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에 치러진 초중고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성적 오류' 파문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이메일 좌담에 참여한 교사들과 교육과정평가원 평가연구본부장은 “시험과정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학업성취도 평가를 없애자는 주장을 펼쳐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평가결과로 교원 희생양 삼으면 갈등만 증폭될 것
미국, 영국, 일본 등 외부 전문기관에 위탁해 채점
기초학력 미달 학생 수업 프로그램 개발 집중해야
시험 많은 고교, 3월 평가에 기초학력 테스트 함께 출제 바람직
- 학업성취도 평가결과 발표 후 ‘임실 사태’ 등으로 인해 후폭풍이 거셉니다. 이를 빌미로 시험자체를 거부하는 움직임도 있는데요.
남명호=학업성취도 평가가 우리나라에서 시행된 지는 오래 되었지만 그 동안 적게는 1%에서 많게는 5% 가량 표집 실시해 왔습니다. 전체 학생 대상 학업성취도 평가를 한 것은 작년이 처음이었습니다. 전수 평가에 대비한 준비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첫 해부터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교육관련기관 정보공개에 관한 특례법 시행령’에서도 2년간의 준비 기간을 두어 단위 학교별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는 2010년부터 공개하기로 한 것입니다. 일부 지역 또는 학교의 성적에 오류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만 이번 사태를 빌미로 시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오히려 채점의 공정성, 성적 이기시의 정확성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이창희=맞습니다. 시험을 보기위한 여건이 형성되기 이전에 시험을 강행한 것이 문제입니다. 표집학교의 표집학급 답안지만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채점하고 나머지는 일선학교에서 채점해 그 결과를 보고하도록 한 것이 문제의 빌미를 제공했는데, 그 이유가 예산부족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문제를 충분히 검토한 후 평가를 실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험자체를 거부하기 보다는 여건조성에 더 힘쓰도록 관계당국에 독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김창동=‘임실 사태’는 어느 정도 예견된 사태였습니다. 학업성취도 평가의 분석은 숫자에 매달린 공개가 아니라 우리나라 학교에서 기초학력 미달자의 분포도와 그 학생들을 위한 각 급 학교의 대책을 먼저 논의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임실 사태’ 로 뒤처진 학생을 파악해 그들에게 주어야 할 학교의 책무성을 뒤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학교 현장의 소리를 듣고 학업성취도 평가의 방향을 학교 교육의 새로운 변화를 유도할 수 있도록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
백장현=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공개였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국민들의 교육에 대한 ‘신뢰의 위기’라고 봅니다. 구조적 문제점들이야 논의하면 어느 정도 해결책이 나오겠지만, 지금처럼 국민들의 교육에 대한 총체적 불신은 짧은 기간에 치유하기 어려운 문제일 것입니다. 여기에다가 평가 결과를 교육주체인 교원(교장, 교감, 교사)들의 역량 탓으로 희생양을 삼는 분위기가 계속 된다면 갈등이 더욱더 증폭돼 해결의 실마리는 더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 시험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수능처럼 교육과정평가원에서 모든 학생들의 시험지를 채점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데요.
백장현=얼마 전 이주호차관의 취임 일성 중 한가지인 '데이터 중심 행정'을 하겠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평가라는 것은 시행할 때의 공정성도 중요하지만 결과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 산출과 그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더 중요하지 않습니까. 수능시험처럼 국가에서 주관해 채점하고, 그 결과를 분석했더라면 성적을 조작하고 왜곡하는 불행한 일들은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전의 경우처럼 학교 자체 채점이 아닌 용역업체 채점으로 신뢰도와 객관성을 담보한 사례도 참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답안을 전산처리할 수 있는 형태로 출제해 담당 교원이 평가 하나에만 지나치게 매몰되는 일이 없도록 바꿔야할 것입니다.
