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함께 읽어요] 이야기는 왜 힘이 셀까요?

2024.03.14 17:18:27

이야기는 힘이 세다고 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우리 뇌에 비밀이 있습니다. 뇌는 ‘특별한 바보’입니다. 제가 붙인 별명입니다.

 

저는 강의 중에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드라마는 어떤 드라마인가요?’라는 질문을 하곤 합니다. 사전 예고나 설명 없이 던지는 질문에 뭔가 말하려다 말고 다들 저를 멀뚱히 쳐다보기만 합니다. 간혹 ‘막장 드라마요’라고 대답하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답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죠. 제가 ‘바로 내가 보는 드라마입니다’라고 말하면 다들 맥없이 웃습니다. 맞는 말 같기는 한데 답이 시답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틀린 말이 아닙니다.

 

아무리 재미있다고 소문난 드라마라고 해도 내가 보지 않으면 재미없습니다. 또 보기 시작하면 이어지는 이야기에 빠져 계속 보게 됩니다. 그러니 제 말은 틀린 게 아닙니다.

 

재미있는 걸 좋아하는 뇌

 

우리의 뇌는 재미있는 걸 아주 좋아합니다. 재미있는 놀이, 재미있는 이야기, 심지어는 공부도 재미있게 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합니다. 아이들의 뇌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중독을 겪기도 합니다. 중독이란 ‘뇌가 어떤 일의 재미에 지나치게 빠져 삶의 균형을 잃은 상태’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게임 중독, 알코올 중독, 도박 중독 등이 있습니다. 바람직한 중독이 있다면 ‘읽기 중독’일 겁니다. 중독까지 부를 수는 없어도 아이들이 늘 이야기를 즐기며,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아주 좋은 일일 겁니다.

 

뇌를 특별한 바보라고 부르는 이유는 있습니다. 뇌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하는 바보스러운 면이 있습니다. 뇌는 잘 속습니다. ‘가짜로 웃어도 진짜로 웃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실험을 해보니 같은 사람이 같은 책을 읽을 때 ‘웃는 얼굴’로 읽을 때와 ‘입을 삐쭉 내민 얼굴’로 책을 읽을 때의 반응을 조사해 보니 ‘웃는 얼굴’로 책을 읽을 때 더 재미있다고 느끼더라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실험 결과입니다.

 

또 하나의 특성이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나와 다른 사람을 구분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연구에 의하면 상대방을 향해 욕을 하면 나의 뇌가 먼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하죠. 상대방을 향해 욕을 했는데도 내 뇌가 먼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이야기로 배우는 삶의 지혜

 

우리의 뇌, 특히 아이들의 뇌는 재미있는 걸 좋아하고,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지 못하며(않으며), 나와 남도 구분하지 못합니다. 이 세 가지 특성은 이야기의 특성과 정확하게 연결됩니다. ①내 얘기도 아니고, ②진짜도 아닌 이야기를 ③재미있게 읽다 보니 감동(느낌)이 일어나는 것, 이것이 뇌의 특성과 이야기의 특성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 설명할 게 있습니다. 우리 뇌의 ‘거울 뉴런(mirror neuron)’이라는 부분입니다. 이 뉴런은 다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 걸 보기만 해도 우리가 직접 해보는 것과 같은 효과가 생기게 하는 뇌의 특정 중추입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기만 해도, 그런 내용 글로 써 놓은 이야기를 읽기만 해도 똑같은 경험 효과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야기의 의미를 설명하고 표현하는 여러 가지 말이 있지만 ‘어떤 이유로 삶의 균형이 무너진 주인공이 삶의 균형을 회복하여 가는 과정’이라는 정의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읽는 이야기책을 살펴보면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는 걸 아실 겁니다. 부모가 일찍 돌아가시거나 안 계시고, 가난하고, 키가 작고, 얼굴이 못생기고(?) 하는 등의 가정이나 개인의 결핍이 반드시 있으며, 이런 결핍을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친구들과 함께 모험을 떠나고,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하며, 실수나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서며, 끝내 행복하게 잘 살아간다는 등의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거의 모든 이야기가 이런 구조로 돼 있습니다. 이런 구조로 되어 있는 이야기를 충분하게 읽는 것은 아이들에게 또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이야기에서 삶을 배웁니다.

이야기를 읽는 건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특히 주인공의 삶을 배우게 됩니다. 주인공이 힘을 내면 아이들도 힘을 내고, 주인공이 용기를 내면 용기를 내는 모습과 방법을 배웁니다. 실패도 성공도 모험도 인간관계도 배우는 것입니다. 언어적인 경험이 확장되고, 이야기를 즐기는 힘과 삶을 살아가는 힘을 얻는 과정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읽도록 도와주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심영면 서울아현초 교장·사단법인 책읽어주기운동본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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