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톡톡톡] 영화 '어른 김장하'

2024.01.09 10:30:00

“혹시 내가 아이들에게 ‘꼰대’가 되어가는 건 아닐까?” 교사라는 직업을 소명으로 받고서 교직에 첫발을 내디딜 때 가졌던 첫 마음이 자꾸만 흔들린다. 아이를 가르치는 것과 무관하게 자꾸만 처리해야 하는 행정업무가 넘쳐나고, 자기계발을 위해 책 읽을 시간도 부족하다.

 

오늘은 어떻게 하루를 버틸까 생각하며 출근하는 자기 모습을 발견할 때면, 어느덧 ‘직장인’이 다 되어버린 자괴감마저 든다. 오늘 하루도 교사인 자신을 바라볼 수십 쌍의 똘망똘망한 눈방울들 앞에서 그저 바르게 서 있기도 어려운 요즘이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학교폭력 사건들, 한동안 뉴스를 떠들썩하게 장식했던 교사 자살 사건들, 점점 어려워지는 학부모와의 관계 속에서 담임을 기피하는 현상까지….


하수상한 시절,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 우리는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할까? 거창한 질문에 여러 가지 답이 있을 수 있지만, 여기 한 편의 영화가 길을 알려주는 것 같다. <어른 김장하>(감독 김현지)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경남 한 도시에서 60년 동안 한약방을 지킨 김장하 선생이 있다. 100억 원이 넘는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도 인터뷰 한 번 하지 않고, 많은 이들을 도우면서도 자기 옷 한 벌 허투루 사지 않는 사람. <어른 김장하>는 좋은 어른을 기다렸던 교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줄, 그리고 다시 한 번 새 힘을 내게 해 줄 가장 따뜻한 휴먼 다큐멘터리다.

 

‘악한 영향력’의 시대에 ‘선한 영향력’의 희망
우선 이 영화를 본 이들의 평부터 심상치 않다. 가수 이승환은 “악한 영향력의 시대에 선한 영향력의 희망을 봅니다”라고 말했고, 배우 김남길은 “<어른 김장하>를 보고 감명 받았다. 좋은 어른을 만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김영민 서울대 교수는 “삶을 돌아보기도 하고, 그와 조금이라도 닮기를 바라기도 하고, 닮기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닫기도 하고, 이 사회에 ‘어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인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했다”라고 영화평을 전했다. 서병기 ‘헤럴드경제’ 선임기자는 “돈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있는 우리 시대의 어른”이라고 평했고, 김은형 ‘한겨레’ 선임기자는 “진짜 어른이 무엇인지 곱씹게 한다”라고 감상평을 남겼다. 


먼저 알려지지 않은 영웅, 김장하 선생이 어떤 분인지 알아보자. 1944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난 김장하 선생은 가난한 탓에 동성중학교 졸업 후 학업을 잇지 못했다. 주경야독 끝에 1962년 학약종상 시험에 합격했지만,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1년 후 면허를 받고, 1963년 사천시 용현면에 남성당한약방을 개업했다.

 

갓 스무 살 한약방 원장의 한약이 싸고 질이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에서 손님이 밀려들어 문전성시를 이뤘다. 동생들을 데리고 쑥밥·고구마밥을 해 먹으며 가난하게 살던 그였지만, 한약방이 이른바 ‘대박’을 쳤어도 밥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기술료라는 명목으로 약값이 비쌌던 그 시절에 김장하 선생은 유독 박리다매 정신을 강조했다. 그리고 당신이 번 돈은 병으로 아프고 괴로운 사람을 상대로 벌었던 것이기에 그 소중한 돈을 함부로 쓸 수 없어서 차곡차곡 모아 사회에 다시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돈이란 게 똥과 같아서 모아두면 악취가 나지만 밭에 골고루 뿌려두면 좋은 거름이 된다’는 신념으로 주변을 돕기 시작한 것.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지역문화·언론·환경·여성운동에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1983년에는 명신고등학교(학교법인 남성학숙)를 설립했고, 1991년에는 국가에 헌납했다. 1920년대에 진주시에서 태동해 대한민국 최초 인권운동으로 알려진 형평운동을 알리는 형평운동기념사업회를 발족해 초대 이사장을 역임했다. 


