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인도의 수도 뉴델리에 위치한 네루대학교. 일요일인데도 강의실은 한국어능력시험(TOPIK·이하 토픽)에 응시하기 위한 젊은 인도 학생들로 붐볐다. 토픽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1997년부터 매년 외국인과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실시하는 한국어능력 검증시험으로 올 상반기에만 25개국 97개 지역에서 9만6000여 명이 응시했다. 인도는 2006년 시험이 시작된 이래 매년 응시자가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국가 중 하나로 이날도 130여 명의 학생이 초․중․고급으로 나눠 시험을 치렀다. 초중고교 과정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교 하나 없고, 한국 대사관에 교육관조차 파견되어 있지 않음에도 인도에서 한국어에 대한 꾸준한 관심이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TOPIK에 응시한 학생들과 한국어학과 교수들의 입을 통해 인도 내 ‘한국어 열풍’의 원인을 짚어봤다.
“현대자동차, 삼성, 엘지 취직이 꿈”
■ 한국어능력시험을 치르는 이유=이날 토픽 응시생들은 네루대학과 델리대학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인도의 젊은 청년들이 한국어 공부에 이토록 열을 올리는 이유는 한국기업에 취직하기 위해서다.
뉴델리 지역 토픽을 지휘한 주인도 한국 대사관 정용환 영사는 “현재 인도 뉴델리와 첸나이, 뭄바이 등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은 삼성과 엘지, 현대자동차 등 250여 개”라며 “한국 기업은 현지 일자리 제공은 물론 장학 사업을 통해 한국 유학도 보내주고 있어 인도 젊은이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인도 최고 명문 델리대학에서 한국어 강좌를 듣고 있다는 워심 칸(19)씨 역시 “엘지나 삼성에 취직하고 싶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야 김수로왕과 인도 허왕후의 결혼 설화도 알고 있을 만큼 한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1년 남짓 배웠다는 한국어 실력은 맞춤법, 단어 활용 등에서 흠잡을 바 없이 뛰어났다. 네루대 3학년 코마르 가우리브(20)씨는 “토픽 중급은 인도인에게 상당히 어렵지만 합격률은 75% 정도 된다”며 “역사와 문화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한 만큼 오늘 시험은 자신 있다”고 말했다.
아직 ‘한류’라고 말하기는 이르지만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친밀감도 생생하게 전해졌다. 가수 ‘빅뱅’을 좋아해 한국 이름을 ‘김태양’이라고 지었다는 아밀(25)씨는 “인터넷에서 한국 노래를 자주 찾아 듣는다”며 ‘아리랑’을 직접 불러주기도 했다.
“네루대 배출 한국학 석사만 100여 명”
힌디어와 어순 비슷, 일어․중국어보다 쉽게 배워
■ 인도인 한국어학과 교수 1호 자야 네루대학 교수=“한국어 과정이 네루대학에 처음 생긴 1976년에 한국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는 자야(54 사진)교수는 1977년 한국으로 유학,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학부와 석사과정을 마쳤다.
양국 모두 식민 지배를 받은 아픔을 갖고 있어 ‘인도 세포이의 반란과 한국의 동학운동’을 주제로 논문을 쓰기도 한 자야 교수는 인도 학생들이 일어, 중국어 보다 한국어를 더 배우기 쉬워하는 이유로 인도 공용어인 힌디어와 비슷한 어순을 꼽았다.
한국어 석사 과정까지 있는 네루대의 교육과정은 1학년의 경우 읽기, 듣기, 쓰기, 말하기 위주로 편성되고 2학년부터 한자 과정이 포함된다. 3학년이 되면 한국 초중등 교과서에 나오는 단편소설 등 문학과 한국 동요 등을 배운다. 석사과정인 4, 5학년은 학부에서 배운 것을 기초로 한국학을 전공하게 된다.
자야 교수는 “지금까지 네루대가 배출해 낸 한국학 석사만 100여 명”이라며 “한국 초중고교와의 교류가 좀 더 활발해지면 이들을 활용해 한국문화가 더 빠른 속도로 인도 내에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관심 이어가려면 한국어 교육기관 확대해야
‘한글학교’ 교실 없어 미 대사관 셋방살이
■ 한국어학과 개설 델리대와 네루대 뿐=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한 인도인들의 관심에 비해 한국어학과가 개설된 대학은 델리대와 네루대 두 곳뿐이다. 석사학위 과정이 있는 곳은 네루대뿐이고, 박사학위 과정은 아직 개설되지 않아 현지에서 한국어 교수를 양성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인 객원교수 4명에 인도인 교수까지 합쳐도 10명이 넘지 않는 교수진으로는 한국어 보급이 일본이나 중국 등 다른 동아시아 국가에 비에 밀릴 수밖에 없다. 물론 초중고교에서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곳은 한 곳도 없다.
