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마지막 달 12월이다. 어김없이 한파 예보가 이어지고, 차가운 공기가 피부에 닿을 때마다 한 해를 버텨낸 자신에게 위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연말이면 으레 회식과 송년회로 분주하지만, 올해만큼은 조용히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12월의 여행은 화려한 볼거리보다 고요한 사색이 어울린다. 하지만 사색의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온전한 휴식 속에서, 어떤 이는 일상과 단절된 수행 속에서, 또 어떤 이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도전 속에서 한 해를 정리한다.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2025년을 마무리할 수 있는 국내 여행지들을 '휴식', '수행', '도전'이라는 세 가지 테마로 나눠 소개한다.
<휴식: 따뜻함을 찾아 몸과 마음을 녹이다>
강원 강릉 '안반데기' - 고원의 고요함 속으로
해발 1100m 고원지대에 자리한 안반데기는 겨울이면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된다. 광활한 고랭지 채소밭이 새하얀 눈으로 뒤덮이고, 세상과 단절된 듯한 고요함이 찾아온다. 관광객이 많지 않아 한적하게 설경을 감상하며 사색하기에 완벽한 곳이다.
안반데기 마을까지 오르는 길 자체가 여행이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점점 시야가 넓어지고,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탁 트인 풍경이 펼쳐진다. 특히 일출과 일몰 시간대의 풍경은 압권이다. 인근에는 강릉 지역의 온천 리조트들이 있어 안반데기에서의 고요한 시간 후 따뜻한 온천에서 몸을 녹일 수 있다. 휴식과 자연이 만나는 겨울 여행을 원한다면 안반데기와 강릉 온천을 함께 코스로 잡는 것을 추천한다.
전남 순천만 - 겨울 갈대밭의 정취
순천만의 겨울 갈대밭은 한 해를 마무리하며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여름의 푸른 갈대와 달리, 겨울 갈대는 황금빛을 띠며 바람에 일렁인다. 해질 무렵 갈대밭 위로 펼쳐지는 노을은 한 해의 끝을 아름답게 장식한다.
순천만 갈대밭은 잘 조성된 탐방로를 따라 걸을 수 있어 가볍게 산책하며 자연을 즐기기 좋다. 용산전망대까지 오르면 S자로 굽이치는 순천만의 물길과 광활한 갈대밭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일몰 시간대를 맞춰 방문하면 갈대밭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장관을 볼 수 있다.
경기 가평 '아침고요수목원' - 겨울 정원의 고요한 아름다움
아침고요수목원은 겨울이 되면 오색별빛정원전으로 유명하지만, 낮 시간대의 겨울 정원도 사색하기에 좋다. 정원의 고요함,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비치는 겨울 햇살, 겨울에도 푸른 침엽수들의 생명력.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며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수목원 곳곳에 마련된 정원을 천천히 걸으며 한 해를 돌아보기 좋다. 특히 하경정원과 석정원은 한국 전통 정원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소나무 정원길을 걷다 보면 도심의 소음이 아득히 멀게 느껴진다.
충북 제천 '리솜포레스트' - 온수풀에서 찾는 평온
충북 제천시 백운면 구학산 자락에 자리한 리솜포레스트는 150년 된 원시림 속에 들어선 리조트다. 이곳의 가장 큰 자랑은 국내 유일의 포레스트형 스파풀이다. 일반적인 리조트 워터파크와 달리 이곳의 야외풀은 완전히 자연 속에 파묻혀 있다.
특히 12월 한파가 몰아칠 때 이곳의 인피니티풀에서 느끼는 경험은 특별하다. 머리 위로는 차가운 공기가 스치고, 가슴 아래로는 따뜻한 물이 몸을 감싼다. 풀 너머로는 구학산의 설경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펼쳐진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앉아 있노라면, 한 해 동안 치열하게 살아오며 쌓인 피로와 잡생각들이 수증기처럼 흩어지는 느낌이다.
<수행: 일상을 떠나 마음을 정돈하다>
경북 경주 '불국사·석굴암' - 천년 고도의 정적 속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불국사와 석굴암은 겨울에 더욱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천년을 이어온 석탑과 전각들이 눈에 덮여 있는 모습은 시간을 초월한 듯한 느낌을 준다. 평일 오전 시간대를 이용하면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사찰을 둘러볼 수 있다.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를 지나 대웅전에 이르는 길, 다보탑과 석가탑을 마주하는 순간, 역사의 무게가 느껴진다. 토함산 중턱에 자리한 석굴암까지 이어지는 숲길을 걸으며 한 해를 돌아보는 것도 의미 있다.
