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도 과제도 AI로 뚝딱, 평가는 딜레마

2026.05.07 10:00:00

 

최근 사회는 AX·AI 인재 양성 등의 워딩을 바탕으로 불확실성의 미래에 내던져진 인류가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방법에 대해 고민 중이다. 그렇다면 교육은 어떨까? 아마도 대다수는 ‘교육의 변화가 항상 느리다’는 말을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일반적으로 교육은 사회의 변화에 발맞추어 변화하는 후행성을 지니기 때문에, 변화에 있어 시차가 존재함은 필연적이다.

 

하지만 ‘느리게’ 변화한다는 이야기에는 쉽사리 동의할 수 없다. 사회는 교육이 느리게 변화할 시간마저도 주고 있지 않으며, 교육계에서는 이미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AI 인재양성’과 관련된 근본적이고 비약적인 교육정책들이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추상적인 이야기까지 굳이 가지 않아도 일반 교원들은 AI라는 강력한 인지 분산 또는 외주화 도구가 들어옴으로 인해 이미 다양한 고민거리를 토로하고 있다.


“요즘 과제를 보면 AI가 해준 티가 나는 과제들이 많아요. 그런데 평가기준에 관련 내용을 적시하지 않았으니, 별도의 제재를 가할 수도 없어요. 그리고 학생들이 아니라고 우겨버리면 그만이에요.”


“AI가 학생들을 바보로 만드는 것 같아요. 학생들이 AI에게 문제만 던져서 엔터키를 쳐버리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이와 같이 최근 현장에서 불거지고 있는 교수법과 평가의 딜레마가 오는 지점에 대해 고찰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함께 모색해 보고자 한다. AI로 인해 발생하는 교육 딜레마들의 유형은 다양해 보이지만, 결국 그 근원적 이유는 모두 AI가 강력한 인지 도구라는 점으로 귀결된다. AI는 글쓰기, 코드 작성하기, 그림 그리기, 음악 만들기 등 인류의 전유물이었던 지적 노동과 창작을 점점 대체해 가고 있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학교는 스스로 지적 노동을 할 수 있는 인간을 양성하는 공간이다. 스스로 사유하고 창작할 힘을 키워야 할 곳에서 이를 대체해 가고 있는 도구를 다루어야 한다는 주장은 어찌 보면 자기모순적인 발언이 아닐까?


교육의 본질은 완벽하고 매끈한 결과물을 생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물에 도달하기 위해 지식을 탐색하고, 논리를 구성하며, 때로는 실패를 겪는 인지적 고군분투 과정 자체에 있다. 하지만 치열한 사유의 과정이 생략된 채 AI가 즉각적으로 내놓은 결과물은 교사로 하여금 ‘내가 지금 학생의 능력을 평가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결과물을 만들어 준 AI의 성능을 평가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회의감에 빠지게 만든다.


또한 우리는 ‘AI 도구가 정말 학습격차를 해소해 줄까?’, ‘오히려 학습격차가 AI 사용 능력으로 전이돼 더 큰 격차를 만들지는 않을까?’ 등과 같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대화형 AI 도구를 활용해 수업하는 교사들에게서 ‘학생과 AI 챗봇과의 대화 내용을 보면, 원래 문해력이 좋고 주도적인 학생은 사용하는 프롬프트 문장이 짜임새가 있고 구체적인데, 그렇지 않은 학생은 AI에게 묻는 질문 자체가 두루뭉술하다’는 후기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기존에 존재하던 학습격차가 AI 사용 과정에서 더욱 잘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파로크니아(Farrokhnia) 외(2026)의 연구에서는 생성형 AI 기반의 피드백 품질이 학습자의 초기 글쓰기 성과물(AI를 사용하지 않은 본연의 실력) 품질에 의해 유의미한 차이가 났다는 결과가 보고되었다.

 

즉, 좋은 글쓰기를 하는 학습자에게는 좋은 품질의 피드백이, 그렇지 않은 학습자에게는 상대적으로 낮은 품질의 피드백이 산출되었다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들은 AI 도구가 오히려 교육적 마태 효과(Matthew Effect), 즉 인지 능력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심화시키는 요소가 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AI 시대, 사고를 지키기 위한 세 가지 전환
이상의 문제를 요약하자면 AI로 인한 ‘인지적 외주화 현상’, 그리고 ‘학습격차가 AI 사용 격차로 전이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부작용을 방치한다면, AI는 교실 속에서 학생의 지능을 확장하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사고의 퇴화를 부추기는 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학교에서 AI 도입 자체를 막아버리기에는 이미 AI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깊숙하게 들어와 버렸고, 이는 미래 사회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오히려 분별력 있는 도구 사용의 기회를 앗아가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결국 단순히 ‘AI를 수업에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라는 기술적 차원의 고민을 넘어, ‘AI가 결합된 환경에서 예상되는 딜레마와 부작용을 줄여나가기 위해 인간의 사고 과정과 성장을 어떻게 설계하고 평가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교육학적 질문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그렇다면 교사들은 수업과 평가에서 어떻게 AI를 교수 목적에 맞게 사용하고 교수·학습을 설계할 수 있을까? 필자는 이에 대해 우선 세 가지의 관점 전환을 제시하고자 한다. 

