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에 대한 정의는 시대와 시각에 따라 다르지만 인간이 삶에 필요한 지식, 기술, 가치를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자 수단이며 그 모든 것을 통합해 일컫는 말이다. 영어 교육을 전공하고 있는 필자에게 영어 교육에 대한 정의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영어라는 다국 공통어를 이용해 함께 나아가는 과정이고, 스스로를 다시 세우며 인간으로서 선택과 깊이를 더해가며 성장하기 위한 학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매일을 시작함에 있어 세면대 거울을 보며 오늘을 쌓는다. 한편으로 눌린 사람들과 대중교통의 압살을 매번 반복하면서도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힘은 스스로에 대한 교육과 공부가 최소한의 요구조건이었다. 현실은 늘어가는 나이 숫자와 더불어 매번 얼마나 증명해 냈느냐를 다그쳤고, 최소한의 일자리조차도 정답은 없지만 적절한 수준치의 능력과 객관적인 평가절하로 매번 사회적 소모품임을 각인시키고도 당연한 일임을 자각하게 한다. 그렇다면 교육은 사회적 현상을 버티게만 하는 보조적 수단이 되는 것이고 조금 더 양질의 의식주를 얻기 위한 차별적 근거만 되는 것인가?
22 개정 교육과정 총론에서 나왔다시피 복합적 불확실성 속에서 자기 주도 학습자 이자 메타인지 학습자 중심, 연계적 학습 패러다임으로 재조명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회적 변화 속에서 스스로가 구심점이 되어야하고 그 필수적 요소는 다시 교육으로 돌아가게 된다.
자율화와 지원 체계, 인프라의 구축이 단단해도 그 구심점인 교육관계자들과 교육적 시각과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당위성이 단단치 않다면 혁신AI와 변화하는 사회 물결 안에서 요동치다 떠내려 갈 뿐이다.
그렇다면 교육적 필요의 인지 안에서 학생맞춤형 통합 지원을 구체화 하기 위한 타국의 사례를 참고로 환기해 보도록 하자.
그 사례로서 필자는 독일의 사례를 참고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독일은 교육선진국으로 서열화 중심이 아닌 독일의 가장 중요한 교육사상은 인간이 스스로를 형성하고, 내적 자유와 도덕적 자율성을 기르는 과정으로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Education)이 아니라, 삶 전체를 통해 인간다운 존재로 성장하는 자기형성(Self-cultivation)을 통해 교육적 필요와 그 철학으로서 교육의 이념을 공고히 한 나라이다. 대학 입학을 위한 초중고 릴레이가 아니라 인격적 성장과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기 위해 학생의 필요를 초등학교 4년 동안 같은 담임이 학생을 관찰하고 성향과 미래를 위한 판단을 함께한다.
한국의 일반적 특성화고를 보는 시야와 다르게 전문화된 직업인으로서 학교 선택에 대한 대중적 인식이 갖춰져 있고 사회적 지위 격차가 직업에 따라서 크게 다르지 않기에 직업관의 선택에 있어서도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 즉, 한 학생이 일반계와 특목고를 가지 않고 대안 학교와 특성화 고교를 선택했을 때에도 자율적 판단으로 존중 받을 수 있으며, 사회적 단상의 위치와 순위로 자신을 줄세우기 당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또한, 직업계 고교를 다니면서도 다시 인문계 고교로 진학과 선택의 폭이 높은 것이 장점이다.
물론 나라마다 사회적 가치관과 인정범위, 통념이 다를 수는 있다. 계층 사다리를 옮겨 탈 수 있는 기회가 제한되고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보다 많은 교육적 성취를 증명해 내야 하는 현대인으로서 시발점이 국한되고 그 선택에 따른 책임으로 대우가 정해진다면 평생토록 교육과 함께하고 나아가야 하는 인간이 견뎌야 하는 삶의 과업은 거인족 아틀라스가 평생 이는 짐 만큼 무거운 것이다.
한 개인의 인생을 처음부터 mapping을 할 수도 없고 지름길로 성공이라는 지점을 단번에 꽂을 수 있는 이는 쉽게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AI시대에 사는 우리에게는 단순 답을 찾기 보다는 새로운 연결점을 이을 수 있는 통합적 사고를 시도하고 협력해내며 색다른 접근법과 도달할 수 있는 인생의 볼더링을 추구해야 한다. 그렇기에 오늘날 교육의 의미와 필요성은 더욱 간절하다.
교육은 과거부터 늘 이어졌다. 그리스의 영웅인 테세우스, 아이손, 헤라클레스가 있기까지 케이론이라는 스승이 있었고, 그들도 교육과 과업들을 통해 영웅이 될수 있었다. 알렉산드로 대왕이 되기 이전에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스승이 있기에 대왕이라는 업적을 달성할 수 있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에는 플라톤이, 플라톤에게는 소크라테스라는 스승이 있었다. 이렇듯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성은 교육으로 이어진 것이고 확장된 성취였다.
교육이라는 담론은 고대사회부터 오늘날까지 인간과 사람을 이은 연결망이었고 리드였으며 새로운 시대를 여는 핵심 키워드였다. 인생이라는 정해지지 않은 시나리오를 쓰는 데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교육적 사고와 교육적 지식을 쌓는 스캐폴딩(scaffolding : 새로운 개념이나 기술을 배우는 학생을 위해 교육자가 일시적으로 제공하는 도움)을 제공하는 교육자이자 필요자로써 필자는 교육대학원에서 학습중이고 답을 얻기 위한 인생의 클라이머로서 connecting the dots를 생업과 함께 고군분투 해오고 있다.
모든 조건이 완벽한 서사는 애초에 없었다. 학생들이 판타지처럼 으레 말하는 '두 번째 회귀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도 아닌 이번 생은 처음이기에, 그리고 모두에게처럼 이번 생도 소중하기에, 교육자 이기에 앞서 일반인으로서도 그저 아이들의 손을 붙잡고 함께 걸어가며 얘기하고 싶다.
“지금까지 잘해왔고 지금도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함께 해보자. 영어를 잘 한다고 혹은 공부를 잘 한다고 모든게 보장되진 않지만 적어도 기회를 넓히고 깊이를 더하는 기회는 가질 수 있다. 단순 조건 때문에 네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라는 사람을 찾기 위한 길을 같이 가고 싶어서 선생님도 공부하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