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떠나는 별자리 여행] 황금양털을 찾아 나선 이아손과 희대의 악녀 메데이아

2024.05.07 10:00:39

 

아르고자리(Argo)는 초봄 남쪽 하늘에서 볼 수 있는 커다란 별자리로, 그리스신화의 아르고 원정대가 타고 간 아르고호를 연상해 가져다 붙인 이름이다. 탐험이 성공하자 아르고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에게 봉헌된 후 밤하늘의 별자리가 되었다. 
 

아르고자리(Argo)는 원래 하나의 별자리였는데, 1752년 프랑스의 천문학자 니콜라 루이 드 라카유(Nicolas Louis de Lacaille)가 고물자리(Puppis)·돛자리(Vela)·용골자리(Carina)·나침반자리(Pyxis)의 4개의 별자리로 나누었고, 1928년 국제천문연맹이 이 4개의 별자리를 세계 공통으로 인정한 88개 별자리에 포함시켰다. 


거대한 배가 돛을 펄럭이며 노를 저어 밤하늘을 가로질러 항해하는 형상이다. 고물자리는 배의 끝 부분, 돛자리는 배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돛 부분, 용골자리는 배의 머리 부분부터 배의 끝 부분까지, 배 밑바닥을 지탱하는 길고 큰 목재 부분, 나침반자리는 아르고호의 돛대 끝에 있는 나침반에 해당한다.

 
카노푸스(Canopus)는 용골자리의 알파별로서 태양과 시리우스(Sirius)를 제외하고는 겉보기 등급 -0.74로 천구에서 가장 밝은 별이다. 동아시아에서는 이 별을 보면 경사로운 일이 생긴다는 좋은 징조의 별, 혹은 오래 산다는 장수의 별로 여겨졌다. 다른 두 별인 아비오르(Avior)와 아스피디스케(Aspidiske)는 돛자리의 알세피나(Alsephina)와 마르케브(Markeb)와 함께 거짓 십자가(False Cross)로 알려진 별 패턴을 형성한다. 종종 남십자자리로 오인되는 별자리다. 


이 별자리는 그리스신화의 황금양털과 아르고 원정대 이야기와 관련돼 있다. 고대 그리스 왕국 보이오티아 왕 아타마스가 후처 이오의 계략에 빠져 본처의 아이들인 프릭소스와 헬레를 제우스 제단에 제물로 바치려고 하자, 제우스가 황금양을 보내 남매를 구출한다. 콜키스라는 나라에 무사히 도착한 프릭소스는 황금양은 제우스에게 바치고, 황금양털은 왕에게 선물한다. 황금양털은 콜키스에 번영을 가져다주는 신성한 보물이 되어 잠을 자지 않는 용이 지키게 된다. 이후 황금양털을 두고 이아손(Iason)과 마녀 메데이아(Medeia)의 모험과 사랑 그리고 복수가 펼쳐진다. 이아손과 아르고 원정대에게는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그림을 통해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 보자.

 

 

황금양털을 찾아서 
먼 옛날 그리스의 이올코스라는 나라가 있었다. 늙고 무능한 왕 아이손은 젊고 야심에 찬 이복동생 펠리아스에게 왕위를 빼앗긴다. 이에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아이손의 아들 이아손은 비밀리에 펠리온산의 현인 켄타우로스 케이론에게 보내져 칼과 활 쏘는 법, 악기 연주법, 배를 만들고 뱃길을 찾는 항해술 등을 배운다. 


어느덧 늠름한 청년으로 자란 이아손은 궁에 돌아와 왕위를 주장하고, 교활한 펠리아스는 그에게 황금양털을 가져오면 왕위를 돌려주겠다고 약속한다. 사실상 이것은 실현 불가능한 과업이었다. 그동안 황금양털을 가져오려고 많은 전사가 원정을 떠났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아손은 헤라클레스·테세우스·오르페우스 등 쟁쟁한 영웅 50여 명을 모아 아르고 원정대(Argonaut)를 조직해 흑해 연안의 콜키스로 떠난다. 


