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20일 오후 2시. 교직원공제회 새 이사장을 선출하기 위해 공제회 운영위원회가 열렸다. 이미 이종서 교육부 차관이 청와대, 교육부로부터 내정된 상태여서 회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김홍섭 위원(교과부 학교정책국장)이 “17대 이사장으로 이종서 교육부 차관을 추천한다”며 운을 뗐다. “교육행정분야 경험과 학식이 풍부하고 조직 관리도 뛰어나 부족함이 없을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정기언 위원(동신대 총장․전 교육부 차관보)은 “교육부에서 이 차관과 같이 30년을 근무해 잘 아는 사이”라며 “인품에 대한 평판이 그보다 좋은 분이 없고, 다양한 경력을 갖고 있다”고 거들었다. 이어 정동기 위원(하나안진회계 부대표)이 “이 차관은 능력이 검증된 것으로 안다”고 했고, 최돈국 위원(사임당교육원장)도 “공제회가 교육부와 원활한 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적임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시 임시의장을 맡았던 신용래 위원(전 경남부교육감)은 “토론과 의견교환을 통해 충분한 심의 과정이 이뤄진 것 같다”며 “이의가 없으면 의안처리를 위해 동의해주기 바란다”고 말했고, 위원들은 동의, 제청을 통해 이 차관을 추대했다. (이상 회의록 내용)
14조원의 자산을 보유한 재계 16위권의 공제회. 8개 계열사 사장 임용이나 투자 등 사업 전반에 결정권을 쥔 이사장 선출에 투자나 경영전문성을 평가한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정부의 낙하산 퇴직관료에 대해 운영위는 거수기 역할만 할 뿐이다. 역대 15명의 이사장 중 12명의 교육부 관료출신이 그런 식으로 공제회를 점령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공제회의 낙하산 인사는 그래서 단골 메뉴다. 지난해 국감에서 주호영(대구수성을) 한나라당 의원은 “공개모집이라든가, 실질적 심사절차는 없고, 현직 교육부 관료인 운영위원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추천하고, 다른 위원들이 거들고, 임시의장이 의결하는데 걸린 시간은 운영위 회의록 분량(2쪽)을 볼 때, 채 10분도 안 되는 듯하다”고 비판했다. 공제회 노조도 “요식절차인 운영위에서의 선출방식은 분명히 개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정이 이런 데는 불합리한 공제회법과 정관이 원인이다. ‘사업 결손시 정부가 보전한다’는 조항을 빌미로 정부와 교과부는 이사장 인사와 운영위원회 구성을 틀어쥐고 있다. 현행 공제회 운영위는 이사장 1명(당연직)과 교과부 장관 지명 3인, 대의원회 지명 대의원 3인으로 구성하게 돼 있다. 교과부 입김 하에 과반수가 채워지는 구조다.
나아가 이런 운영위가 공제회 이사, 감사(상임감사 포함) 등 임원 선출․동의권을 갖고(여기에 승인권은 모두 교과부 장관이 쥐고 있다), 제 규정 등을 제정할 뿐 아니라 주요 사업운영 계획 및 집행을 심의․의결하는데 있다. 교과부가 공제회의 방만운영을 견제하려는 취지를 뛰어넘어 아예 주인인 회원들을 밀어내고 직접 경영하겠다는 수준이다. 전문성이 검증되지 않은 이사장과 교과부의 독단을 회원들이 막기 어려운 구조다.
이번 프라임엔터테인먼트(옛 이노츠) 청탁 투자의혹에 대해 공제회는 “자금투자는 금융사업부의 투자판단서에 입각해 이뤄지는데 당시 이사장에게는 건전하지 못한 투자로 보고했었다”며 “하지만 이사장이 다시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매입 의중’으로 판단했고, 투자가 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실제로 검찰조사에서 김평수 전 이사장은 이노츠의 매출액이 50억원에 불과해 ‘매출액 200억원 미만의 회사에 투자할 수 없는 공제회 내부 투자운영규칙에 어긋난다’는 투자 실무진의 의견을 무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사장 외에도 교과부 출신은 공제회 상임감사, 이사, 산하사업체 사장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포진돼 있다. 류상번(전 경북 부감) 경주교육문화회관 사장, 김국현(전 경북 부감) 서드에이지 사장, 조흥래(전 강원 부감) 공제회 이사가 그렇다. 또 전임 박무사(울산 부감)․김경환(충북대 사무국장) 상임감사, 유춘기(전 제주대 사무국장) 전 교원나라제주호텔 대표이사도 교육부 출신이다. 특히 산하사업체에 대한 낙하산 인사는 부실경영의 요인이 된다는 점에서 국정감사 지적사항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한국교총은 18대 국회에서 공제회의 낙하산 인사 고리를 끊어내는 입법활동을 다시 추진할 방침이다. 대의원회에서 이사장을 공모제 등을 통해 선출하고, 운영위에 대한 일선 교원들의 참여를 강화하기 위해 장관 지명권을 폐지하는 내용이 골자다. 김항원 정책교섭실장은 “장관 승인을 받게 돼 있는 예결산도 의결권을 대의원회에 주고, 외부 감사제도를 도입해 투명성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공제회는 “교과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지 않은 것은 공제회의 경영이 건전하다는 증거이지 결코 아무 관계도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며 “결손보조금 규정에 회원들이 신뢰를 갖는 만큼 교과부와 더 유기적인 협력관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회원 참여 강화를 위해 “장관 지명 운영위원을 한 명 줄이고, 대의원 지명을 1명 늘리는 방안이나 운영위원회를 없애고 이사회를 운영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