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체험학습 강요보다 제도 개선이 우선

2026.05.11 09:10:00

국정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 말의 무게는 참으로 무겁다. 학교 현장학습 축소 추세를 두고 이재명 대통령의 “구더기가 생기지 않을까 싶어 장독을 없애면 안 된다”는 발언은 교직 사회에 큰 충격과 반발을 일으켰다. 논란이 거세지자 청와대 대변인이 ‘교사를 보호하는 취지’라고 설명하고, 교육부 장·차관이 나서 관련 간담회 개최, 5월 중 대책 발표 예정 등 부랴부랴 수습에 나서고 있다. 많은 교원은 대통령의 ‘구더기’ 발언과 “책임 안 지려고 학생의 좋은 기회를 빼앗는 것은 안 하는 게 좋겠다고 말하기 전에 현장 교원의 애환을 먼저 들었으면”하고 아쉬워한다.

 

수년 또는 수십 년 전 학창 시절의 추억을 기반해 현재의 학교와 교실을 동일시해 평가하게 되면 괴리가 생긴다. 그만큼 많이 변했고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현실에선 체험학습 계획, 비용, 교통편, 숙소, 음식, 학생 지도, 안전 등 모든 것에 민원과 안전 위험이 도사린다.

 

체험학습 중 돈이 없는 제자에게 간식을 사주자 자녀를 거지 취급했다며 정신적인 피해보상을 요구한 사례, 자녀 숙소가 바다 경치가 아니라고 항의하는 학부모, 필요시 헤어드라이어기 준비를 안내했더니 학생 수에 맞춘 비치 숙소 선정 요구 등 어이없는 민원 사례가 너무도 많다.

 

무엇보다 인솔 교사가 두려운 것은 학생 안전사고다. 사전 예방 교육을 아무리 철저히 하고, 매 순간 주의를 줘도 뜻하지 않게 발생하는 사고를 모두 막을 수 없다. 학생 안전사고는 곧 교사에게 민원의 대상이자 민·형사상 책임, 행정적 책임을 의미한다. 앞서 했던 노력과 준비는 의미가 없다. 과실치상, 과실치사, 아동학대라는 무시무시한 형사법 체제의 피고가 돼 경찰·검찰 조사와 재판정에 서게 된다. 교육청은 “변호사 통해 대응하세요. 이기면 소송비 지원할게요”에 멈춰있다.

 

과거 기준에 맞춰 현실 평가 안 돼

민원, 행정업무에 재판까지 부담만

법 개정 등 환경 만드는 것이 먼저

 

이런 현실에서 교사에게 걱정하지 말고 체험학습을 가라고 강요할 수 있을까? 소중한 장도 구더기가 많으면 먹을 수 없다. 따라서 구더기가 생기지 않게 해야 맛있는 장도 귀한 장독도 구할 수 있다. 교사에게 체험학습을 가라고 강요하기 전에 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이를 위해 체험학습 안전사고에 대해 실질적 면책을 위한 학교안전법 개정이 시급하다. 예견할 수 없음에도 미리 대비하지 않았다는 사후적 판단으로 교사는 형사 대상이 되고 있다. 이름만 면책일 뿐이다. 따라서 교사가 충분히 대비하고 노력한 사전 행위 중심으로 면책 기준을 바꿔야 한다.

 

둘째, 교사의 정당한 교육활동 중에 발생한 소송에 대해서는 국가가 소송을 책임져야 한다. 사후 지원이 아니라 소송의 전 과정을 국가가 끝까지 책임질 때 교사는 안심하고 교육에 전념하게 된다.

 

셋째, 과도한 행정업무 부담완화다. 수학여행에 따른 준비 서류가 40여 종이 넘는다. 수업과 학생지도하면서 준비하는 것이 너무 벅차다. 행정업무는 교육청 전담부서로 이관하고 지자체와 함께 안전성 검증 프로그램과 장소를 마련해야 한다.

 

끝으로 체험학습의 학교 자율권을 보장해야 한다. 학교 구성원의 민주적 의견수렴 절차는 거치되 교사의 판단과 재량이 우선돼야 한다. 학생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데도 강요로 지속되는 체험학습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제도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교육신문 jebo@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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