자신의 선행을 알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언론 인터뷰는 물론 어떤 상도 받지 않았다(영화 말미에는 외국의 한 단체가 수상자 선정 소식과 함께 상금 1억 원을 준다고 알려왔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김장하 선생의 모습이 담겨 있다). 2022년 5월 31일 남성당한약방 문을 닫고 은퇴해 평범한 할아버지의 삶을 살고 있다. 

 

 

쫓는 기자와 쫓기는 선생의 ‘미담추격전’
<어른 김장하>는 언뜻 평범한 인물 다큐멘터리로 보이지만, 조금은 독특한 형식을 띤다. 주인공인 김장하 선생의 직접적인 인터뷰가 거의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총 몇 명에게 장학금을 주셨습니까?”라는 질문에 김장하 선생은 그저 묵묵부답이다. “줬으면 그만이지 보답 받을 이유가 없잖아요.” 준다는 생각도 없이, 줬다는 기억도 없이 타인에게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것. 불교 용어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 정신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 


1991년 <경남도민일보>에 입사한 30년 경력의 베테랑 기자인 김주완 전 편집국장의 전통적인 취재가 김장하 선생 앞에서는 계속해서 길을 잃은 이유다. 경남MBC의 김현지 PD가 김장하 선생에 대한 다큐멘터리 기획안을 쓰면서, 두 사람은 의기투합했다.

 

김장하 선생이 안 된다면, 주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방식으로 선회하기로. 수백 명의 장학생부터, 지역신문사·서점·연구단체·이웃사촌·여성보호시설·환경운동단체·연극극단과 문학가들까지…. 김장하 선생의 도움을 받은 이들이 너무 많으면 자칫 중구난방이 될 수 있어서 키맨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김주완 기자가 맡은 것이다. 


형평운동사업회 99주년 기념행사를 시작으로 본 촬영에 들어갔다. 김장하 선생이 남성당한약방 문을 닫을 준비를 하던 즈음이었다. 절대 인터뷰를 하지 않고, 촬영을 허락하지도 않던 김장하 선생이 유일하게 곁을 내주던 이야기 소재는 다름 아닌 ‘명신고 장학생’ 이야기가 나올 때였다.

 

두 사람은 장학생을 계속해서 섭외해 김장하 선생을 찾아갔다. 장학생 취재를 핑계로. 그렇게 1년여를 보내다 보니 김장하 선생도 약간 ‘모르겠다’는 심정이 되었다. 지역사회에서 김장하 선생의 공적역할 등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촬영을 하다 보니, 김장하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절대 나를 우상화하는 이야기는 안 된다”라고.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하여
과연 영화는 평생을 강직하고 우직하게 살아온 한 인물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의 삶을 지탱한, 평생 지키고자 한 정신은 무엇이었을까? 김주완 기자는 김장하 선생의 인생에 조부와 남명 조식 선생 그리고 공자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한다. 특히 김장하 선생이 실천적인 삶을 살아올 수 있었던 건 ‘많이 안다는 것만으로는 지식이 아니다. 아는 것을 실천해야 그것이 진정한 지식이다’라고 실천학문을 강조한 남명 선생의 가르침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공자와 관련해서는 김장하 선생이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논어>의 ‘학이’편 세 번째 문장 ‘인부지이불온(人不知而不慍)이면, 불역군자호(不亦君子乎)아’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 하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라는 뜻이다. 김장하 선생의 생활신조는 ‘앙불괴어천부부작어인(仰不愧於天俯不怍於人)’이다.

