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대회에 나가 결석했던 아이가 다음 날 학교에 왔다. 나는 그 아이를 일주일에 세 시간만 만나는 과학 전담교사였다. 복도에서 지나가듯 물었다.
“어제 경기 어땠어? 이겼어?”
“졌어요.”
“아쉽겠다. 포지션은 뭐야?”
“외야요.”
“타순은?”
“4번이에요.”
“4번 타자면 중심 타선이네. 어깨도 좋겠다.”
아이의 굳었던 얼굴이 조금씩 풀렸다. 야구를 시작한 지 1년 되었다는 말을 듣고, 2년 전 우리 학교에도 주니어 국가대표로 뛴 아이가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꾸준히 하면 좋은 기회가 올 수도 있겠다.”
그 말을 들은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날 이후 과학 성적이 갑자기 오르거나 수업 태도가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아이의 미소는 오래 남았다. 공부나 규칙보다 먼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알아본 어른을 만났을 때 나오는 표정이었다.
아이들은 자신에 관해 말할 기회를 기다린다.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보다 무엇을 좋아하고 어디에 마음을 쓰고 있는지 알아봐 주기를 바란다. 야구를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야구가 있고, 곤충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곤충이 있으며,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에게는 그림이 있다. 그 관심사는 아이가 관계 안으로 들어오는 문이 된다.
“어제 경기 어땠어?” 같은 구체적인 한마디가 “학교생활은 괜찮니?”라는 큰 질문보다 아이에게 더 멀리 닿을 때가 있다. 관계는 긴 상담보다 ‘너를 보았다’는 짧고 정확한 신호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아이를 안다는 것은 이름과 성적을 기억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요즘 어디에 마음을 쓰고 있는지 기억해 두었다가 다시 물어봐 주는 데까지 가야 한다. 그때 아이는 자신이 많은 학생 가운데 한 명이 아니라, 고유한 관심과 이야기를 가진 한 사람으로 받아들여졌다고 느낀다.
관계를 가르치는 첫 번째 방법은 좋은 친구가 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른이 먼저 아이를 구체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봐 준 경험이 있는 아이는 다른 사람에게도 저마다의 관심과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배운다. 관계는 그렇게 한 사람을 대충 보지 않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