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의 주인이 과연 나일까?

2008.04.03 08:46:13

직관의 두 얼굴(Intuition : Its Powers and Perils)
데이비드 G. 마이어스/ 궁리

“발견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무지가 아니라 알고 있다는 착각이다”(대니얼 부어스틴)



20년 전 한 고등학교 생물수업시간. 자신의 선택과목이 아닌 시간이라 미처 책을 준비하지 못한 A군. 유일하게 책을 가져오지 않은 A군은 B교사의 ‘사랑의 매’를 감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주일 뒤 다시 생물시간. 교과서는 가져왔지만 이번에는 참고자료로만 수업하는 날이라 또다시 지난주의 일이 반복됐지요. B교사는 이렇게 한마디 했다더군요. "장담하지만 이 학생 대학 못갑니다."

물론 A군은 대학에 진학, 그럴듯한 직장에 다니며 스승의 날이면 꼬박꼬박 B교사를 찾아뵙는다고 합니다. 그날의 일이 자극을 주기위한 B교사의 고육책이었는지, 자신의 경험에 바탕한 ‘직관’ 때문이었는지는 아직 미스터리로 남았지만 말입니다.

직관이란 “직접적으로 지식을 얻는 능력, 즉 관찰하거나 생각해보지 않고 즉각 알아채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직관을 이용해 상대방의 거짓말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는가하면, 야구경기에서 3할 타자는 사고의 속도로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는 공의 궤적을 순간적으로 추적해 홈런을 때리곤 합니다. 베테랑 수사관들은 경험에서 우러나는 직관의 힘을 통해 미궁에 빠진 사건을 단숨에 해결하는 저력을 보이며, 특히 여성은 남자의 본심을 무섭도록 빠르게 읽어내기도 하지요.

이 책의 저자 호프대학교의 심리학 석좌교수 마이어스는 이러한 직관이 "인간이 수행하는 사고의 복잡한 연산을 무의식의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노력"이라고 말하지만 '가내공업(cottage industry)' 수준의 말들로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비과학적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직관’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주식투자와 스포츠, 면접시험, 도방 등 평소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분야에서 직관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또 그로 인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구합니다. 뇌 손상으로 시력을 상실한 사람이 물체와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면서도 그의 몸은 반응을 보이고,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한 소년이 친족을 살해한 살인범을 무의식적으로 알아내는 등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직관의 힘에 대한 증거들을 차례차례 제시합니다.

하지만 마이어스는 직관의 치명적 오류를 열거하며 잘못된 직관이 저지르는 어처구니없는 사례들도 파헤칩니다. "경험을 통해 신경망에 각인된 정보를 이용,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직관이 속단이라는 잘못을 범할 수 있으며, 사실보다는 감정에 치우칠 수 있고, 잘못된 경험으로 고정관념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지요.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면 불만 없이 정당한 시험이었다고 생각하며 자신들이 남들보다 더 윤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등 우리가 스스로에게는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점을 꼬집습니다. 또 현재의 기분과 잘못된 정보 때문에 사실과 다르게 기억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모호한 증언을 할 수 있다거나 부분적으로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확신하려는 성향 때문에 일단 믿음을 갖게 되면 믿음의 근거가 사라진 뒤에도 계속 믿는다고 지적합니다. ‘과잉확신’은 최악의 경우 히틀러의 나치즘을 발생시키기도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독자들은 직관이 무엇인지 명확한 결론을 내려주기를 기대할지 모르지만 이 책은 나름의 인문과학서가 그렇듯 결론짓기를 서두르지 않습니다. 대신 "인간의 사고와 지식이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지, 그런 불완전한 사고와 지식의 틈을 뚫고 들어온 잘못된 직관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오히려 지혜는 환상을 버림으로써 얻을 수도 있고 지식을 습득함으로써 얻을 수도 있으며 직관의 위험으로부터 그 위력을 가려낼 수 있다면 더 현명하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공상에서 사실을 걸러내는 것 또한 가치 있는 일이며 이를 통해 지혜를 얻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이 책의 첫 번째 미덕입니다.

두 번째 미덕은 심리학에 대한 인문과학서이면서도 실용서이라는 것입니다.
“치료비를 나중에 내더라도 추가 비용을 물리지는 않지만 현금으로 바로 지불하면 5% 할인을 해주는 사실은 결국 나중에 치료비를 내면 추가 비용을 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지만, 할인 혜택이 없어진다고 표현함으로써 받아들이는 사람이 거부감을 덜 느끼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는 직관의 허술함을 통해 마케팅의 방법을 설명하기도 합니다. 사업과 정치, 스포츠, 종교,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어떤 것을 판단하고 결정 내릴 때 직감의 힘을 반기면서도 동시에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통해 그것을 자제할 것을 설득하기도 합니다. 쉽사리 빠지기 쉬운 도박의 함정, 진실을 왜곡하게 되는 배심원들의 판결,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면접관의 오류 등에 대한 다양한 사례들도 담겨있습니다.

35명의 아이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경우는 어떤지요. 때마다 재구성되는 자신의 기억과 직관에 의존해 아이들 내면에 숨겨진 창조성을 읽어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혹은 직관의 위험만을 고려해 성적과 같은 객관적 자료에만 의지해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은지요. 환상을 제거한 직관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기 위해 오늘부터 ‘진정한 내 생각의 주인’이 되어 야 하지 않을까요.
서혜정 hjkara@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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