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 불멸의 신이 된  슈퍼히어로의 원조 헤라클레스

2023.09.05 10:30:00

신화와 떠나는 별자리 여행

사람들은 별자리를 밤하늘의 지도, 혹은 하늘의 이야기책이라 부른다. 까마득한 옛날부터 인류는 별의 위치를 측정해서 어두운 밤바다를 항해하고, 별자리를 지도 삼아 길을 찾았으며, 별들을 어떤 동물이나 인간의 형태로 상상해 무리를 지어 나누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전 세계에 걸쳐 별자리에 얽힌 매혹적인 이야기의 유산을 갖게 되었다. 지난 7월 호에 이어, 헤라클레스자리·뱀주인자리·궁수자리·왕관자리 등 여름철 별자리들과 그에 얽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본다. 

 

헤라클레스자리 _ 괴력을 지닌 영웅 헤라클레스의 12과업
헤라클레스자리는 여름철 북쪽 하늘에서 거문고자리와 왕관자리 사이에서 거꾸로 있는 건장한 남자의 모습으로 보인다. 여섯 개의 별이 약간 찌그러진 H자 모양을 하고 있는데, 헤라클레스가 몽둥이로 물뱀 히드라를 힘차게 내려치는 모습이다. 히드라는 헤라클레스에게 죽임을 당한 뒤 별자리에 올라 뱀자리가 된다.

 

고대 수메르인들은 헤라클레스자리를 무릎 꿇은 남자의 형상으로 보고 ‘무릎 꿇고 몽둥이를 든 자’라고 불렀는데, 알파별 라스 알게티(Ras Algethi)는 아랍어로 ‘무릎 꿇은 사람의 머리’라는 뜻이다. 겨울 별자리의 영웅 오리온이 밝은 일등성을 갖고 있어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는 반면, 헤라클레스는 한 개의 일등성도 없는 어두컴컴한 별자리다. 


그러나 헤라클레스자리에는 밝고 아름다운 볼거리가 있는데, 일명 헤라클레스 대성단이라고 불리는 구상성단 M13이다. 18세기에 발견된 M13은 지구에서 25,100광년 떨어져 있다. 약 30만 개의 별들로 이루어진 이 성단은 북반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밝은 구상성단이며, 지름이 75광년 정도이고, 총질량이 태양의 65만 배에 달하는 크고 작은 별들이 공 모양으로 뭉쳐있다. 겉보기 등급이 5.8등급이어서 맑은 날이면 맨눈으로도 볼 수 있으며, 망원경으로는 밤하늘의 보석가루가 뿌려진 것같이 아름답게 보인다.


고대 그리스 신화의 영웅인 헤라클레스는 힘센 남성의 아이콘이자 모든 남성의 로망이다. 알렉산더같이 스스로 전설이 된 역사의 인물들은 모두 헤라클레스를 선망했다. 헤라클레스는 고대부터 미술·문학 등 예술의 단골 소재였고, 현대의 대중문화에서도 높은 상품적 가치를 지닌 인물이다. 아마도 슈퍼맨·배트맨·스파이더맨·캡틴 아메리카 같은 수많은 현대 대중문화의 슈퍼히어로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의 괴력과 수많은 모험·고난을 극복하고 이룬 인간적 승리를 보여준 헤라클레스의 ‘12과업’은 너무나 유명하다. 12과업 이야기는 어떤 칼이나 창으로도 뚫을 수 없는 가죽의 네메아 사자를 물리치기, 괴물뱀 히드라 죽이기, 케리네이아의 황금뿔 암사슴과 에리만토스의 멧돼지 생포하기, 아우게이아스 왕의 마구간 청소하기, 스팀팔로스의 청동 괴물새 퇴치하기, 크레타의 황소 잡기, 디오메데스 왕의 식인 암말 데려오기, 아마존의 여왕 히폴리테의 허리띠 빼앗아 오기, 게리온의 소 훔치기, 헤스페리데스의 황금사과 따오기, 지옥의 개 케르베로스 생포하기 등 매혹적인 상상으로 가득하다.

 

그중 하나가 음습한 늪지대 레르네에 사는 독뱀 히드라를 퇴치하는 것이었다. 히드라는 머리가 아홉 개 달린 괴물로, 대가리를 하나 자르면 금방 그 자리에 두 개가 새로 생겨 아무도 죽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매우 강력한 독을 갖고 있어 히드라의 독이 닿거나 그것이 내뿜는 숨을 살짝 들이마시기만 해도 생명을 잃었다. 헤라클레스는 자신이 히드라의 대가리를 자를 때마다 조카 이올라오스에게 불로 지져서 새로운 머리가 못 나오도록 하는 꾀를 써서 마침내 괴물을 죽여 버린다. 헤라클레스자리는 한 손에 몽둥이를 치켜들고 물뱀의 목을 내리치는 헤라클레스의 형상을 상징하고 있다. 

