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제자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선생님, 저 00시청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다음에 출장 오실 때는 꼭 연락해 주세요”라고 말이지요. 학교 다닐 때도 모범적이고 예의가 바른 학생이었는데 그 모습은 여전한가 봅니다. 인사를 전하는 말투도 그때 그 시절 그대로 느껴져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넌 참 잘 컸구나.’
24살 첫 부임을 받자마자 만난 띠동갑의 첫 제자들. 생각해 보면 제가 뭘 알고 있다고 아이들을 가르친 건지. 그저 큰 언니처럼 아이들과 재미나게 놀았던 것 같습니다. 지나고 보니 열정만 넘쳤지, 전문성도 노련함도 부족했던 저라서 아이들에게 미안한 점도 참 많습니다.
‘참 잘 컸구나!’
전임 학교 교장선생님의 정년 퇴임식에 제자들이 참석했습니다. 말 그대로 같이 늙어가는 처지라며 퇴임하시는 스승을 향한 애틋함을 나타내었지요. 어리기만 했던 초등학생 아이들이 반백이 넘어 선생님, 하고 외치는 모습은 정말 많은 것을 느끼게 했습니다. ‘나도 저렇게 명예롭게 퇴직할 수 있을까?’, ‘나의 제자들도 훗날 나를 그리워할까?’ 그렇게 혼났는데도 선생님이 좋았다며 회고하시더라고요.
생각해 보니 몇 년 동안 가르쳤던 아이들은 저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개인 번호를 공유하지 않게 되면서 1년을 마치니 자연스럽게 인연이 끊어지더라고요. 당시 투넘버를 썼었는데 번호도 제가 없앴네요. 졸업앨범 촬영도 없고 스승 찾기 서비스도 멈추었으니 최근 제자들과는 연락할 방법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불미스러운 사건들은 연이어 보도되고 있고 예전 선생님을 찾는다고 하면 혹여 해코지당할까 겁이 난다고 하니 너무나도 속이 상합니다. 이제 스승과 제자 사이는 업무 분장에 적힌 유효기간인 1년인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다시 만난 제자들이 소중한 요즘
저는 최근 초등 교사를 그만둔, 이현지 선생님(유튜버 달지)의 ‘잔소리’라는 노래를 무척 좋아합니다.
‘스무 살이 되면, 꼭 선생님을 찾아와서 맛집에 데려가 줘 술도 한잔하게. 쌤은 술을 잘 못해. 맥주 한 잔이 고작이지만, 발개진 채로 마주 보고 웃어보게/해주고 싶은 말들이 많아 잔소리로 들릴 걸 알아. 마치 나 어릴 적 선생님께서 해주셨던 말처럼 말이야/그치만 어쩔 수 없잖아. 사실 그냥 잔소리가 맞아. 알아서 잘할 걸 알지만 그래도 꼭 해주고 싶은 말이야.’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는 제자들이 무척 소중한 요즘입니다. 선생님이라고 찾아와서 인사하는 친구들이 너무나도 고맙지요. 혹시라도 다시 찾아온다면 해주고 싶은 말들이 정말 많지만, 마음속에 담아두고 한 번 더 안아주어야겠습니다. 이 힘든 세상 풍파 속에 걸어 나온 그 자체만으로도 대견하다고. 멋진 어른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면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