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치유 지상상담소⑩] 교사의 지도 방식을 탓하는 학생, 공감이 안 돼요

2025.12.11 17:02:08

 

  얼마 전 학생부장님께서 출결 불량, 흡연 등 규칙을 지키지 않아 교내 봉사 처분이 나온 학생들에 대한 교육을 요청하셨습니다. 여학생 4명에 대해 교육을 진행하였고 끝날 때쯤 학생부장님이 오셨습니다. 저는 그 때 아이들에게 소감을 묻고 활동을 마무리하려던 참이었습니다. 그중 한 학생의 말이 제게 오묘한 감정이 들게 했습니다. 대략 이런 내용과 뉘앙스였습니다.

 

  “그동안 성찰 교실에서 명심보감 같은 거 쓰게 하는 건 아무 의미도 없는데, 이렇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선생님하고 친해질 수 있어서 좋았어요. 선생님이 학생 지도를 할 때 청소 이런 거 시키지 말고 이렇게 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래야 우리도 사고 칠 때 선생님한테 미안해서 앞으로 안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죠.”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본인이 잘못해서 처분의 의미로 봉사를 하고 교육을 받는 것인데 교사의 지도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의 잘못이 먼저가 아니라 ‘이렇게 해줘야 우리가 잘못을 안 하죠’라는 인과관계상 모순된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치 교사를 지적하듯 말해서 더 기분이 묘했습니다.

 

  물론 교사도 수업, 상담, 생활 지도에 학생의 피드백을 받고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이 상황에 과연 맞는 말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와중에 천사 같은 학생부장님은 “참 똑똑한 아이네요. 진짜 우리가 명심보감이나 청소 말고 새로운 방법을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라고 하셔서 저는 제가 젊은 꼰대가 된 것 같았습니다.

(사연자: 정은미(가명) 전문상담교사)

 

  학생에게서 그런 말을 듣는다면 선생님뿐만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 역시 당황스러운 감정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반성하며 자신의 잘못에 대해 성찰하기보다 교사를 지적하는 듯한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왜 묘한 불편감을 느끼셨는지 충분히 이해되는 지점입니다. 말이라는 것이 ‘아’ 다르고 ‘어’ 다른데 학생의 그런 행동은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으리라 짐작됩니다.

 

 

  어떤 선생님께서는 “내가 네 친구니?”와 같은 반응을 보이셨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충분히 예의바르게 전달하는 방법도 있었을테니 말입니다. 그러나 이 상황을 단순하게 학생이 버릇없거나 자신의 잘못을 먼저 시인하지 않고 오히려 교사를 지적하는 식으로 인과관계가 모순적이라고 바라보는 것을 잠시 멈추고 다음의 내용을 함께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미숙한 표현에서의 오해

 

  청소년 상담과정에서 만나는 학생들의 표현은 예의바르고 성찰적이며 공손하기보다는 종종 어른들에게 반항적이거나 버릇없어 보이고 심리적 경계선을 갑자기 훅 밀고 들어오는 형태로 표현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말투 자체는 충분히 당황스럽고 예의없게 느껴질 수 있는 형태로 말이죠. 때문에 ‘학생이 나를 만만하게 보는 것은 아닌지’, ‘우습게 보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표현은 정서적으로 미성숙한 측면과 동시에 선생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은 욕구, 그리고 방어적인 태도가 한데 섞여서 나오는 결과일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회피하려는 동시에 자기 스스로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존재로 대접받고 싶고 친밀감을 나누거나 존중받고 싶은 관계적 욕구를 동시에 드러내다보니 서툴고 미성숙한 방식으로 표현이 전달되기 쉽습니다. 특히 상담선생님이면 학생이 더 친근하게 느끼거나 자신을 잘 이해해 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반영되는 경우도 종종 있어 더욱 그럴 수 있습니다.

 

  사연 속 학생은 아마 과거에도 교사를 비롯한 어른들로부터 지적받거나 처벌받은 경험이 누적된 청소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간혹 학교에서의 생활지도는 학생이 잘 해내지 못하는 행동이나 잘못한 행동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연습시키기 보다는 이미 잘하는 학생을 칭찬하고 “너도 우리가 정한 규칙을 잘 지킨다면 칭찬해줄거야, 하지만 그걸 어겼으니까 너는 벌을 받아야 해”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적과 처벌의 경험이 쌓인 아이의 시선에서는 ‘왜 항상 어른들은 나에게만 뭐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교사는 ‘애초에 너가 잘못을 하지 않았다면 혼날 일이 없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기 쉽고요. 때문에 학생의 표현은 “오늘처럼 대해주시면 저도 조금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의 미숙한 형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학생 마음에 희망 씨앗 심기

 

  학생의 말에서 봐야 할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실제로 말하고자 했던 내용은 지도 방식에 대한 평가가 아닌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시도한 교육적 접근이 자신에게 더 효과적이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표현이 미성숙했지요. “이렇게 해주면 선생님께 미안해서 사고 안 치죠”라는 말은 언뜻 너무 되바라진 것처럼 들리지만 저는 학생의 이 말을 보며 선생님께서 ‘아이의 마음에 있던 벽을 두드리며 따뜻하게 다가가셨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둘째, 관계를 잘 맺고 존중하면서도 처벌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학생들이 잘못을 저지른 후 명심보감만 쓰게 하는 무의미한 처벌 대신 선생님과의 교육 시간을 통해 아이는 수용받고 존중받는 경험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나도 학교에서 잘 지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학교는 답답하고 짜증나, 선생님들은 다 나를 싫어해!”가 아니라 “나도 좀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지난번 상담선생님이랑 약속한 게 있으니까 이런 행동은 하지 말아야겠다”와 같은 마음의 씨앗을 뿌리신거죠. 지적과 처벌에 익숙한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혼나는 역할에 익숙해진 나머지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잘 기능하고 싶은 욕구를 건강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울 기회를 놓치곤 합니다. 이번 상황은 선생님과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내면에 있는 긍정적인 자기조절 욕구를 살짝 내비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의 표현에 선생님께서 느낀 불편감은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감정을 부인하지 않고 오히려 학생부장님의 너그럽고 성숙한 반응을 보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처벌 상황에 대해 방어적인 학생들의 마음을 여는 교육을 하실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스스로를 젊은 꼰대라고 표현하셨지만 실은 이번 계기를 전문성을 한 단계 더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로 보시면 좋겠습니다.

 

  몸은 커졌지만 여전히 속은 어리고 미숙한 아이임을 볼 수 있고, 겉으로 내보내는 표현의 무례함보다 그 이면에 담긴 서툰 진심을 읽어낼 수 있는 힘을 길러나가신다면 어떨까요. 제가 사연 속에서 읽은 건 선생님의 당혹스러웠을 기분도 있었지만, 아이들과 형성하신 라포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 답변이 선생님께서 상담 현장에서 아이들과 관계를 맺어나가시고 지도하시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길 바라며 저도 멀리서 응원하겠습니다.

조아라 이온심리상담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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