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현실이 참 어렵다. 학생들의 문제행동이 더 심각해지고, 아동학대 고발이 빈번하고, 민원이 넘쳐나고, 행정업무가 쌓인다. 교사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좋은 교육이 이뤄질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학교 현장이 참 어지럽다. 마치 폭탄 돌리기라도 하듯이 문제행동 학생은 상담사에게, 갈등은 조정전문가한테, 금쪽이 부모는 교감에게, 학폭은 교육지원청에, 돌봄은 학교에 맡긴다. 돌고 돌아봤자 결국 교육 영역 내에서 터질 게 뻔한데도 말이다.
교육 시스템이 절망스럽다. 입시가 문제고, 사교육이 문제고, 무한경쟁이 문제고, 학생 수 급감이 문제임을 우리 모두 너무 잘 안다. 그러나 해결책은 보이지 않고 조금이라도 나아질 기미마저 보이지 않는다.
함께 조율하는 교사상 필요해
그럼에도 교사는 위로 같은 게 필요하지 않다. OECD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 교사의 수준은 세계 최고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교사는 여태껏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해 나가리라 굳게 믿는다. 단 시각을 조금 바꿨으면 한다.
일단 문제에 집중하지 말아야 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터널 비전으로 시야가 더 좁아지는 악순환에 빠지기 때문이다. 그 대신 우리가 원하는 학교와 학생과 교사의 모습을 그려야 한다. 해결책은 찾는 게 아니라 그려내는 것이다.
우리가 그려야 하는 학교는 더 이상 지식을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AI와 챗봇이 일터와 생활을 주도하는 새로운 시대에 암기와 계산하는 것을 공부라 여기는 교육은 수명을 다 했다. 이제 교사는 학생에게 그런 공부시키는 게 아니라 ‘공조’하는 존재여야 한다.
공조(co-regulation)란 ‘함께 조율하기’라는 뜻으로 최근 뇌과학 연구로 막 떠오르는 신개념이다. 절제하고, 자제하고, 집중하고, 공감하고, 배려하는 능력은 저절로 생기지 않고 누군가가 아이에게 모델링을 해줘야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악기가 스스로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조율되는 이치와 같이 아이의 뇌도 인풋과 아웃풋 사이를 조율하는 학습 과정에 누군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회·정서 역량은 이론 수업이 아니라 개별적이고 지속적이며 긴밀한 코칭과 멘토링 결과다.
새로운 학교 모습으로 이끌어야
우리 세대는 어릴 때 집에서 충분히 공조를 받았으며, 학교에 가서 비로소 읽고 쓰고 덧셈과 뺄셈 공부를 시작했다. 요즘 학생들은 공조 대신 선행 공부만 잔뜩 한 상태에서 입학하니 학교 교육이 파행되는 게 당연하다.
이런 문제를 초래하는 사회 구조를 한탄하기보다는 새로운 학교를 그려보자. 차분하고 편안하고,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을 정도로 자존감과 자부심을 회복한 학생들이 함께 열심히 공부하는 교실을 떠올려 보자. 교사를 존경하고 따르고 닮고 싶어 하는 학생을 그려본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교사가 공부의 신이 아니라 ‘공조’의 달인이 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가 다시금 스승으로 불릴 것이다. 이 역시 선생님들께서 잘 해내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