 

뱀주인자리 _ 뱀을 쥐고 있는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
헤라클레스자리의 남쪽, 전갈자리의 북쪽에는 뱀주인자리가 있다. 여름철 남쪽 하늘에서 관찰되는 뱀주인자리(Ophiuchus)는 2세기 그리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 기록된 바 있는 오래된 별자리다. 오피우크스는 라틴어로 ‘뱀을 든 자’를 의미한다. 인류 문화사에서 뱀은 오랫동안 종종 의사·의학·치료와 관련지어져 왔다. 로마인들은 이 별자리를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와 연관시켰다. 뱀주인자리는 뱀을 쥐고 있는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의 모습이다. 

 

 

아폴로는 코로니스라는 여인을 사랑했는데, 그녀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운다는 까마귀의 말을 듣고 격분해 화살로 쏘아 죽였다. 코로니스는 숨을 거두기 전에 아폴로에게 그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밝혔다. 뒤늦게 자신의 성급한 행위를 후회한 아폴로는 그녀를 살리지 못했지만, 아기는 황급히 그녀의 자궁에서 꺼내 구할 수 있었다. 그 아이가 바로 아스클레피오스였다. 


아폴론은 현자 켄타우로스 케이론에게 아들을 양육하게 했다. 케이론에게 의술을 배운 아스클레피오스는 죽은 사람까지 살려내는 신통한 의사가 되었다. 특히 아스클레피오스는 우연히 뱀 한 마리가 다른 뱀을 신비한 약초로 치료하는 것을 보고 불사의 비결을 배웠다고 한다. 그러나 아스클레피오스가 자꾸 사자를 살려내어 저승에 죽은 자가 더 이상 오지 않자, 저승의 신 하데스가 제우스에게 찾아가 하소연했다. 하데스의 말을 들은 제우스는 벼락을 던져 아스클레피오스를 죽여 버린 후, 그에게 하늘의 별자리를 내주고 그 업적을 기렸다.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면서 지팡이를 기어오르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는 의학의 상징이 된다. 

 

궁수자리 _ 반인반마 켄타우로스 케이론의 별자리
궁수자리는 전갈자리의 동쪽, 염소자리의 서쪽에 있는 별자리다. 고대 그리스인은 이 별자리를 활을 당기는 켄타우로스(Centaurus)의 모습, 즉 현인 켄타우로스 케이론으로 생각했다. 사실 그 생김새가 반인반마 켄타우로스같이 보이지는 않는다. 별자리의 형태가 물이 끓는 주전자에서 김이 내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고 하여 ‘주전자별’, 혹은 ‘우유 국자(Milk Dipper)’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궁수자리, 또는 사수자리라고 한다. 지구에서 볼 때 우리 은하의 중심 방향에 궁수자리가 있다. 우리 은하계 중심부에는 막대한 양의 가스와 에너지가 분출되고 있고 거대한 블랙홀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궁수자리 전체를 보기가 힘들고 윗부분만 비교적 잘 보인다.

 

이 부분은 주전자 형태의 손잡이와 뚜껑을 이루는 별들인데, 그 전체적인 모양이 북두칠성과 매우 비슷하다. 동아시아에서는 중앙의 여섯 개의 밝은 별이 국자 모양이어서 북두칠성과 비슷하다 하여 남두육성이라고 부른다. 중국 점성술에서는 북두칠성을 죽음을 결정하는 별, 남두육성은 탄생을 결정하는 별로 보고, 사람이 태어나면 북두 신선과 남두 신선이 서로 상의해서 그 사람의 수명을 정한다고 한다. 


케이론은 제우스의 아버지인 크로노스가 아름다운 바다 요정 필리라를 강탈해 낳은 자식이다. 필리라는 대양의 신 오케아노스와 양육의 여신 테티스 사이에 태어난 총 3,000명의 딸, 오케아니데스 중 한 명이다. 케이론이 반인반마의 모습으로 태어난 것은 어머니 필리라가 암말로 변신하여 크로노스의 겁탈을 피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혹은 크로노스가 아내 레아에게 발각되지 않으려고 종마로 변신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원래 원치 않았던 데다 모습마저 괴물 같은 아기를 낳고 심한 혐오감을 느낀 필리라는 그를 산에 버리고 신들에게 간청해 자신은 보리수나무로 변신해 버렸다. 한편 케이론을 가엾게 여긴 태양신 아폴로가 그를 데려다 키우며, 케이론이 동물의 본성을 억누르고 고귀하게 살아갈 수 있는 품성을 길러주었다. 이 때문에 케이론은 난폭하고 야만적인 다른 켄타우로스들과 달리 기품·지혜·의학·음악·무예에 능한 학자이자 헤라클레스·페르세우스·이아손·테세우스 등 그리스 신화 속 수많은 영웅의 스승이 되었다.


