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감각기억

2005.04.06 11:31:00

의미 있는 것 선택적으로 꺼내 주의 기울여
위기상황 위력발휘, 잠재의식광고 등에 활용


학교에서 혹은 길을 걸어가다가 선생님의 이름이 들리거나 혹은 ‘선생님’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곤 하셨을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칵테일파티 현상’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방에서 일반적인 소음을 무시하면서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다른 곳에서 자기의 이름이 들리면 주의하게 되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것은 우리의 기억구조 중에서 감각기억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감각기억은 말 그대로 감각적인 것이라 의식적인 과정이 필요 없습니다. 또 기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짧습니다. 시각적인 것이라면 0.25초 정도 지나면 없어져 버립니다. 정말로 눈 깜짝할 사이입니다. 청각적인 것은 그보다는 조금 더 깁니다(3-5초). 뭘 보긴 봤고 뭘 듣긴 들었는데, 그것이 뭔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운전할 때 분명 백미러에 보였는데 무엇인지 알지 못해 다시 한 번 보게 되거나, 어디선가 소리를 들었을 때 어떤 소리였는지는 몰라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지금 있는 곳에서 주위를 한번만 둘러보기만 해도 엄청난 양의 사물과 소리가 눈과 귀로 들어옵니다. 우리가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처리해야 한다면 뇌는 엄청난 부담을 갖게 될 것입니다. 감각기억은 이런 정보를 아주 잠시 동안 보관하는 창고의 역할을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창고에서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을 선택적으로 끄집어내어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소음 속에서도 자기 이름이나 ‘선생님’이란 말은 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감각기억은 생존이 걸린 상황에서는 특히 위력을 발휘합니다. 전쟁터에서 어디선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거나 뭔가 ‘휙’ 하고 지나갔다면 그것이 뭔지는 모르지만 주의를 기울여야만 합니다. 실생활에서는 광고에 활용되기도 합니다. 영화 화면에 나타나는 1초 동안의 동작은 24개 프레임에 이르는 필름들의 연속 영상으로 이루어지는데, 한 개 프레임에 콜라 사진을 슬쩍 집어넣더라도 의식적으로는 분간해 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화관 매점의 콜라 판매량이 보통 때보다 늘어납니다. 이것이 잠재의식광고입니다.


잠재의식광고는 CF 장면과 장면 사이에 사람의 눈으로는 인식할 수 없는 또 다른 ‘숨겨진 메시지’를 포함하고 있는 광고입니다. 1950년대 후반 미국에서 등장했던 이 광고기법은 누드사진이나 마약,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 등 자극적인 장면을 광고 속에 끼워 넣거나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로 작고 자극적인 글자를 적어 넣었습니다. 이런 광고는 무의식적으로 그 제품에 대한 주목률을 높여 결국 구매욕구를 높이게 됩니다.
몇 년 전 국내 모 음료회사의 사이다 광고 중 우리나라 현대사 장면이 순식간에 현란하게 지나가는 광고가 있었습니다. 이 광고는 비디오 예술로 유명한 백남준 씨가 제작한 것이었는데, 그는 이 광고에 눈에 보이지 않는 사이다 사진을 두어 컷 집어넣었으나 방영 전에 빼내야 했습니다. 잠재의식광고는 우리나라에서는 허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도 심의관들이 백남준 씨의 광고가 주로 잠재의식광고라는 사실을 미리 알고 심의과정에서 한 컷 한 컷 살피다가 ‘잡아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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