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법에 초·중·고별 특성 반영하고 재심 일원화 필요
징벌기준 제각각… “가이드라인 제시로 소송 줄여야”
대구 중학생 자살 이후 지난 한해는 학교폭력과 교권침해 문제로 온 사회가 떠들썩했다. 정부는 학교폭력근절종합대책을 발표했고, 경찰청, 법원 등 사회 각계에서도 문제 해결을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각종 대책 시행 후 학교는 어떻게 달라졌고, 무엇을 보완해야할까. 새해를 앞둔 12월27일 이화여대 학교폭력예방연구소에 모인 전문가 5명은 “전 사회가 나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다”고 평가하면서도 “효과를 거두려면 차기 정부에서도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좌담에는 서혜정 한국교육신문 편집국장(사회), 한유경 이화여대 학교폭력예방연구소장, 정제영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 홍승훈 변호사, 임종수 의정부 호동초 교장, 이기원 부산공고 생활지도 부장이 참석했다.
서혜정=현장에서도 이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이하 학폭법)에 의한 폭대위 개최가 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만, 폭대위 사안과 선도위 사안을 구분, 학부모를 이해시키는 것이 어려워 사안이 아닌데도 폭대위를 개최하는 등 형평성 문제를 많이 말씀하십니다.
한유경=종합대책 시행 후 1년 만에 현장에 많은 변화가 이뤄졌습니다. 학교구성원들 사이에 ‘사소한 장난도 학교폭력일 수 있다’는 인식이 형성됐고 학생들도 더 이상 참지 않고 117 신고센터 등을 활용해 적극 대응하고 있죠. 하지만 정책 과정에서 어려움도 나타나고 있는데 말씀하신 학폭 사안에 대한 판단이 그 중 하나입니다. 무엇보다 조사의 정확성이 담보돼야 합니다. 담임교사와 구성원의 전문성 강화와 사안 조사 시 스쿨폴리스 등 외부전문가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며 학교의 지속적이고 엄정한 규정집행도 요구됩니다.
정제영=폭대위 결정은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에 졸업 후 5년간 기재되는 반면, 선도위 결정은 기재되지 않기 때문에 가·피해 학부모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것이죠. 학부모들은 폭대위 개최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선도위와 폭대위에서 다뤄야 할 사안의 범위가 다른 만큼 혼란을 막기 위해 이를 명확하게 설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기원=맞습니다. 애매한 법 해석이 문제이니 학교에 세부적으로 명확한 예시를 줄 필요가 있어요. 판단이 어려운 애매한 경우는 생활지도부장이나 선도위원회 회의를 거쳐 결정할 수 있도록 교사의 권한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합니다.
홍승훈=학폭법에 학교폭력에 대한 정의가 명확히 이루어져 이론상 그 구별이 어렵다고 보이지는 않습니다. 사례들이 축적되면, 폭대위 사안 유형화가 이뤄져 충분히 해결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임종수=원인은 학폭법이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학생을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육성한다’는 목적보다 폭대위 개최, 은폐 여부, 학생부 기재 등 수단·절차에 지나치게 치중하면서 생긴 불안함 때문이라고 봅니다. 학폭법과 시행령이 징벌위주보다 학생을 건전한 사회인으로 육성하는 데 필요한 규정으로 개정돼야 합니다.
서=학생부 기재를 두고 벌어진 일부 시·도교육청과 교과부의 싸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보완이 필요하겠지요?
한=학생부 기재에 대한 학생들의 경각심이 큽니다. 네거티브 정책이지만 1년 만에 인식을 바꾼 가장 큰 동인이기도 합니다. 학생부 기재 실시 후 1학기가 지난 시점에서 시행된 정책여론조사에서도 학교폭력 사안의 학생부 기재가 폭력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의견(76%)과 학교폭력을 줄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는 의견(76.8%)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등 긍정적 여론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학생부로 인한 인권침해 최소화를 위해 가·피해자 균형점을 찾으려는 노력으로 개선안이 시행된다면 혼란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됩니다.
홍=공격적 처벌 위주의 조치는 완벽한 조사를 통한 정확한 사실관계 파악이 선행돼야 하는데 수사관이 아닌 교사에게 과중한 심적 부담을 준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최근 폭대위 결정에 불복해 행정소송 사례가 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학생부에 기재되느니 ‘끝까지 해보겠다’는 것이죠. 궁극적으로 학교폭력 사안은 교사는 회복적 생활지도에 주력하고, 그 범위를 넘어선 경우 수사기관 등 사법 작용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졸업 전 삭제 심의제도나 중간삭제제도는 교사의 심적 부담을 덜면서도 가해 학생에게 사후용서의 기회를 줌으로써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임=학생부 기재는 가해학생의 신분변동이 발생한 경우에만 기재하는 것으로 보완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입니다. 즉, 중징계에 해당하는 8호(전학)와 9호(퇴학처분) 처분을 받았을 때만 기재하도록 하는 것이죠. 그렇게 되면 학생·학부모 불안과 교과부와 일부 시·도교육청 간의 갈등도 해소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인권 문제를 놓고 교과부와 시·도교육감이 싸움을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인권침해나 상위법 위반 등의 문제는 헌법재판소 등 법원에서 판단할 몫이죠.
