 저하 현상이다.
문해력 향상을 위해서는 동영상 시청시간을 조절할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동영상 시청과 문해력 향상이 연결되도록 수동적인 시청이 아니라 적극적인 시청, 즉 시청 후 책을 읽은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야기 요약, 주제 파악, 논점 정리, 토의·토론 등의 활동을 하도록 이끌 필요가 있다.
나오며
문해력 논쟁이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은 세대와 개인 간 사용하는 어휘 차이의 발생 이유를 깨닫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도록 마음을 열어주는 것이다. 개인과 집단이 공감과 소통능력을 높이고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의 기초가 되는 어휘력, 글쓰기, 말하기 역량 강화를 위해 개인과 학교 및 사회가 노력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교육자만이 아니라 사회구성원 각자가 자기의 관심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자기가 마주치는 학생과 젊은 세대, 그리고 기성 세대의 문해력 향상을 위해 뭔가 하나라도 실천에 옮긴다면 반드시 효과는 나타날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상대가 기울이는 노력이 더욱 효과적이 되도록 서로 도울 때 우리 학생만이 아니라 기성 세대의 문해력과 사회의 소통력은 향상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