로렌초 코스타(Lorenzo Costa, 1460~1535)의 ‘아르고호’에서는 영웅들이 콜키스 해안에 도착한 순간을 묘사한다. 코스타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화가로 만투아의 프란체스코 곤차가와 여성 미술 후원자였던 이사벨라 데스테의 궁정화가로 일했다.

 

신화에 의하면, 아르고호는 아테나의 도움을 받아 기획되고 건설되었다. 제작자인 그리스 조선공 아르고의 이름을 따서 배 이름이 지어졌고, 신성한 도도나 숲에 있는 ‘말 하고 예언도 하는’ 마법의 나뭇조각으로 뱃머리를 제작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 시인들의 서사시에서는 아르고호가 그리스 전함인 갤리 같은 형태일 것이라고 상상했고, 코스타의 아르고호는 이에 의거해 그려졌을 것이다. 역사가들은 아르고 원정대 신화는 고대 바이킹 역사에서 그랬듯이 새로운 세계를 발견하기 위해 밖으로 나가는 젊은 선원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아손과 아르고 원정대가 갖가지 시련을 극복하면서 황금양털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단순히 신화의 한 소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생에서 고난을 겪으면서 용기와 노력으로 어떤 목적을 이루어가는 과정, 혹은 이런 과정을 통해 자아를 실현해 가는 과정을 상징한다. 세계 여러 나라의 신화·민담·설화 등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이러한 자아 찾기의 여정은 헤라클레스가 12과업을 이루어가는 이야기나 퍼시벌·랜슬롯·갤러해드 등 아서왕의 원탁기사들이 성배를 찾아가는 설화 등에서도 나타난다. 


누구나 인생에서 자기 나름의 황금양털이나 성배를 마음속에 품고 있고 그것을 찾아 헤맨다. 나의 황금양털은 무엇이고 제대로 찾아가고 있는 걸까, 그리고 끝내 찾을 수 있을까?

 

 

불꽃같은 사랑에 빠진 마녀 메데이아 
이아손 일행은 마침내 황금양털이 있는 콜키스 해안에 도착하고, 이아손의 외모와 영웅적인 품격에 반한 콜키스의 왕 아이에테스의 딸 메데이아 공주의 도움을 받는다. 메데이아는 마녀 키르케의 조카로서 그녀 역시 마녀였다. 그녀는 이아손에게 마법의 약을 줘 황금양털을 지키는 용을 잠재우고 그것을 훔칠 수 있게 돕는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고 격노한 아버지로부터 도망치다가 바짝 뒤쫓는 아버지의 추격을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남동생을 포로로 잡아 몸을 갈기갈기 찢은 후 바다에 던진다. 아이에테스 왕은 처절한 고통 속에서 아들의 시신을 수습하느라 결국 이아손과 메데이아 일행을 놓치고 만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거침없이 행동에 옮기는 잔혹한 여성이었다.


영국의 고전주의 양식의 화가인 드래이퍼(Herbert James Draper, 1863~1920)는 야심 찬 대형캔버스에서, 혈육을 죽이는 가장 극적인 장면을 통해 메데이아의 강력한 악녀 이미지를 보여준다. 배 한가운데 서서 선원들에게 그녀의 남동생을 바다로 던져 버리라고 명령하는 메데이아의 매섭고 무자비한 눈매와 역동적인 몸짓이 인상적이다. 왼쪽 화면에는 아버지 아이에테스의 배가 맹렬히 아르고호를 추격하고 있고, 뱃머리 부분에서는 선원들이 힘을 다해 노를 젓고 있으며, 배꼬리에서는 전투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메데이아의 뒤에는 이아손이 황금양털을 든 채 선원들을 지휘하고 있다. 