 

● 첫째, 사고의 내재화 관점이다. 
이제는 더 이상 ‘AI를 사용했더니 효과적이더라’가 아니라 ‘AI의 도움을 점진적으로 소거했더니 학습자가 스스로 사고할 수 있게 되더라’라는 관점으로 전환해야 한다. 분산인지이론을 연구한 살로몬(Salomon, 1990)은 이를 ‘인지적 잔여물(Cognitive Residue)’이라고 표현하였는데, 이는 학습자가 AI와 적극적인 인지적 상호작용을 주도하는 과정에서 AI에 의해 그럴듯하게 나온 결과물을 진짜 성과로 착각하는 관점에서 벗어나,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힘이 키워졌는지에 대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 둘째, AI 사용 과정의 투명성 관점이다. 
AI와 학습자 간 상호작용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유도하는 평가를 설계하는 것이다. 교육부(2025)에서는 최근 수행평가 시 인공지능 활용 관리 방안을 제시하였는데, 그 원칙 및 운영 기준 중 하나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학생이 자료 탐색 등을 위해 AI를 활용한 경우, 수행평가 결과물에 AI 활용 범위와 내용, 출처를 표기하도록 안내’
‘사용한 AI 종류, 입력한 질문(프롬프트), 결과물에 반영한 방식 및 부분 등을 기재하도록 하고, 필요시 제출 내용에 대한 구술 설명 요구’

 

이상과 같은 지침은 평가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변혁을 요구하는 것이다. 최종 결과물에 기반한 평가가 여전히 주를 이루었던 현장에 ‘AI·디지털 기반 아카이빙 과정에 근거한 평가’를 주문한 셈이다. 학습 결과가 도출된 궤적을 투명하게 살펴봄으로써 교사는 AI에 대한 단순 의존과 인지 증강에 의한 협력을 구분할 수 있게 된다.

 

● 셋째, 메타인지적 성찰의 관점이다. 
학습자가 AI 산출물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도록 비판적·분석적 시각을 기르고 AI 활용 과정 전반을 스스로 되돌아보게 하는 성찰이 평가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앞서 제기한 교육적 마태 효과의 원인 중 하나도 메타인지 역량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메타인지가 뒷받침되어야 도구에게 좋은 질문을 던지고 피드백을 주도적으로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고를 설계하는 수업, 격차를 줄이는 평가
이상과 같은 관점 변환에 근거해서 시도해 봄직한 교수 혹은 평가전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바람직한 어려움을 교수·학습전략에 도입하는 것이다. 비요크(Bjork, 1994)는 바람직한 어려움(Desirable Difficulties)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학습자에게 도전적이고 인지적 어려움을 주는 과업이 장기적으로는 학습에 효과적이라는 주장을 제시하였다. 더불어 바람직한 어려움의 구체적 유형을 제시하였는데, 그중 하나로 학습자에 대한 피드백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거나 점진적으로 감소시키는 전략이 있다.

 

구체적으로 학습자의 학습상황에 따라 AI에게 의도적으로 피드백을 소거시키는 프롬프트를 제공하는 방식이 있다. 혹은 수행평가 과제 속에 학습자의 산출물에 반대하는 AI 챗봇을 설계하여 설득시키는 활동을 수행하는 것 역시 맥락적 간섭 제공으로서의 바람직한 어려움을 줄 수 있다.

