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국립대 연합 ‘한국대’ 만들어 SKY 맞먹는 인재 기르자”

2023.07.05 10:30:00

지역대학 살리기 앞장선 정태주 안동대 교수

 

지방국립대를 하나로 묶어 연합대학체제를 만든 후 SKY에 맞먹는 우수한 인재를 양성, ‘한국대’ 졸업장을 주자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대는 한국연합대학의 약칭. 파리 1대학·2대학 하듯 국립대들이 연합해 별도의 대학 체계를 갖춘 형태를 말한다. 물론 아직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합종연횡을 요구받는 고등교육환경을 감안하면 신개념 대안이다. 


이러한 구상을 처음 내놓은 인물은 정태주(57) 안동대 전기·신소재공학부 교수(사진). 지난 3월 안동대 총장선거에서 1위를 차지, 1순위 후보로 추천됐다. 대학 총장은 교육부장관의 제청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한다.  

   
그는 <새교육>과 인터뷰에서 “현재 지방소멸 위기와 학령인구 감소로 지역대학들이 큰 위기에 처해 있다. 지방의 대도시에 소재한 대학도 위기지만 지방 소도시로 갈수록 위기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지역대학 위기의 근본 원인을 학령인구 감소와 수도권 집중현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으로 진단하고 “지금과 같은 교육정책이 유지된다면 지역대학 붕괴와 지역소멸은 속수무책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방국립대 학생 중 성적이 우수한 20% 정도의 학생을 대학들이 선발, SKY급 이상으로 엄격하게 졸업 역량을 관리하고, 이를 국가와 사회가 인정하는 한국대(한국연합대학) 방식을 통해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대 구상은 ‘서울대 10개 만들기’ 주장처럼 수직적인 학벌 구조를 바꾸고, 서울에 집중된 인구를 분산시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제안으로 평가된다. 또 수능성적보다 대학에서 얼마나 노력했느냐를 중시하는 개념이어서 치열한 입시경쟁을 완화하고, 고교 교육 정상화에 도움을 줄 것이란 기대를 갖게 한다. 정 교수는 서울 출신으로 서울 용문고를 나와 서울대 무기재료공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를 모두 마쳤다. 2002년 안동대 교수로 임용된 후 창업보육센터장·기획처장 등을 역임했다. 다음은 정 교수와 일문일답. 

 

- 한국대를 만들자고 했는데.
“처음 한국대 이야기를 꺼낸 게 2018년경이다. 지역소멸과 함께 지방대의 몰락이 눈에 뻔히 보이는 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시대가 요구하는 우수한 인재를 길러내지 못한다면 지역대학은 문 닫을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마음에서 제안했다. 그러려면 연합체제를 통해 힘을 모으고, 상생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지방국립대 연합체제를 통해 견고하기 이를 데 없는 대학 서열화를 깨고 싶었다. 대학입학 당시의 성적 차이는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것이 대학 서열이 되고 학벌주의 사회를 고착화시키는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대학에 들어와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느냐 하는 점 아닌가. 전국 각지에 고르게 분포하고 있는 국립대가 배출한 우수 인재들에게 ‘한국대’ 졸업장을 수여하고 이들이 지역의 공공기관 등에 취업 때 우대해 준다면 지역대학도 살고 수도권 집중현상도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

 

- 지방국립대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대하는 것은 또 다른 차별 논란을 부를 수 있다. 
“물론이다. 모든 국립대 학생에게 한국대 졸업장을 주자는 것이 아니다. 성적이 우수한 소수의 학생을 선발해 적어도 SKY를 넘어설 정도의 실력을 갖추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래야 한국대 졸업장이 권위를 인정받고 그들 또한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지 않겠나.”

 

- 관건은 지방국립대 교육의 질이다. 어떻게 높일 것인가.
“A 국립대에 입학한 학생이 2년간 A 대학에서 학업을 이수하고 남은 2년은 B나 C 등 다른 국립대에서 이수하도록 해 공동학위를 수여한다면 학생들의 지역경험 및 역량 강화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덧붙여 국립대 인증제 같은 것도 시행해 봤으면 싶다. 공학교육인증제처럼 전공별로 인증제를 실시해 국립대 졸업생이면 어떤 학문을 전공했건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을 갖췄구나 인정해 주는 시스템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학교교육인증제는 공학도가 배워야 할 공학교육의 수준을 설정하고, 실적평가에 기반한 인증을 통해 학과의 교육수준이 국제적 수준에 동등함을 인정해 주는 제도다.