한편 케이론은 불사의 운명을 타고났다. 한번은 헤라클레스와 시비가 붙은 켄타우로스족이 힘에 부쳐 케이론이 살고 있는 동굴로 도망치자, 헤라클레스가 성급하게 화살을 쏘았는데, 그만 케이론의 무릎에 맞고 말았다. 헤라클레스의 화살은 레르네의 독사 히드라의 피를 바른 독화살이었다. 죽지 않는 운명을 지닌 케이론은 극심한 고통을 끝내는 방법은 오직 죽는 것뿐이라고 생각해 제우스에게 그의 불멸성을 없애달라고 간청했다.

 

이에 제우스는 독 중독으로 영원히 고통을 받아야 하는 케이론을 불쌍히 여겨 죽을 수 있게 했고, 수많은 영웅을 길러낸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하늘에 올려 궁수자리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켄타우로스가 활을 겨누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용사 오리온을 죽이고 그 공으로 성좌가 된 전갈이 하늘에서 말썽을 일으켰을 때 곧바로 쏘아 죽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왕관자리 _ 보석 왕관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바쿠스와 아리아드네의 러브 스토리
라틴어로 ‘북쪽의 왕관’을 뜻하는 코로나 보레알리스(Corona Borealis)는 우리말로 북쪽왕관자리로 번역된다. 고대 그리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기록한 48개의 별자리 중 하나로, 매우 오래된 별자리다. 북반구에서 3월~7월 사이에 볼 수 있으며, 특히 7월에 잘 보인다. 일곱 개의 별이 반원 형태로 배열되어 왕관의 형상과 비슷하다. 알파별 알페카(Alphecca)는 ‘진주’를 의미하는 ‘겜마(Gemma)’라고도 부르는데, 왕관 한가운데 유난히 밝게 빛나는 진주가 박힌 모양새라 별자리 이름과 잘 어울린다. 알페카는 지구로부터 약 76.5 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알페카를 제외하고는 별자리를 구성하는 다른 별들이 작고 어두워서 찾기가 어려운 편이다. 원래는 그냥 ‘왕관자리’라고 불렸으나, 후에 남쪽왕관자리가 생기면서 북쪽왕관자리로 불리게 된다. 아랍지역에서는 ‘거지의 밥그릇’, ‘가난한 자의 그릇’이라고 불렀는데, 아닌 게 아니라 화려한 왕관이라기보다 소박한 그릇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 밖에도 켈트족은 성으로 중국인들은 엽전 꾸러미로, 호주인들은 부메랑으로 보았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크레타 미노스 왕의 딸 아리아드네의 왕관이 이 별자리가 되었다고 전한다. 미노스 왕은 다이달로스에게 미궁을 짓게 해 괴물 황소 미노타우로스를 가두었다. 미궁은 미로와 같아서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는 곳이었다. 아테네는 당시 크레타에 매년 미소년과 미소녀 7쌍을 미노타우로스의 제물로 바쳤다. 아테네 왕자인 테세우스는 괴물을 없애고 백성을 구하기 위해 그들 틈에 끼어 몰래 크레타로 잠입했다.

 

테세우스를 본 순간 첫눈에 사랑에 빠진 아리아드네 공주는 아버지 몰래 실타래를 주어 테세우스가 미궁 안의 괴물을 해치우고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돕는다. 아리아드네는 그 대가로 테세우스와의 결혼을 요구한다. 마침내 미노타우로스를 퇴치하고 도망쳐 아테네로 돌아가는 도중, 두 사람은 낙소스라는 섬에서 잠깐 쉬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테세우스는 깊게 잠이 든 아리아드네를 버리고 떠난다.


잠에서 깬 공주는 조국과 아버지까지 버리고 헌신했던 연인에게 버림받은 것을 깨닫고 슬피 울다가 바쿠스를 만나게 된다. 아리아드네에게 열정적인 사랑을 느낀 바쿠스는 일곱 개의 보석이 박힌 금관을 청혼 선물로 주었다. 후에 아리아드네가 죽자, 바쿠스는 금관을 하늘에 걸어 장식했는데 이것이 바로 북쪽왕관자리라고 한다. 배신과 비극이 난무한 그리스 신화 이야기치고는 매우 낭만적인 해피엔딩 스토리다.

김선지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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