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초여름, 대한민국 서울의 수은주가 가파르게 오르던 날, 광화문과 관악산 자락에 역사적으로 기묘한 모습이 펼쳐졌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검은색 계통의 가죽 재킷을 전투복처럼 장착한 한 세계 초일류 기업의 CEO가 나타난 것이다. 인공지능(AI) 시대를 지배하는 ‘칩의 제왕’, 젠슨 황 엔비디아(NVIDIA) 회장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의 이번 한국 방문의 행보는 파격 그 자체였다. 예능 프로그램인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특유의 소탈한 미소로 대중과 눈을 맞추는가 하면, 서울대를 깜짝 방문해 미래의 인재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 그런 와중에 압권은 국내 기업 총수들과의 이른바 ‘깐부 치맥 회동’이었다. 빳빳한 정장 대신 캐주얼한 차림으로 닭 다리를 뜯으며 세계 AI 흐름을 주도할 ‘AI 반도체 동맹’을 다지는 모습은, 권위주의에 익숙한 우리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가 보여준 일련의 파격은 단순한 쇼맨십이 아니다. 그것은 고정관념의 틀을 깨부수는 강력한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의 표출이었다. 지금 우리 교육과 청년들은 이 가죽 재킷을 입은 거장에게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울림을 얻어야 할까?
우리는 흔히 성공한 글로벌 CEO를 보며 타고난 천재이거나 탄탄대로만 걸었을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젠슨 황의 인생은 ‘회생 불가’ 판정을 받았던 실패의 연속이었다. “엔비디아는 창업 이후 망하기 직전까지 간 적이 세 번이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질문의 방향을 바꿨습니다.” 이 말이 던지는 충격과 시사점은 매우 크다 못해 우리가 영원히 간직해야 할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실제로 1993년 창업 초기, 엔비디아가 야심 차게 내놓은 첫 번째 멀티미디어 칩(NV1)은 시장에서 완전히 외면당했다. 회사는 파산 직전이었고, 직원의 절반을 해고해야 하는 피눈물 나는 상황에 직면했던 것이다. 젠슨 황은 <유 퀴즈 온 더 블럭> 인터뷰에서도 이 시절을 떠올리며 특유의 유머를 던졌다. “그때 망하지 않은 건, 우리가 돈이 없어서 파산 신청서 양식을 살 돈조차 아끼려다 보니 시간이 흘러 살아남은 것 아니겠냐”는 식의 뼈 있는 농담이었다.
그는 실패를 마주했을 때 “왜 나에게 이런 불행이 왔는가?”라고 좌절하지 않았다. 대신 “우리가 세상에 제공할 수 있는 진짜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졌다. 완벽한 정답을 찾기보다 끊임없이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며 유연하게 궤도를 수정하는 능력, 이것이 바로 그가 우리 청년들에게 몸소 보여준 첫 번째 유산이라 할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 현장은 거대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교과서에 적힌 정답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찾아내는 인재를 길러내는 데 집중해 왔다. 선대 세대의 부지런함과 교육열, 이러한 정답형 교육이 맞물려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것은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AI가 인간보다 수백만 배 빠른 속도로 ‘정답’을 찾아내는 시대에, 여전히 오지선다형 시험지에 매몰되어 있는 교육은 청년들의 미래를 어둡게 할 뿐이다. 작년에는 1만 명이 넘는 고1 학생이 자퇴를 했다. 그들이 평생 가고자 하는 대학이자 젠슨 황이 방문한 서울대의 강연에서 강조한 핵심 역시 “지식을 소유하는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지식을 어떻게 엮어내고 어떤 질문을 던질 것인가의 싸움”이라는 점이었다.
AI 반도체 시장의 90% 이상을 지배하는 엔비디아의 그래픽 처리장치(GPU)는 처음부터 AI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3D 게임 화면을 매끄럽게 구동하기 위해 개발된 칩이었다. 그러나 젠슨 황과 엔비디아 엔지니어들은 “이 엄청난 병렬 연산 능력을 과학 계산과 데이터 분석, 나아가 인간의 뇌를 모방한 인공지능에 적용하면 어떻게 될까?”라는 ‘위대한 질문’을 던졌다. 이처럼 질문 하나가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다.
이제 우리도 청소년들에게 “선생님의 말을 외워라”가 아니라, “너만의 질문을 시작해라”라고 격려해야 한다. 정답이 없는 삶의 지도에서 길을 잃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나침반이 되는 질문을 품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통해 다시 회상하고자 한다. 젠슨 황의 방한 중 가장 흥미로웠던 ‘깐부 치맥 회동’은 우리에게 또 다른 교육적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인물이지만, 그는 독불장군처럼 군림하지 않는다.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과 손을 잡으며 “우리는 함께 가야 하는 ‘깐부’(철부지 시절 새끼손가락 마주 걸어 편을 먹던 동장군 친구)”라고 손을 내밀었다.
이제 독점과 경쟁이 미덕으로 여겨지던 과거의 비즈니스 모델은 저물고 있다. 혼자서는 거대한 AI 생태계를 감당할 수 없다. 서로의 강점을 인정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공생과 상생의 네트워크’야말로 AI 시대를 살아가는 생존 전략이라 할 것이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기껏 옆자리 내지 같은 교실의 친구를 이겨야 하는 과도한 ‘경쟁 교육’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대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아이디어를 모아 문제를 해결하는 ‘협력적 소통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 가죽 재킷을 입고 한국의 기업인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던 젠슨 황의 모습은, 진정한 리더십이란 높은 교단 위가 아니라 수평적인 소통의 테이블에서 나온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칼바람이 부는 한겨울도 아닌, 푸르른 초여름에 가죽 재킷을 고집하는 젠슨 황의 모습은 어찌 보면 고집스러워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강한 자부심의 표현이다. 남들의 시선이나 정형화된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만의 스타일과 철학을 유지하는 당당함이 묻어나고 있다.
이제 우리 청소년들에게 고(告)하고자 한다. 대기업 취업, 공무원 시험 등 남들이 정해놓은 성공의 길이자 ‘안정적인 정답’의 틀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라. 세상이 원하는 규격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개성을 깎아내지 말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무한한 낙천성과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 그리고 타인과 손잡을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이 곧 여러분만의 ‘가죽 재킷’이 되어야 한다.
이제는 우리 교육계 역시 제발 변화해야 한다. 아이들의 엉뚱한 질문을 가로막지 않고, 실패한 시도에 낙제를 주는 대신 “좋은 경험을 했다”며 학교마다 어깨를 두드려주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교실의 배움이 다소 늦은 한 친구가 고통스러운 노력으로 중간고사 성적이 오르자 이에 격려와 응원 대신 의혹을 품고 시험 감독 교사 수를 늘려달라고 학교에 단체 민원을 넣었던 수도권의 한 명문고 학생들을 보고 그 학교 관리자는 말했다. “이런 아이들이 미래에 우리나라를 이끌 리더가 된다는 사실이 참 끔찍합니다.”
제2, 제3의 젠슨 황은 강의실에서 조용히 필기만 하는 학생이 아니라, 교사의 설명에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눈을 반짝이며 질문하는 소위 ‘불편한 학생’ 중에서 나올 것이다. 초여름 서울의 곳곳에서 초관심을 끌었던 검은 가죽 재킷의 세계적 CEO의 모습이 우리 청소년들의 가슴속에 뜨거운 동기의식을 자극해 배움의 불씨로 활활 타오르길 기원하고 기대하는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