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모눈종이를 이용하니까 원기둥 그리기 별거 아니죠? 이제 명암을 표현해야 하는데요. 요령은 원 곡면과 같은 각도로 5밀리미터 선을 그리되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힘으로 그리는 겁니다. 처음엔 힘을 주고 끝에 힘을 빼면 털이 되니까 주의하시고…아~김 선생님 그럼 털 된다니까….”
9일 오후 3시, 서울마포초(교장 김병환) 서관 2층 미술실. 20여명의 교사들이 석고 원기둥이 놓인 책상에 삼삼오오 앉아 황효순(미술교담) 수석교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오늘은 황 수석이 동료 교사들과 조직한 미술과 동아리의 ‘석고소묘’ 수업시간.
모눈종이를 앞에 둔 교사들은 황 수석의 지도에 따라 순식간에 원기둥을 그려낸다.
“처음부터 백지에 그리라면 무척 어려워해요. 하지만 모눈종이를 이용해 정해진 위치에 점을 찍고 곡선, 직선으로 연결만 하면 쉽게 완성되죠?” 황 수석은 이어 “문제는 명암인데…”하며 실물화상기를 통해 명암까지 표현한 원기둥 소묘를 제시했다.
우측 상단에서 떨어지는 빛에 원기둥 좌측이 갈수록 어두워지고, 그 끝에 비스듬한 그림자가 표현됐다. “원기둥 제일 좌측은 역광으로 되레 조금 밝다는 점 잊지 마시고요, 또…털 그리면 안 되다는 거….” 각 조를 돌며 선 처리를 꼼꼼히 교정해 주는 황 수석은 중간 중간 아이들 지도 시, 유의사항도 귀띔한다. “연필깎기로 깎지 말라고 지도하세요” “달걀 같은 거 말고 아이들의 손, 신발처럼 가져오기 쉬운 걸 준비물로 택하세요”
1시간 30분간 진행된 수업. 명암이 시루떡처럼 층이 지고, 새털처럼 날아가는 느낌에 ‘뭐가 잘못된 거지’ 골몰하는 교사들의 모습. “원기둥 윗부분 평면은 어떻게 명암 처리를 하죠?” 강혜진(6학년 5반) 교사의 문제제기에 교사들은 다시 분주해진다.
늘 가르쳐만 오던 교사들. 그런 만큼 오늘은 4B연필을 종이에 쓱싹대는 소리가 새롭다. 정혜숙(4학년 6반) 교사는 “대학 때 실기도 했고, 수업 전에 지도서보고 이론적인 거 참고도 하지만 한계가 있다”며 “전문가의 재교육이 역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지혜(2학년 4반) 교사도 “배운 것과 아이들을 수준에 맞게 지도하는 건 너무 다르다. 수업 시 유의할 점까지 알려주는 이런 기회가 크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황 수석은 올 3월, 동료교사들의 고민거리인 미술실기 지원을 위해 동아리를 만들었다. 3학년 때부터 서예, 수채화, 소묘, 판화 등이 나오는데, 대학 실기만으로는 교사들이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동아리에는 전체 54명의 교사 중 50명이 참여하고 있다.
“한 10명쯤 예상했는데 47명이 신청해 두 반으로 나눠 수업을 하고 있다”는 황 수석. 4월부터 12월까지 기초이론, 소묘, 크레파스화, 수채화, 수묵화, 판화, 서예, 감상 등등 14차시 과정이다.
황 수석은 신임, 저경력 교사들을 대상으로 수업시연도 3월 이후 5, 6차례나 가졌다. ‘물감 섞는 법’ ‘과일 단면 그리기’ ‘소묘’ 수업 등을 보여주고, 지도안 작성도 돕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