 

- '한국대' 실현 가능성은 어느 정도로 보나.
“우수한 교육을 제공하려는 대학들의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그리고 지자체도 지역대학에 우수 인재양성을 위한 물적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정부 역시 우수 인재들이 지역에 공급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다면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한국대 정책이 실현된다면 우수졸업생 배출→ 취업의 질 제고→ 지역사회 활성화→ 우수 입학생 유치 등으로 이어지는 인력의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 지방대학의 현실은 어떤가.
“한때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지금은 지역소멸 순위대로 대학이 망한다는 말이 나온다. 학령인구 감소로 지역대학들이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사립대들은 이미 크리티컬 포인트(임계점)에 놓여있다. 지역소멸과 지역대학은 서로 직결돼 있다. 안동지역의 경우 인구가 15만 명쯤 되는데 안동대 교직원과 학생이 7~8천 명가량이다. 가족까지 합치면 족히 2~3만 명이다. 서울대가 없다고 서울이 흔들리지 않고, 경북대가 없다고 대구가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안동에 안동대가 없다면 상황은 심각하다. 그만큼 중소도시에서 대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현재와 같은 교육정책이 유지된다면 지방의 중소도시부터 지역대학이 붕괴될 우려가 있고, 그 여파로 지역붕괴와 지방소멸이 뒤따르게 될 것이다.”


- 정부가 글로컬 대학이나 RISE 사업으로 지방대학 살리기에 나섰는데.
“글로컬 사업으로 지방대학 30개를 육성하겠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 사업에서 ‘탈락한 대학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라는 과제가 남는다. 글로컬 대학으로 선정됐다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대학 서열화가 존재하는 한 지방대학 살리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은 인적자본이 중요한 지식산업시대다. 유능한 인재가 있는 곳에 기업이 있다. 인재를 분산시키면 기업이 분산되고 그래야 지역이 골고루 살아날 수 있다. 이것이 핵심이다.”

 

- 글로컬 사업은 정부가 5년간 1,000억을 지원한다. 하지만 대학들은 재정난 해결에 부족한 액수라고 하는데. 
“학생수는 줄고 등록금은 15년째 동결이니 대학 재정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국립대도 마찬가지다. 직원들 인건비는 정부에서 지원받지만, 공공요금이나 학생활동비 등은 모두 대학 부담이다. 특히 최근 공공요금이 많이 올라 대학 재정이 힘들다. 지방사립대들은 우리보다 더 열악할 것이다. 아마 생존을 위협할 수준인 곳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처럼 대학에 대한 정부의 과감한 재정지원이 필요하다.”    

 

- RISE 사업으로 대학지원 권한이 교육부에서 지자체로 넘어간다. 어떻게 보나.
“대학과 지자체가 협력해서 지역발전을 견인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다. 다만 대학은 독립기관이다. 지자체가 대학 운영에 지나치게 지시하고 간섭하려 한다면 득보다 실이 클 것이다.” 

 

- 2028 대입개편 발표를 앞두고 있다. 대입 개편에 대한 생각은.
“수능은 말 그대로 대학수학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다. 그런데 자연계를 지원하는 학생조차 과학과목을 다 이수하지 않고 대학에 온다. 특히 물리·화학 같은 과목을 대학에 들어와 처음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이건 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다. 적어도 고등학교 단계에서는 모든 과목을 두루 공부한 후, 대학에서 전공을 선택해 살려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시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고 싶다. 현행 제도는 6개 대학까지 수시 원서를 쓸 수 있다. 학생의 선택권을 늘려준다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따지고 보면 서울에 있는 몇몇 사립대학들만 혜택을 누리고 지역대는 씨를 말리는 시스템이다. 학생들이 6번의 선택기회 대부분을 서울 소재 대학에 쓰고 나머지 한두 장만 지역대학에 지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재고할 필요가 있다.”

 

- 안동대 총장 1순위 후보다. 어떤 구상을 가지고 있나.
“외형적으로는 경북의 거점국립대학으로 육성하고 싶다. 학령인구 감소와 신입생 부족 등 대학이 직면한 위기를 대학 간 통합과 연합을 통해 돌파할 생각이다. 교육부가 지방대 육성 정책을 추진할 때 대학이 위치한 지역적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 안동대가 경북 북부지역의 교육 중심 지역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아울러 공공의대 설립도 적극 추진할 생각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기존 의대의 정원을 늘리는 것이 돈도 적게 들고 손쉬울 수 있겠지만, 의료낙후 지역에 의료 여건을 갖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역이 소멸되느냐 안 되느냐를 판가름하는 정주여건은 교육과 의료가 관건이다.”

 

- 안동의 슬로건이 '한국정신문화의 수도'이다. 그만큼 자부심이 있다는 뜻인데 안동대 역시 인문학이 특화된 대학으로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고 들었다.
“아무리 AI가 발전한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인문학이다. 우리 대학은 인문학과 디지털기술을 융합한 인재를 길러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또는 소프트웨어 기술을 가진 인문학자를 길러내겠다는 의미다. AI 시대, 인간이 AI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인성이다.”

장재훈 기자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sigmund@tobeunicorn.kr ,TEL 042-824-9139,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문태혁 | 편집인 : 문태혁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