남명호=학업성취도 평가는 개별 학생의 능력을 점검해 학습 부진의 원인을 찾고 이를 보정해 주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학교별, 지역별 학업 성취 현황을 파악해 미도달 학생 밀집 지역에 대해 지원을 하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이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학생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시험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미국, 영국, 일본과 같이 채점을 외부 전문기관에 위탁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만합니다. 지역별로 바꾸어 채점하는 방안이 제안되고 있으나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봅니다.
이창희=예산 확보해 교육과정평가원에서 모든 학생들의 답안지를 채점하는 시스템 도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평가의 객관성을 높이려면 중고교의 경우 학업성취도를 실시하는 과목(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의 결과를 정규고사 성적으로 대치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학생들의 참여도도 높아지고 시험 보는 태도도 바뀔 것입니다. 또한 학교에서는 시험을 자주 본다는 부담감도 어느 정도 해소가 가능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좀 더 객관성이 높아지겠지요.
김창동=고교는 평가가 매우 자주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고1의 경우 만해도 연간 4회의 학교정기고사와 4회의 ‘전국연합학력고사’를 치룹니다. 그러기에 점수와 등위가 산출되지 않는 학업성취도 평가는 성의 없이 치루는 경우가 많이 생깁니다. 저는 고교의 경우 3월 학력평가를 치룰 때, 앞부분 10문항내지 15문항 정도 기초 학력 테스트를 위한 문항을 출제․채점하여 기초학력 미달 정도를 알아보고, 나머지 문항을 통해 상위 또는 중위권 학생의 학업정도를 분석 파악하는 방법을 도입했으면 합니다. 시험 횟수도 줄일 수 있고, 채점과정도 공정하지 않겠습니까? 현장교사에게 부담 없으면서도 책무성을 부여할 수 있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고 판단됩니다.
- 초6, 중3생 기초학력미달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아 체면을 구긴 서울시교육청은 ‘교장ㆍ교감평가제 도입' 카드를 제시했습니다. 단기간의 학업성취 비교를 통해 책임을 교원에게 묻겠다는 식의 방안으로는 근본적 학업성취 향상을 기할 수 없을 텐데요.
김환희=학업성취도 평가 결과에 따라 상위 3%에 해당하는 교장이나 교감에게 포상을 주고, 그렇지 못할 경우 인사상의 불이익을 준다는 교과부의 생각은 정말이지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기에 따른 부작용이 어떤 것인지 알면서도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정책을 밀어붙인다면 교원 간 위화감이 극에 달할 것입니다.남명호=지금은 학업성취도 결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어떻게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시행할 것인가가 최우선 과제입니다. 평가 결과 활용 문제는 신중해야합니다.
이창희=교장, 교감에게 압박을 가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선학교 교사들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학생들의 실력이라는 것이 단기간에 향상될 수 없습니다. 결국 학교의 시스템을 학업성취도 평가에 맞추라고 강요하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예전처럼 문제풀이만을 강조하는 교육이 불가피합니다. 교장이나 교감은 물론, 교사들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참에 사교육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는 대도시의 성적이 낮게 나타난 것을 토대로 사교육해소 방안을 찾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공교육발전을 위해 교장공모제를 도입했지만 그 학교들이 월등히 높은 결과가 나왔다는 이야기는 없습니다. 결국 근본적 문제는 교원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여건이 어려운 학교의 여건을 개선하는 의지와 노력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 학업성취로만 평가하게 될 경우 교과 외 여타 교육요소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고, 학력이 뒤처지는 학교나 지역 근무를 회피하는 현상마저 나타날 개연성도 있지 않을까요.
- 학업성취로만 평가하게 될 경우 교과 외 여타 교육요소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고, 학력이 뒤처지는 학교나 지역 근무를 회피하는 현상마저 나타날 개연성도 있지 않을까요.