주재원과 현지 거주 한국 학생을 위한 ‘한글학교’도 상황이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1학년부터 7학년까지 120여명의 한국 학생들이 매주 토요일마다 한국 교육과정에 맞춰 공부를 하고 있는 한글학교는 교실이 따로 없어 미국대사관 내 아메리칸 스쿨의 카페테리아를 빌려 쓰고 있다.
한글학교 윤춘자(68) 교장은 “한글학교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학생 수에 비해 장소가 협소하도 보니 원하는 학생을 다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다른 것도 아니고 시설 탓에 한국 학생들 간에 교류를 할 수 없는 것이 아쉽다”고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5학년 학생 지도를 맡고 있는 이화숙 교사도 “정부 지원이 거의 없어 도서 구입도 학부모들이 대부분 자비로 마련하고 있다”며 “재외동포지원 재단이나 교과부 차원의 세심한 관심이 아쉽다”고 말했다.
주인도 한국 대사관은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2011년까지 ‘한국문화원’ 개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사관 정상원 1등서기관은 “한국문화원을 만드는 것이 대사관의 숙원사업”이라며 “문화원이 개설되면 현지인 대상 한국어교육, 한국을 알리는 다양한 문화행사는 물론 한글학교 운영을 위한 장소 제공 등도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어 박사과정 개설해야죠”
인도 요구수준 맞춰 교육과정 직접 개발
■ ‘한국어 교육의 대부’ 김도영 델리대 객원교수=“인도의 무한한 가능성과 한국과의 활발한 교류에 대한 선견지명이 있었다고 해야 할까요?(웃음) ‘인도 영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네루대학과 인연을 맺은 것이 벌써 21년이 되었습니다.”
1988년 인도로 건너간 김도영(53 사진) 교수는 정식 학위과정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네루대학의 ‘한국어교육과정’을 1995년 한국어학과로 승격시키는 등 인도 대학에 한국어학과를 만들어 낸 일등 공신이다. 1998년 네루대학에 석사 과정까지 만들어낸 그는 2002년 인도 최고 명문대학인 델리대로 건너와 한국어에 대해 전혀 관심 없던 학교 관계자들을 설득, 동아시아학과 내에 한국어전공 과정 개설을 이끌었다.
“교육과정도 인도에서 요구하는 수준에 맞춰 모두 직접 개발했어요. 한국과 인도 학자들 간의 교류는 물론 한국 관련 행사 개최의 주관도 제가 다 맡아 합니다. 작년엔 인도 명문사립고교인 델리 퍼블릭 스쿨(DPS)과 안양외고와의 자매결연에도 다리를 놓았지요. 1인 몇 역을 하고 있지만 제가 우리나라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김 교수의 꿈은 한국어 박사과정 개설과 델리대학 내 82개 단과대학 모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도록 하는 것. “델리대에서의 7년 노력이 이제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는 김 교수는 “한국기업의 좋은 이미지를 한국어를 비롯한 한국 문화의 확산으로 잘 이어가면 인도에 부는 한국어 ‘바람’이 ‘열풍’으로 바뀔 날도 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사학이 엘리트 교육 주도…평가는 주관식
▶ 인도의 초․중등 교육
인도의 초·중·고교는 카톨릭 학교, 사립학교인 Public School, 그리고 인도 서민 및 빈곤층이 다니는 공립학교인 Government School로 구분한다.
카톨릭 재단이 운영하는 미션 스쿨을 Convent School이라고 부르는데, 1000개 이상이 있다. 이들 학교는 수업을 거의 모두 영어로 한다. 교육의 질이 뛰어나고 장래가 보장되기 때문에 힌두교 상층 부모들도 자녀들은 카톨릭 부속 초중고에 보내고 싶어 한다. 기부금이 수백만에서 이천만 원 정도까지를 내고라도 학부모들은 자녀들을 이 학교에 보낸다.
독립 이후 카톨릭 부속교를 대체하기 시작한 것이 사립학교인 Public School이다. 영어 명칭 때문에 공립학교로 착각하기도 하지만 인도에서 Public School이라고 붙으면 사립이다. 카톨릭 부속 초중고의 뛰어난 질적 교육을 모델로 하기 때문에 공부를 경쟁적으로 많이 시키고 시설 투자도 더 많이 한다.
교육평가 방법은 주관식이다. 초1부터 대학원까지 모든 평가는 주관식이며, 수능고사와 같은 10학년(고1)과 12학년(고3) 때의 국가고사에도 철저히 적용된다. 학습자들이나 학부모들도 평가의 결과에 대해서는 신뢰하는 편이다. 평가 내용도 기초과정을 강조한다.
초중고교에서 배우는 교과목은 7개 정도. 인도의 국어격인 힌디어도 8학년(중2)까지만 배우고 그 후에는 제2외국어인 불어, 독일어 등과 같이 선택과목으로 처리된다. 미술이나 음악 등은 따로 과목이 없고 특별 활동으로만 한다. 2006년부터는 수학도 8학년(중2)까지만 배우고 이후는 선택과목으로 바꿨다. 김도영 교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