 

<맹자>의 ‘진심상’편에 나오는 구절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고, 사람을 향해서도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사는 것’을 뜻한다. 영화에서는 깜짝 생신잔치에서 김장하 선생의 그런 면이 드러난다. 덕담 한 말씀을 요청하는 시민들에게 김장하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칠십 년 동안 나름대로 부끄럽게 살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아직도 부끄러운 것이 더 많습니다. 앞으로는 부끄럽지 않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세 문장에 공통적으로 ‘부끄러움’이 들어간다. 부끄러움이 없는 삶을 살기 위해 평생을 이렇게 살아온 것이다.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합니다
‘어른’이라고 하면 요즘 조금은 가부장적이거나 ‘꼰대’ 같은 느낌도 든다. 하지만 원래 어른이라는 단어가 나쁜 의미는 아니었다. 영화를 본 한 관객은 “어른이 이렇게 푸근한 단어였죠. 내가 이렇게 기댈 수 있다는 안전함을 느낄 수 있는 단어라는 걸 재발견하게 되었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른 김장하>는 오염되었던 단어 ‘어른’에 본래 의미를 돌려줬다. 


김주완 기자가 생각하는 어른과 꼰대의 차이점은 ‘행동’이다. 꼰대는 말로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이고, 어른은 자기가 살아온 삶과 행동으로 후배와 후세들에게 자연스럽게 가르침을 준다. 김장하 선생은 그런 의미에서 수많은 장학생에게 단 한 번도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명신학원을 운영할 때는 교사들에게 일절 훈수를 두지도 않았다. 오히려 타 학교에 비해 두세 배의 급여를 주면서 자율적으로 일할 수 있게 했다. 한때 전교조에 가입한 교사를 해임하라는 정부의 압력이 들어왔을 때도 끝까지 교사들의 방패가 되어줬다. 세무조사에 감사까지 들어온다는 소식에 “그렇게 나오면 나는 쉬워요. 잘못한 게 없거든”이라고 말하며. 


명신고 설립 초기 교사들은 밤 12시까지 퇴근도 못하고 다음 날 7시 반까지 출근해야 했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뿌듯했다고 한다. 치사하게 살지 않아야겠다는 것을 배웠다고 회고한다. 이런 점에서 <어른 김장하>는 교사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안긴다. 교육을 바로 세우려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화해야 할 것인가? 김장하라는 영웅을 이 사회가 칭찬만하고 끝내서는 안 될 이유다.

 

시민활동·여성운동·환경운동·장학금 등 국가가 또는 사회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인데, 김장하 선생 개인이 감당해 왔기 때문이다. 60년간 진주를 치유해 온 한약사 김장하 선생의 삶은 개인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진 2023년의 한국 사회에 감동을 주면서,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한 가지 더. 사학재단이라고 하면 통상적으로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어른 김장하>에서 이런 사학재단도 있었고, 이런 설립자도 있었구나 하는 하나의 모델 또는 표본으로 영화를 볼 여지도 있다. 좋은 교사와 관리자가 있다면 계속해서 칭찬하고 알릴 수 있다면? 그들이 자랑스럽고 행복해지면 우리 사회에 그들을 따라 하는 사람들도 많아지지 않을까?


명신고 장학생이었던 한 학생은 김장하 선생을 찾아가 “유명한 사람이 되지 못해 송구해서 그동안 찾아뵙지 못했다”며 고개를 떨군다. 그때 김장하 선생은 “고맙다”라며 그저 따뜻한 눈길로 다 큰 어른의 어깨를 다독인다. 그의 후원을 받은 한 사람은 이렇게 증언한다. “뭔가 정신이 혼미하거나 결정을 내리지 못할 때 김장하 선생이 브레이크 역할을 합니다. 제 뒤에서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것 같아서요. 그런 생각이 들면 잘못된 결정을 하지 않게 되죠.”

 

새로운 2024년을 시작하는 1월. 힘든 마음을 잠시 내려두고 <어른 김장하>를 보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기를. 영화를 보고 나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를. 그리하여 보통 사람들이 지탱하는 세상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기를. 어떤 어른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아이들에게 어떤 교사로 기억되고 싶은지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실천으로 옮기는 2024년이기를 대한민국의 모든 교사에게 기원합니다.

윤재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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