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라는 거, 그런 긍지와 불안감이 섞여 밤에 잠을 설쳐요. ‘가르치지’ 않고 동료교사와 ‘함께 배우는’ 교사, 존경받는 평생교사役을 잘 해 낼 지 자신은 없지만 최선을, 열정을 다할 겁니다.”
올 3월부터 전국 172개 초․중․고교에서 시범 운영되는 수석교사제. 그 씨앗을 뿌릴 172명의 베테랑 교사들은 서울 교육인적자원연수원서 일주일간 진행된 수석교사 직무연수를 ‘새내기’ 연수로 받아들였다. 18~22일, 하루 7시간씩 △수석교사 직무 탐색 △교사를 위한 코칭과 멘토링 △연구 및 기획 실제 △교사 전문성 개발 전략 △수업 리더십의 실제 등을 주제로 이어진 강도 높은 강연과 토론, 실습…. 새내기 같은 그 치열한 몰입에서, 초대 수석교사로서의 자긍심과 그 너머 제도 성공의 가능성마저 엿보인다.
최수룡(대전버드내초) 수석교사는 “여기 온 교사들은 대부분 수업컨설팅이나 교과연구회 운영 등 그동안 이름만 없었지 이미 수석교사 역할을 해온 분들이더라”며 “나 역시 학생을 위해 교실에서 더 노력하고 수업 발전에 기여하는 일이 가장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겨 이 길을 선택했고, 잘 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수업 잘하고, 능력 있는 교사를 되레 교실서 벗어나게 하는 현행 승진구조. 수석교사제는 그런 관리직으로의 일원적 자격체계에서 분리된 교수직 자격․승진트랙(2정→1정→선임→수석)을 마련해 교사들에게 새로운 도전을 요구하는 제도다. 1981년 논의가 시작돼 26년 숙성 끝에 도입되는 산고를 겪었다.
하지만 초대 수석교사들은 말 그대로 ‘백의종군’ 해야 한다. 신임교사 멘토링, 동료교사 수업컨설팅, 공개 수업, 교과연구회 운영 등 무거운 책무에도 수업 부담, 낮은 대우, 모호한 위상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최명호(울산 유곡중) 수석교사는 “수업 감축을 위해 교원 TO를 추가로 확보하지 못해 20시간 수업을 그대로 하는 분도 있고, 대부분 2, 3시간만 줄어 제대로 과업을 수행할 수 있을까 우려된다”며 “더 큰 문제는 내 수업이 고스란히 동료교사에게 전가되는 부분”이라고 걱정했다. 수석교사제의 성패는 동료교사와의 신뢰감, 협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경기교육청 이용주 장학사는 “수석교사제 도입 전에 별도 정원을 줬어야 했다”고 공감을 표했다.
‘20%까지 수업을 감축할 수 있다’는 임의규정만 있어 학교 별로 천차만별인 것이다.
20일 시도별로 진행된 교육청 담당 장학사와의 대화 시간에는 더 많은 고충이 쏟아졌다. 이중 가장 현실적인 것은 “학교에서 내 위치를 어떻게 설정할 지를 놓고 무척 고민하더라”는 지적이다. 당장 학교로 돌아가 연간 활동계획서를 만들어야 하는데 결재라인을 연구부장부터 해야 할지, 교감부터 할지, 교장에게 바로 가야 할 지 모호하다는 것이다. 이원춘(경기 성남서고) 수석교사는 “교감 아래로 설정하면 수석교사는 실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부분에 대해 교육부, 교육청도 어떤 지침이 없다. 현재로서는 전적으로 교장의 마인드에 달린 셈이다. 전용섭(경기 매현중) 수석교사는 “수석교사실이 따로 있고 시상식 때도 교장선생님과 시상의 절반을 나눠 맡는 저의 경우는 현재로선 매우 특별한 경우”라고 말했다.
시범운영을 통해 교장, 교감과 구별되는 선명한 역할과 권한을 부여하고, 충분히 우대해야 ‘새 트랙’의 존재감을 찾을 수 있다는데 수석교사들은 입을 모았다.
3월 초 각 학교에 배치되는 대로 수석교사들은 내년 2월까지 1년간의 활동계획서를 작성하는 일부터 해야한다. 수업 컨설팅(코칭), 수업 공개, 교과연구회 운영에 대한 세세한 방안을 세워 실천하게 된다. 분기별로 이행결과 보고서도 내야 한다.
수석교사들은 “제도 도입 초기인 만큼 교장, 교감, 교사들이 수석교사를 충분히 이해하고 협조하는 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며 “관리직 연수 시 수석교사제 이해과정이 진행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초대 수석교사들 중에는 30대 박사도 여럿이다. 절반을 10년 이상 경력자 중에서 선발했기 때문이다. 아직 연공서열 풍토가 강한 교단인 만큼 ‘수석’이라는 명칭이 꽤 부담스럽다는 이들. 그래서 이름 밝히기도 부끄러운 한 초등 수석교사(36)는 “경력도 중요해요. 하지만 열정, 인성, 전문성이 더 중요하고, 무엇보다 좋은 수업을 함께 만들고 배우는데 보람과 비전을 갖고 있다”며 “저처럼 젊은 교사들이 더 많이 수석교사에 관심을 갖고 뛰어들어야 제도가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16개 시도교육청은 지난해 말 교직경력 10년, 15년 이상 경력자 중 수석교사를 선발했으며 대우는 20% 내 수업 감축, 연구활동비 월 15만원 지급을 공통으로 시도별로 다양한 인센티브를 준다. 별도의 특별연구비 지원(서울 연 300만원, 부산 120만원, 강원 100만원 등), 교육청 장학위원 위촉, 해외연수나 전보 시 우대 등 다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