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교육부는 기존의 교원능력개발평가를 폐지하고 교원역량개발지원제도로 전환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해당 방안은 교육현장에서 오랫동안 비판 받아온 기존 평가방식을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교사들의 자율적인 성장을 지원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교사들에게 실질적인 유익으로 다가올지는 의문이다.
교원능력개발평가 폐지 배경
교원능력개발평가는 교사들의 교육적 역량을 평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제도의 실효성에 대한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평가가 지나치게 주관적인 요소에 의존해 실제 교사의 역량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특히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 조사가 포함된 평가방식은 교사의 인기에 좌우되는 등 객관성을 담보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평가의 공정성이 훼손되고, 교사들의 사기가 저하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더 나아가 서술형평가에서 발생한 성희롱 논란은 교사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 사례로,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학생 만족도 조사는 학생 인식 조사로, 학부모 만족도 조사는 학교 평가로 대체되었으며, 강제적으로 실시되던 능력향상 연수도 폐지되는 방향으로 개편되었다.
교원역량개발지원제도, 새로운 시작일까?
교원역량개발지원제도는 기존의 평가 중심 방식을 폐지하고, 교사들이 자율적으로 역량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이다. 특히 AI 기반의 맞춤형 연수와 자기역량진단시스템을 도입하여 각 교사가 개인의 필요에 맞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과연 AI가 교사들의 필요와 요구를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각 교사가 처한 교육환경, 학생들의 특성, 개별 교사의 교육방식과 요구사항은 매우 다양하다. 이러한 복잡한 변수들을 AI가 얼마나 정교하게 분석하고 반영할 수 있을까? AI 기반 시스템의 실효성을 뒷받침할 실증적인 데이터가 부족한 상황에서, 단순히 기술적인 도구를 도입하는 것만으로 교사들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고 성장을 지원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이번 변화가 새로운 시작이 될지, 아니면 단순히 이름만 바뀐 제도가 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우려되는 지점
교원역량개발지원제도는 동료교원평가, 학생 인식 조사, 그리고 자기역량진단을 통해 교사의 성장을 촉진한다고 하나, 이러한 방식이 교사의 역량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키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교사의 역량을 평가할 신뢰성 높은 데이터 확보가 어떻게 이루어질지, 그리고 평가과정이 얼마나 공정하고 일관되게 운영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남는다.
1) 진정한 자율성은 보장될까?
이번 개편의 핵심은 교사의 자율적 성장을 지원하는 데 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평가에 중점을 두고 운영될 가능성이 크다. 동료교원평가, 학생 인식 조사, 자기역량진단 등 다양한 방식을 도입한다고 하지만, 동료교원평가인 다면평가와 학생 인식 조사 결과가 특별연수 선정 기준으로 사용될 경우, 교사들은 자율적 성장이 아닌 평가 점수를 높이기 위한 형식적 노력을 우선시하게 될 위험이 있다. 즉 자기주도적 성장을 위해 노력한 교원이 보상을 받기보다, 보상을 위해 노력하는 ‘목적 전도’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결국 교원역량개발지원제도는 교사들이 자율적으로 성장하고 역량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평가기준에 맞춰 행동하도록 요구하는 구조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 즉 교원역량개발지원제도는 교사의 진정한 자율적 성장을 촉진하기보다 형식적인 행동을 강요하는 타율적인 제도로 운영될 가능성이 있다.
2) 온정주의와 평가의 주관성
동료교원평가에서 나타날 수 있는 온정주의는 평가의 신뢰성과 객관성을 크게 훼손하는 요소이다. 교사들 사이에서는 비판적인 평가보다는 서로 긍정적인 평가를 주고받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교사의 실제 역량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 문제는 기존 교원능력개발평가에서도 끊임없이 제기되었던 비판 중 하나였으나 새 제도에서도 이를 방지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책이 부족하다. 교사들 간의 관계와 친분에 의해 평가가 왜곡될 가능성이 크고, 이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기대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평가자 교육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체계를 바탕으로 한 공정한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제도의 실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역량 진단의 결과가 교사의 역량 개발로 실제 연결될 수 있도록 체계적인 피드백과 후속 지원방안이 필수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3) 형평성의 문제
보상 확대 방침으로 교사들 간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학생과 교사 간의 관계나 학생들의 개별적인 특성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기에 이를 근거로 교사의 역량을 판단하는 것은 불완전하다. 특히 학생 인식 조사가 초등학교 4학년 이상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유치원 및 초등학교 1~3학년 교사들은 해당 점수를 어떻게 평가하고 반영할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이로 인해 일부 교사들은 평가에서 제외되거나 평가기준의 모호성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
이러한 차이가 교사의 능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보상과 연수 기회로 이어진다면,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아 교사들 간의 불만이 커질 수 있다. 특히 교사들 간 평가기준이 일관성이 없거나 모호한 상황에서 불공정한 결과가 발생한다면 교직사회의 신뢰가 저하될 수 있다. 이렇듯 형평성 문제는 교사들의 사기 저하와 갈등을 유발할 수 있어, 제도의 지속 가능성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4) 행정적 부담 증가의 가능성
교원능력개발평가 폐지의 목표 중 하나는 학교현장의 평가 부담을 줄이는 것이지만,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면서 오히려 행정적 부담이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동료교원평가나 자기역량진단과 같은 평가가 연중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학교 내에서 이를 처리하고 기록하는 업무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 이로 인해 교사들이 교육 외적인 행정업무에 많은 시간을 빼앗길 수 있으며, 수업준비와 연구에 집중할 시간이 줄어들 우려가 크다. 즉 교사들의 행정적 업무부담은 더욱 가중될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제도가 실질적인 교육 질 향상보다 행정적 부담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운영된다면, 교사들의 자율적인 성장을 지원한다는 새로운 제도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교사의 성장을 위한 조건 _ 평가가 아닌 지원
이번 개편안은 교사들의 자기주도적 성장을 지원하고, 평가 부담을 줄이기 위한 중요한 시도이다. 그러나 교사의 진정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평가방식의 변화만으로는 부족하다. 교사들이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나 부담 없이 전문성을 키울 수 있으려면, 실질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다.
교사들이 자율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행정업무를 경감하는 등의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이러한 지원이 없다면 새로운 제도는 단지 이름만 바뀐 또 하나의 비효율적인 제도로 끝날 위험이 크다.
진정한 변화는 제도적 개편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교사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그들이 교육현장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보완과 개선 또한 이루어져야 한다. 교사들이 교육에 열정을 쏟고, 자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교사의 성장을 위한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