이창희=당연히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학업성취도평가결과는 학교와 학부모, 학생, 교육여건이 복잡하게 관련돼 나오는 것입니다. 학교에 책임을 묻는다면 성적이 낮게나온 학교에 누가 가려고 하겠습니까. 교사들이라면 학업성취도가 하루아침에 향상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당연히 성적이 높은 학교만 선호하게 될 것입니다. 도리어 더 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다른 교육은 소홀히 하더라도 학생들이 시험만 잘 보면 되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처럼 인성교육이나 생활지도도 함께 해나갈 것인가에 대해 정부는 결단을 내려야합니다.
백장현=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공개로 인한 부정적 효과가 일부 벌써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례로 어느 초등 6학년생이 대전으로 전학을 오는데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가 높게 나온 중학교를 가려 하는데 그 학교를 알려달라는 학부형의 문의 전화가 있었습니다. 교원인사도 지금이야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겠지만, 교원의 학교 선택에 있어서도 그러한 결과가 나타나리라 봅니다.
남명호=당연한 얘기지만 학교 평가 요소도 다양해야 합니다. 학업성취도 평가는 여러 평가 요소 중 하나일 뿐입니다. 학업성취도 결과를 학교평가나 교원평가에 연계하더라도, 지역이나 학교 간 차이를 단순히 비교해서는 안 되며 지역이나 학교 환경, 학생의 가정환경 등을 고려한 향상도를 평가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럴 경우 오히려 향상도를 손쉽게 높일 수 있는 낙후 지역에 교사가 더 많이 지원할 수도 있을 겁니다.
- 학업성취도 전수 평가와 결과 공개를 통해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초등4학년부터 고교1학년 사이에만 30만 명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기초학력 미달 학생 제로화 원년’ 같은 다짐과 목표도 중요하지만 그런 구호보다 내실 있는 학력 향상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시행하는 시스템 마련이 우선돼야 할 텐데요.
이창희=학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당연히 그 과제해결의 시발점이 학교가 되어야 할 것이고요. 그렇지만 학업성취도평가의 기본취지에 충실해야 합니다. 학교별로 경쟁을 시켜서 학력신장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은 그럴듯하지만 현실과는 괴리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경쟁에 동참할 수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도리어 포기하는 현상이 나타날 것입니다. 학생들도 새 학년이 되면 대부분 새로운 각오로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포기하는 학생들이 속출하지요. 이런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인 방과후학교나 특별보충반 운영 등을 더 확충해야 합니다. 학업성취도를 높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인위적 경쟁이 아닌 자연스러운 경쟁을 하도록 여건개선에 힘써야 합니다.
남명호=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포함한 학습부진 학생에 대해서는 별도의 학습 부진반을 운영하거나 방과 후 활동을 통해 맞춤식 수업으로 꾸준히 지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전문 연구 기관에서 체계적이고 과학적 수업 프로그램을 개발해 보급할 수 있도록 교과부와 시도교육청의 적극적 지원이 필요합니다. 기초학력 부족 학생에 대해서는 국가가 충분한 예산을 투입해 적극 구제해야 합니다. 정책 당국자는 이들이 학교교육을 통해 적시에 보정되지 않고 성인이 될 경우 훨씬 많은 사회적 비용이 든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김환희=기초학력 부진아의 학력 향상을 위해 경험이 많은 우수한 교사확보가 선행돼야 할 것입니다. 여건이 된다면 수업시수가 많은 교사의 부담을 덜어주는 차원에서 재능 있는 인턴교사를 채용해 부진아 전담반을 만들어 운영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교과담임과 연계한 상담을 통해 아이들의 문제점을 수시로 파악해 개선책을 수립․실천하면 학력향상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특히 성적을 향상시킨 인턴교사에는 채용 시 인센티브를 부여해 학력향상에 내실을 꾀하는 것도 바람직할 것입니다.
참석자> 김창동 서울 양정고 교장, 김환희 강릉문성고 교사, 남명호 한국교육과정평가원 평가연구본부장, 백장현 대전시교육청 초등교육과 교육행정주사보, 이창희 서울 대방중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