강원 평창 '월정사' - 전나무숲에서 마음을 비우다
눈 내린 전나무숲을 걸으며 한 해를 돌아보기에 이보다 좋은 곳이 있을까. 오대산 자락에 자리한 월정사는 겨울에 특히 고요하다.
월정사의 일주문에서 금강문까지 이어지는 약 1km의 숲길은 국내에서 가장 큰 전나무 군락지로,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드라마 속 장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12월 눈 내린 전나무숲의 실제 풍경이다. 수십 년 자란 전나무들이 하늘을 가릴 듯 우뚝 서 있고, 그 사이로 새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다. 눈 밟는 소리만이 들리는 고요한 숲길을 걸으면 그 자체로 힐링이 된다.
경북 경주 '불국사·석굴암' - 천년 고도의 정적 속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불국사와 석굴암은 겨울에 더욱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천년을 이어온 석탑과 전각들이 눈에 덮여 있는 모습은 시간을 초월한 듯한 느낌을 준다. 평일 오전 시간대를 이용하면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사찰을 둘러볼 수 있다.
불국사의 청운교와 백운교를 지나 대웅전에 이르는 길, 다보탑과 석가탑을 마주하는 순간, 역사의 무게가 느껴진다. 토함산 중턱에 자리한 석굴암까지 이어지는 숲길을 걸으며 한 해를 돌아보는 것도 의미 있다.
전남 보성 '녹차밭' - 겨울 차밭의 고요
보성 녹차밭은 봄과 여름의 신록이 유명하지만, 겨울 녹차밭의 정적인 아름다움도 독특한 매력이 있다. 초록빛을 잃은 겨울 차밭은 차분한 갈색과 회색의 조화를 이루며, 한적하고 사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대한다원과 보성녹차밭(한국차소리문화공원)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한 해를 정리하기 좋다. 특히 이른 아침이나 해질 무렵 방문하면 안개 낀 차밭의 몽환적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녹차 족욕과 따뜻한 녹차 한 잔으로 몸을 녹이는 것도 잊지 말자.
<도전: 내게 던지는 의미 있는 도전>
강원 태백 '태백산' - 눈꽃 산행의 감동
태백산은 한라산보다는 접근하기 쉬우면서도 겨울 산행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해발 1567m의 태백산은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 특성상 겨울이면 눈꽃으로 뒤덮인 환상적인 설경을 자랑한다.
당골광장에서 출발하는 코스가 가장 대중적이며, 정상인 천제단까지 약 3~4시간이면 왕복할 수 있다. 정상 부근의 주목 군락지는 눈에 덮여 더욱 아름답고, 천제단에서 바라보는 360도 파노라마 뷰는 등반의 피로를 잊게 한다. 특히 매년 1월에는 태백산 눈축제가 열려 더욱 풍성한 겨울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제주 '한라산 국립공원' - 백록담을 향한 설국 등반
한 해의 마지막을 도전으로 마무리하고 싶다면 한라산을 추천한다. 12월 한라산의 눈 덮인 구상나무들은 설국의 풍경을 만들어내고, 바람에 날리는 눈발은 환상적인 겨울왕국을 연출한다. 힘들게 정상에 올라 백록담을 마주하는 순간, 한 해 동안의 모든 고생이 보상받는 느낌이다.
한라산은 총 5개 코스로 영실, 성판악, 어리목, 관음사, 돈내코가 있다. 백롬담 정상까지 오를 수 있는 코스는 성팍악과 관음사 두 곳이 있다. 한라산을 오르는 5개 코스 중 영실과 관음사가 가장 선호도가 높지만, 겨울 한라산은 어느 길로 오르더라도 눈부신 설경으로 환상적인 겨울왕국을 볼 수 있다.
제주 '올레길' - 바다를 보며 걷는 성찰의 시간
등산이 부담스럽다면 제주 올레길을 추천한다. 총 27개 코스 중 겨울 바다를 보며 걷기 좋은 곳은 7코스(외돌개-월평포구, 14.6km)와 10코스(화순-모슬포, 15.6km)다. 관광객이 적어 조용하고, 겨울 바다의 거친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한 해를 되돌아보기에 적합한 분위기다.
올레길은 한라산 등반과 달리 각자의 페이스로 걸을 수 있고, 중간중간 쉬어갈 곳도 많아 부담이 적다. 해안 절벽을 따라 이어지는 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색에 잠기게 된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의 다짐을 세워보는 것도 의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