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구 송중동에 위치한 창문여고. 서울시 학교평가에서 매년 우수학교로 지정될 만큼 탁월한 교육과정 운영과 교육경영 능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자립형 사립고 신청을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김성일(42) 교장은 “지역사회가 원하는 것은 특수 계층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통합·평등교육에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한국형·창문형 교과교실제 정착이 우리 학교의 목표”라고 말했다. 두 달여에 걸친 김태완 한국교육개발원장의 ‘교육정책 현장착근 지원을 위한 학교방문’ 마지막 방문지인 창문여고의 경쟁력을 키워드별로 살펴봤다.
찾아가는 수업 능동적 변화, 집중도 높아져
[Key Word 1] 자율성 중심 - 교과교실제
5일 오후 2시. 100분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리자 교실에서 학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책과 노트를 팔에 낀 학생들은 시간표를 보고 다음 수업이 열리는 교실을 찾아 바쁘게 흩어졌다. 교실에서 기다리던 선생님들이 학생들은 반갑게 맞는다.
TV나 영화에서 보던 미국 중등학교 수업과 흡사하다. 지난 3월부터 전 과목 교과교실제를 도입한 창문여고의 풍경이다. 학생들은 스스로 짠 수업 시간표에 따라 매 시간 이동하면서 과목별로 마련된 전용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다.
교과교실제 시행을 위해 학교는 전면 새 단장을 했다. 우선 각 층마다 ‘홈베이스’를 만들었다. 사물함은 물론 쉬는 시간, 점심시간 등에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파우더룸, 멀티미디어와 도서 등을 구비해 ‘문화공간’의 역할도 담당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각 교과별 특성에 맞춘 교과 전용교실. 교실 팻말에는 학년과 반 대신 과목명과 담당 교사의 이름이 적혀 있다. 각 과목 교사들은 담당교실을 교과 특성에 맞게 변신시켰다. 과학실은 실험 도구와 표본으로 가득하고, 국어교실은 토론을 위한 신문 방송자료로 빼곡하다. 사회교실에는 매일매일 변하는 환율을 게시, 경제에 대한 마인드를 갖출 수 있도록 연출했다.
효율적인 교육을 위해 교육과정에도 변화를 줬다. 쉬는 시간을 뺏긴다는 단점도 동선을 최소화하고, 한 과목 시간을 두 시간으로 늘리는 ‘블록타임제’를 도입하는 등의 노력으로 보완했다.
최영현 부교장은 “교과 특성에 맞게 교실을 꾸미고 기자재를 배치할 수 있어서 학습 면에서 효율성을 극대화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사와 학생 모두 학습교구를 설치하고 옮기는 등의 불필요한 낭비를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1학년 윤영 양은 “이것저것 설치하고 정리하는데 드는 시간이 없어 수업에만 몰두할 수 있다”며 “한 교실에 학습 자료들이 축적돼 있어 수업 외에도 배우는 것들이 많다”고 말했다.
스스로 수업을 찾아가면서 학생들도 능동적으로 바뀌고 집중도도 훨씬 높아졌다. 특히 영어, 수학 과목의 경우 3개 반을 4개 수준, 또는 4개 반을 5개 수준으로 분류해 이동수업을 하고 있다. 특히 하위 반은 10명 내외의 인원으로 수업이 가능해 마치 과외를 받는 듯한 효과를 주고 있다.
‘우열반 형태로 변질될 것’이란 우려도 5개월 남짓 시행을 통해 사라졌다. 주요 과목 수업의 교실 선택에 학생들의 자율을 최대한 존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 스스로 제 수준에 맞는 수업을 골라 듣는 형태로 자연스럽게 정리돼 ‘국어 상, 수학 중, 영어 상’을 듣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국어 중, 수학 상, 영어 중’만 골라 듣는 학생도 있다. 김성일 교장은 “수준별 수업에 따른 수준별 평가가 행해지지 못한다는 한계점은 있지만 영어로 자신의 이름도 못 쓰는 학생들을 위한 맞춤형 수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매달 자기수업 리포트 작성, 수업개선 효과 커
[Key Word 2] 수요자 중심 - 수업만족도조사
이제 한 학기를 실시했지만 교과교실제 시행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가르치는 방식이나 학생들의 수업태도 등이 몰라보게 달라졌다는 게 학교 구성원들의 얘기다.
창문여고는 2005년부터 전 교과 수업에 대해 설문 조사를 실시해왔다. 연 2회(5월, 12월) 학생들의 설문조사 내용은 곧바로 교사들에게 피드백 되고 수업개선을 위한 자료로 사용된다. 김성일 교장은 “수업태도가 나쁜 친구들이 가장 싫다고 응답하는 등 교과교실제 이후 학생들의 수업에 대한 관심도와 만족도가 훨씬 높아졌다”며 “교사들이 헌신하고 노력하는 만큼 결과로 나타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창문여고에서는 교사들이 학생지도 카드를 만들어 수업 목표에 대한 달성도, 목표에 다다르지 못한 학생은 누구이며 어떻게 대책을 세울 것인가를 개개인 별로 체크한다. 또 교사들이 매달 자기수업에 대한 리포트를 작성하고 교과협의회를 통해 매년, 매 단원,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는 등 초심을 잃지 않고 가르치는 것에 매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영현 부교장은 “교과교실제 교사와 공용교실을 이용하는 교사 간 업무량도 교사들의 협조로 조절하고 있다”며 “통합교무실에 있는 교사들이 주로 행정을 담당해 교과교실제 교사들이 수업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김태완 한국교육개발원장은 “교과교실제는 학점제, 무학년제 등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학교선진화 정책의 초석”이라며 “창문여고의 교과교실제가 정책을 선도할 수 있는 롤 모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평가했다. 김 원장은 또 “7차례에 걸친 학교방문을 통해 정부의 교육정책을 현장에 전개하는데 있어 압박감 없이 잘 스며들 수 있게 하는 방안 마련이 절실함을 느꼈다”며 “정책과 현장 사이의 간격이 무엇인지 잘 살피고 점검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