 

 

둘째, 시스템 프롬프트(System Prompt)의 교육적 설계이다. 학습자의 인지적 잔여물을 남기기 위해서는 프롬프트에 교육적 원리가 충분히 들어가야 하며 학습자의 메타인지와 고차원적 사고를 자극하는 훌륭한 비계(Scaffolding)로 작동해야 한다(Felsa et al., 2026). 예를 들어 논쟁적인 사회 문제나 글쓰기 수업에서 AI를 단순히 글을 대신 써주는 도구가 아니라, 나의 논리에 반론을 제기하는 지적 스파링 파트너로 활용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위에서 제시한 바람직한 어려움 전략이 잘 통하지 않는 학습자에게는 더욱 기초적인 영역의 비계를 제공할 수 있는 맞춤형 피드백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그 일례로 박병준과 이영주(2026)는 메릴(Merrill)의 교수 제1원리(First Principles of Instruction) 사이클, 사회과 교육에서 제시하는 논쟁 문제 학습, 그리고 형성적 피드백과 관련한 주요 이론가들의 원리를 융합하여 논쟁적 글쓰기를 촉진하는 챗봇 프롬프트를 개발하고 타당화하는 연구를 수행하였다.

 

챗봇 프롬프트를 적용한 AI 챗봇과의 상호작용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글쓰기를 할 수 있는 환경에서 논쟁 주제를 바탕으로 글쓰기 교육을 수행한 결과, 학습자들은 주도적인 글쓰기를 수행할 수 있었고 스스로 사고할 수 있게끔 도움을 주는 인지적 파트너로서 작용했다는 유의미한 응답을 남겼다.

 

 

셋째, 피드백 리터러시(Feedback Literacy) 교육의 병행이다. 아무리 시스템 프롬프트를 정교하게 짜고 과정 중심 평가를 도입하더라도, 학생이 AI 도구가 제공해 주는 피드백을 수용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면 마태 효과를 막을 수 없다. 칼리스와 부드(Carless & Boud, 2018)가 강조한 피드백 리터러시란 단순히 피드백을 수용하는 것을 넘어, 그 의미를 능동적으로 해석하고 학습 결과를 개선해 내는 학습자의 주도적 역량이다.

 

아무리 생성형 AI가 정교한 피드백을 주더라도,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수정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면 결국 무의미한 복사-붙여넣기로 전락한다. 따라서 교사는 평가 과정에서 이 피드백 리터러시의 구성 요소들을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AI 도구 기반의 피드백이 곁들여진 서·논술형 글쓰기 과업에서 수정본 글만 제출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AI 기반 피드백을 학습자가 수용하는지에 대한 여부 및 개선 과정 전반이 드러나는 AI 피드백 수용 일지를 함께 제출하도록 수업을 설계할 수 있다.

 

학생은 수용 일지 작성 활동을 통해 AI의 반론이나 피드백에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대신 성장을 위한 도구로 수용하고, AI의 피드백 중 어떤 점이 타당하며 어떤 부분에 오류가 있는지를 주도적으로 판단하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나아가 AI의 피드백 중 받아들일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명확히 설정, 자신의 원래 생각과 융합하여 어떻게 글을 수정했는지 그 구체적인 근거를 명시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AI 기반 피드백을 학습자가 주도적으로 소비하고 생산하는 메커니즘 전반을 평가의 핵심 요소로 삼을 때, 학생들은 비로소 AI에 의한 격차의 골짜기를 넘어 진정한 자기주도적 학습자로 거듭날 수 있다.

 

 

물론 이상의 대안들 역시 AI 기반 교수법과 평가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다 보니 구체적인 전략을 중심으로 다뤄졌지만,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교사의 교실 오케스트레이션 능력이다. AI가 제공하는 피드백이 학습자의 수준에 맞지 않거나 학습동기가 결여되어 있는 학습자의 경우 등에 대해서도 기술이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것은 과도한 기술 결정론의 시각이다. AI가 교실에 깊숙이 들어올수록, 기술의 맹점과 사각지대를 짚어내고 학생을 읽어내는 인간 교사의 뾰족한 감식안은 여전히 대체 불가한 가치를 지닌다.


학교에서 AI를 다루는 것은 결코 자기모순이 아니다. 오히려 기술이 지적 노동의 결과를 즉각적으로 산출해 내는 이 시대야말로 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도구와 교감하며 치열하게 가치를 판단하는 인간 고유의 사유과정을 가장 깐깐하게 가르쳐야 할 때다.

 

AI 도구가 만들어내는 매끄러움의 함정과 마태 효과의 늪 속에서, 학생들에게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인지적 잔여물을 남겨주고 투명한 성찰을 끌어내는 것은 오직 인간 교사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다. 기계의 맹점을 짚어내고 도구의 편향과 격차를 교사의 세심한 학생 감식안과 평가설계로 보완하는 교육이 불확실성의 미래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우리가 쥐여주어야 할 진짜 힘이다.

박병준 경남 창원여고 교사/경상디지털교육자연합 총괄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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