 

 

복수는 나의 것, 희대의 악녀 메데이아
황금양털을 찾아 떠난 이아손과 아르고 원정대 이야기의 백미는 사실상 불세출 영웅들의 모험담이 아니라 팜 파탈의 최고봉 메데이아가 자신을 배신한 남편 이아손에게 복수하기 위해 자식들을 살해하는 끔찍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의 비극작가 에우리피데스가 ‘메데이아’를 상연한 이래 많은 문학과 미술작품에서 다루어진 소재다. 그녀는 왜 자신이 낳은 자식들까지 죽이게 된 것일까? 


오직 이아손을 위해 조국과 아버지를 배신하고 남동생까지 죽이면서 기꺼이 악녀가 되었던 메데이아를 기다린 것은 달콤한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이아손 일행은 우여곡절 끝에 이올코스에 귀환하지만, 펠리아스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그러자 메데이아가 다시 계략을 꾸며 왕을 끓는 물에 삶아 죽이고, 이 끔찍한 행위에 분노한 백성들은 결국 메데이아와 이아손을 코린토스로 추방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이아손이 메데이아를 배신해 버린다. 그녀를 버리고 코린토스 왕의 딸 글라우케와 결혼하려 한 것이다. 


메데이아는 분노에 치를 떤다. 그녀가 누구인가? 사랑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살인과 배신을 밥 먹듯이 한 악녀의 본성은 이즈음에 이르러 클라이맥스에 이른다. 희대의 악녀 메데이아는 코린토스의 왕과 글라우케, 그리고 자신의 두 아들까지 모조리 죽인 후 아테네로 도망쳐버리고, 모든 것을 잃은 이아손은 절망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798~1863)는 자식들을 살해하기 직전인, 강인해 보이지만 어딘가 불안한 표정의 메데이아를 묘사했다. 이 그림만큼 여성의 파괴적인 힘을 격렬하게 보여주는 작품은 없을 것이다. 들라크루아의 ‘메데이아’는 자식을 살해하는 어머니의 극단적인 정신병리학적 현상을 섬뜩하게 보여준 걸작이다. 단도가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데, 우리는 그녀가 곧 그것으로 아이들을 죽일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들라크루아는 이 살인의 현장을 아무도 도움 줄 수 없는 외딴 동굴로 설정하고, 선명한 명암대비 속에 인물들을 던져 넣음으로써 긴박한 감정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어머니의 행동에 공포를 느낀 아이들은 우악스럽게 그들을 틀어쥐고 있는 그녀의 팔뚝 밑에 축 늘어져 반항조차 못 하고 있다. 오른쪽 팔뚝에 매달린 중앙의 아이는 거의 목이 졸려 있고, 왼쪽 팔 아래 엎드린 아이는 관람자를 향해 두려움에 찬 눈길을 보내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메데이아를 최초의 페미니스트로 본다. 남성 중심적 혹은 가부장적 가치관이 그녀를 악녀 혹은 마녀로 만든 것이고, 그녀는 이아손의 부당한 대우에 맞서 철저하게 복수한 강하고 독립적인 여성이라는 것이다. 사실 근세에 이르기까지 의술을 가지고 치료약을 제조할 줄 아는 전문적 지식을 가진 여성들은 남성 우월적 사고에 빠져 그들을 못마땅하게 본 남자들에 의해 마녀사냥의 희생물이 되기도 했으니, 마법의 약을 만들어 이용한 메데이아의 지성과 능력은 마녀로 몰아붙이기 좋은 핑곗거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수많은 살인과 악행으로 볼 때 원조 페미니스트라기보다는 위험한 팜 파탈에 가까워 보인다. 애초에 자신의 사랑을 위해 남동생을 찢어 죽이고, 아버지의 마음을 산산조각 냈으며, 자기 자식들까지 죽여 버린 메데이아에게서는 사랑이 아니라 비틀린 집착과 자기애만을 볼 수 있다. 그녀의 불행은 이아손 때문이 아니라 그녀 자신으로부터 연유한 것이다.

김선지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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