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교육이 시작된 이래, 교육에서 교사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교육의 내용과 방법이 실제 학생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은 교사를 통해서 구현된다. 암묵적인 교육과정도 있지만,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은 대부분 명시적인 교육을 통해 실현된다.
이 과정에서 교사는 자신의 지식과 역량은 물론 가치관·태도까지 오롯이 드러나게 된다. 필자가 교대에서 수학하던 시절, 교직관 강의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교사들이 갖는 교직에 대한 가치관·철학을 교직관이라고 하는데, 예전에 우세했던 성직자관에서 전문직관·노동자관까지 확장되었다.
과거에 교사라고 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를 길러내는 중요한 성직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회의 시선도 그렇고 실제 그런 사명감을 가진 학생들이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에 입학하곤 했다. 지금은 어떤가? 사명만으로 교육에 대한 모든 책임을 교사에게 요구하기엔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사회의 인식도 예전 같지 않으며 학생들이나 학부모도 교사들을 대하는 태도가 과거 같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인공지능이 교사의 역할을 대체할지도 모른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교육의 신세계가 열린다
2023년 현재, 인공지능 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데, 거대언어모델(Large Language Model; 이하 LLM)이라고 하는 챗GPT는 교육시스템에 도입되어 학생들의 질문에 답해 주는 기능까지 가능하게 되었다. 전 세계에서 많은 학생이 참여하고 있는 무료 온라인 학교인 칸(Khan) 아카데미에서는 LLM 모델을 보조교사로 도입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칸미고((Khanmigo)로 불리는 인공지능 보조교사는 학생들이 수학문제를 풀다가 질문을 하면 정답을 알려주지 않고 문제를 푸는 데 필요한 힌트나 사례를 보여주면서 풀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고 문제풀이과정을 설명해 주는 역할은 전형적으로 교사가 하던 일이었다. 그런데 그 일을 대신 해줄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교사의 전문직 관점에서 본다면 지식을 대상과 상황에 맞게 전달하는 역할은 교사의 영역이었는데 인공지능이 대체하겠다고 나서며 위협하는 형국이다.
필자는 지난해 11월 초,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code.org 컨퍼런스에 참가했는데, 칸미고를 개발한 칸아카데미의 연구자 크리스틴(Kristen) 박사의 발표를 듣게 되었다. 칸미고의 기능을 이미 알고 있었던 터라 학습효과에 대한 결과가 궁금해서 발표 후에 질문했더니 아직 연구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연구결과가 나온다면 교사의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할 수 있을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현재 교육부에서는 2024년 적용을 목표로 디지털교과서를 개발하고 있다. 교육부에서 발표한 디지털교과서의 개념을 살펴보면 ‘학생 개인의 능력과 수준에 맞는 다양한 맞춤형 학습 기회를 지원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을 포함한 지능정보기술을 활용하여 다양한 학습자료 및 학습지원 기능 등을 탑재한 교과서(교육부, 2023)’이다.
여기서 중요한 요소는 ‘다양한 맞춤형 학습기회’이다. 교육의 역사에서 보면 교육의 목적이 가장 잘 달성되는 환경은 ‘도제식 교육’이다. 도제식 교육의 특징은 교수자 1명과 소수의 학습자 구조로 되어 있어 학습자의 상황과 능력에 맞게 맞춤형으로 교육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도제식 교육은 교육이 제도화되기 전에 이루어지던 방식으로 부모로부터 기술을 물려받거나 스승에게 소수의 문하생이 지식과 기술을 전수받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소수의 인원이 교육받기 때문에 1명의 교수자가 모든 학습자의 장단점과 현황을 파악하기 용이했고, 각자의 능력과 흐름에 맞게 교육내용과 방식을 유연하게 할 수 있었다. 즉 소수의 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에서는 자연스럽게 맞춤형·개별화교육이 가능하다.
현대교육에서 이런 맞춤형·개별화교육이 어려운 이유는 교사 1명이 담당해야 하는 학생수가 많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의 학교교육은 시스템화되어 있는데 교사 수급, 학급당 학생수, 학생 교구재 등 모든 것이 경제 논리나 효과성에 맞춰져 있다.
예를 들어 어느 정도의 예산을 투입하면 어떤 교육효과가 나타나는지 수치로 측정하고 그 결과에 따라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교육시스템이 이렇게 굳어지다 보니, 교사 1인당 학생수를 낮추는 것은 전체 비용이 증가하게 되므로 정부 차원에서 수용하기 힘든 정책이 되며,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책에 의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디지털교육은 구원투수처럼 교실 수업을 개선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불어 넣었다. 교육부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AI·디지털교과서’는 한 교실에 수십 명의 학생이 있어도 대시보드를 통해 학생들의 학습현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한다.
또한 학생들이 모르는 부분이 생겼을 때, 챗GPT와 비슷한 디지털 튜터가 제공되어 질문하고 답변 받을 수 있는 보조교사 서비스도 있다고 한다. 필자는 터치 교사단 연수를 기획하고 강사로 참여했는데, 이 연수에서 AI 코스웨어를 비롯해서 AI·디지털교과서의 기능을 소개하고 교사들이 수업에 어떻게 적용할지 탐색하였다.
