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적 벌점 인정여부‧징계수위 재판 결정
학생들 “처벌 덜 억울, 규칙 더 이해 돼”
교과부,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주최로 10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인성교육 실천 우수학교 학교장 워크숍’에 법복 입은 학생 20여 명이 등장했다. 검사, 판사, 변호사, 피고, 증인, 배심원, 서기 등 저마다 막중한 역할을 맡고 등장한 이들은 다름 아닌 인천 석정여고(교장 강환권) 학생들. 워크숍에 참석한 100여명의 학교장들 앞에서 특별한 재판을 열었다.
학생들은 이날 교복개조, 교복 미착용, 두발 염색·파마, 교사 지시 불이행 등으로 총 누적벌점 45점이 된 피고 이윤정(2학년·가명) 학생의 벌점 인정 여부와 징계 수위를 정하기 위해 재판을 벌였다.
학생들의 재판이라고 해서 대충 할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 여느 법정 못지않게 진지하고 열띤 공방이 오갔다. 변호인은 증인을 통해 피고가 헤어디자이너 지망생이어서 밤늦게까지 이루어지는 미용학원 실습으로 두발이 단정하지 못했다는 점, 어려운 상황에 놓인 후배를 도와 두 차례 상점을 받은 점, 벌점을 부과 받고 개선 노력을 한 점 등을 집중 부각시켰다. 검사는 학교에는 학생이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벌점 부과 대상이 된 이유와 즉시 개선을 하지 못한 부분을 추궁했다. 이날 재판에서 검사는 교내봉사 2주일, 아침선도 1주일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아침 선도 활동 1주일, 중식·석식 바른 생활 캠페인 1주일을 판결했다.
학생자치법정을 지켜본 박승남 인천 옥련여고 교장은 “학생들이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학칙 관련 사항들을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감명받았다”며 “학칙에 대해 고민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고 평했다.
석정여고 박종선 교감은 “2010년부터 학생자치법정을 도입하고 학생의 눈높이로 징계를 결정함에 따라 학칙 위반 학생 비율이 줄고 규칙을 준수하려는 의지가 높아졌다”며 “학생인권조례 등 인위적으로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것보다 더 자연스럽고 교육적인 효과가 높다”고 강조했다.
자치법정은 학생들의 생활 태도도 바꾸어 놓았다. 유민정 지도교사는 “석정여고에서는 벌점 25점을 초과하면 학생자치법정에 회부되는데 교사의 지시, 벌보다 학생들이 자치법정에 서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판사를 맡은 김유빈(17·2학년) 양도 “학생자치법정에 참여한 후로는 학칙을 잘 지켜서 피고인석에 서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고 스스로 다짐한다”고 했다. 배심원으로 참가한 한윤희(17·2학년) 양은 “일방적으로 선생님에게 징계를 받으면 수긍되지 않고 억울한 면이 있었는데 학생자치법정은 친구들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해 그에 맞는 벌을 판결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