대략 교실수업 환경을 상상해 보면 이렇다. 처음 수업을 시작할 때, 교사는 사전 진단평가 문항을 세팅해 두면 학생들이 자신의 스마트기기로 문제를 푼다. 그 결과에 따라 학생들의 수준 진단이 이루어지고, 수업목표에 맞추어 사전에 세팅된 다양한 학습자료와 문제은행에서 수준별로 뽑아온 콘텐츠가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전달된다.
학생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콘텐츠와 문제를 게임하듯 풀면서 지식을 배운다. 이후 팀별 프로젝트나 토의·토론을 통해 적용·분석·평가·창작 같은 고차원적 사고과정을 경험한다. 수업 말미에는 교사가 세팅해 둔 형성평가 문제를 해결하면서 학습목표에 도달했는지 성취도를 평가한다.
성취도평가에 따라 수준별 과제나 복습 내용이 학생들에게 제시된다. 이런 과정은 교사가 학습콘텐츠를 세팅하고 학습지를 만들고 평가해서 채점하고 피드백을 주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교실에서 수업해 보면 단위시간 안에 그 모든 과정을 모든 학생에게 공평하게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AI·디지털교과서는 1명의 교사가 모든 일을 담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 과정을 자동화해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이야기만 들으면 정말 교육의 신세계가 열리는 듯하다. 현대교육의 역사에서 기술이 교사를 대체할 것이라는 주장은 여러차례 있었다. 라디오가 처음 나왔을 때도 그랬고, TV도 그랬다. 라디오나 TV는 단방향이기 때문에 교사를 대체할 수 없었지만,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는 양방향이 가능하기 때문에 잘 만들어진 교육용 SW가 교육을 대체할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결국 어떻게 되었는가? 교사는 사라지지 않았고 교사가 감당해야 하는 일은 더욱 늘어났다. 인공지능이 교사를 대체할 것인가?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과연 교사는 필요한가?
최근 등장한 챗GPT나 구글의 제미나이(Gemini)는 지금까지의 매체와는 다른 특징을 보인다. 사용자의 질문에 따라 답을 주는데 인류가 축적해 온 지식을 학습했기 때문에 백과사전 수준의 답을 준다. 가끔 틀린 답(할루시네이션)을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답을 준다. 마치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상황에 맞는 답을 주는 것 같다. 언제든지 맘 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와 대화는 느낌이다. 챗GPT는 교사들에게 묻고 있다.
‘내가 당신보다 더 잘 가르칠 수 있는데 교사가 필요한가요?’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AI·디지털교과서에 탑재된 챗봇과 대화하면서 공부한다면 교사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AI·디지털교과서는 교육의 기회균등을 실현하고, 모든 학생이 수업에서 소외되지 않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교사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면 대신할 수 없는 역할은 무엇일까? '
최근 교사의 역할을 규명하는 모델 중 가장 많이 인용되는 모델은 TPACK이다. 교육학(Pedagogy)·교육내용(Content)·기술(Technology)이 함께 작용하여 교수와 학습을 효율적·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교사는 3가지 영역에 모두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우리 스스로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교사란 무엇인가?’, ‘교사가 해야 하는 근본적인 역할은 무엇인가?’이다. 만약 교사의 역할이 지식 전달자라면 그것은 인공지능이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라면 말이다.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지식이 학생들의 머리와 가슴에 남아 실제 삶 속에서 발현되고 실천될 수 있게 하는 것이 교육이다. 인공지능은 아이들을 데이터로 바라본다. 어떤 문제를 잘 풀었는지, 어떤 활동을 했는지 데이터와 그래프로 보여준다.
반면 교사는 아이들을 마음으로 바라본다. 아이들의 흥미와 소질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지 총체적으로 바라본다. 데이터에 나타나지 않은, 아직 꽃피지 않은 아이의 잠재력을 볼 수 있다. 스크래치(Scratch)를 만든 MIT의 미첼 레스닉 교수는 <평생 유치원>이란 책에서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교사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촉매자: 배움을 가속화하는 불씨를 제공해야 한다.
컨설턴트: ‘무대 위의 현자’가 아니라 ‘곁에 있는 안내자’
연결자: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지원을 연결해 주어야 한다.
협력자: 멘토도 자신의 프로젝트를 하고, 그 프로젝트에 회원들을 참여하도록 권한다.
인공지능이 권유하는 콘텐츠를 공부하는 것보다 선생님이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고 “수환아, 이 부분 참 잘했네. 이 내용을 더 학습해 볼까” 하는 것이 아이들의 학습동기를 불러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어떤 내용과 방법을 적용하면 더 잘 배울지 고민하고, 연구하며, 적용하는 일은 아이들의 드러난 능력과 잠재된 능력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 선생님’이 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선생님이라면 누구나 같은 꿈을 꾼다. ‘나를 만나는 아이들이 각자의 소질과 적성을 발견해서 꿈을 이루는 아이로 자라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혹자들은 인공지능이 교육을 바꿀 것이라고 얘기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인공지능은 꿈을 꾸지 않는다. 사람만이 꿈을 품고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서 인공지능 시대에도 교사가 희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