서=학폭 대책 외에 정부는 지난해 9월 교권보호종합대책도 발표했습니다. 현장의 체감도가 높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또 실제 학폭 사건에는 교권침해 사안이 섞여 일어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학교폭력 사안에 교권침해도 포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데요.
이=교권보호대책을 현장에서 체감하려면 학생·학부모에게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것을 범국가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교권침해 역시 학생부 기재를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학폭법 제정목적과 학교폭력 정의를 고려할 때 교권침해를 학폭 사안으로 다루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만을 학교폭력으로 규정해 교원을 대상으로 한 교권침해를 배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권침해 사안 학생부 기재는 공감대가 선행돼야 하겠지만, 기재를 위해 학폭 사안에 포함할 필요는 없습니다. 학생부기재 지침만 변경하면 되는 문제입니다.
임=학교폭력은 주로 학생을, 교권침해는 학생·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므로 동일한 법령으로 규제하기는 혼란스럽습니다. 교권보호대책 발표 이후 각 시·도교육청의 교권보호지원센터 운영, 학부모 학교방문 사전예약제 등은 정착되고 있는 편입니다.
홍=저도 임 교장선생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기본적으로 학교폭력과 교권침해 사안은 분리돼야 합니다. 아무리 교권 침해가 만연하고 있다 하더라도 교사는 학생과는 다른 지위와 역할을 갖고 있습니다. 교권보호는 궁극적으로 선생님에 대한 존경에서 비롯되는데, 교권 침해를 학교폭력에서 일반 피해 학생의 관점에서 다룬다면 이는 스스로 교권을 경시 여기는 태도라고 할 것입니다. 교권침해 해결은 피해 교원을 보호하기 위한 인적·물적 인프라 구축이라고 봅니다. 관계기관은 대책에 포함된 교육법률지원단 등 지원시스템을 실효적으로 강화해 교원에 대한 직접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학폭법으로는 교권침해 사안을 학교폭력 문제로 다룰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교권침해는 학교폭력과 함께 해결해야 할 중요한 학교 내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권침해는 ‘교원지위향상을 위한 특별법’ 등 별도의 법령을 통해 보호해야 한다고 봅니다.
‘제재’ 강조에서 ‘회복적 생활지도’로 전환해야 할 시점
교권침해 학생부기재 의견 분분…별도 법 조속 마련을
서=교사를 위한 지원 쪽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는데요. 이 선생님, 생활지도부장으로서 학폭 사안을 처리하시면서 가장 힘든 부분 또는 고민은 무엇인지요.
이=가해학생과 학부모가 전혀 잘못을 인정하지 않거나, 피해학생이 폭력을 당하고 대응 차원에서 욕을 했을 때 가해학생·학부모가 쌍방 폭력행위로 처리를 요구하는 경우 무척 어렵습니다. 법률지원이 필요합니다. 또 학폭법에 의하면 폭대위 위원 중 학부모 위원이 과반수를 넘어야 하는데 문제가 많습니다. 학부모 위원은 참석이 어렵고, 가·피해자 학부모와 한 동네 주민인 이유로 올바른 의견을 제시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학부모 위원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학교도 있는데 이 경우 무조건 강력한 조치를 주장하는 부작용도 있습니다. 또 학부모 위원의 비중이 높다 보니 교사 위원은 참석할 수 없는 단점이 있습니다. 학부모 3명, 외부 3명, 교원 3명 정도가 적당합니다. 아울러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학부모 교육을 성교육처럼 직장 내 교육으로 의무화하는 방안도 추진돼야 한다고 봅니다.
한=학교폭력 종단연구를 위한 현장 방문인터뷰 결과, 학교는 지금 학교폭력과 관련된 여러 민원들로 과부하 상태입니다. 학교폭력 관련 업무를 줄이기 위해 전문적 지원기관이 필요하다고 판단됩니다. 예컨대, 법적 부분이나 분쟁조정과정에 적어도 교육지원청 수준에서 학교를 지원할 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봅니다.
정=이 선생님 지적처럼 학교마다 다른 잣대와 분위기로 인해 폭대위 결과가 다르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폭대위 사례가 쌓이고, 교과부 가이드라인이 내려간다면 비슷한 수준의 결정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봅니다. 학부모 위원 과반수 문제는 지적이 많아 법 개정이 곧 될 것으로 보입니다.
홍=위원은 교사가 중심이 되고 학부모위원이나 외부 전문가위원은 교사들 사이의 담합을 감시함으로써 투명하고 공정한 운영을 담보하는 수준에서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서=마지막으로 제언하실 부분이나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홍=진정 필요한 것은 가해학생에게 자기 행위가 다른 사람의 삶에 미치는 결과를 이해하고 자신의 행위 자체 및 피해자를 대면할 기회를 갖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재 중심의 대응은 단기적 효과에 그치며, 이를 넘어 회복적 생활지도로 가려면 교사들에게 학생생활지도에 집중할 수 있는 권한을 실질적으로 줘야 합니다. 생활지도의 핵심이 담임제도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권한부여와 함께 인센티브가 필요합니다. 수업시수를 줄이고 대신 생활지도 시수를 확보해줘야 합니다.
임=개념 재정립도 필요합니다. 학폭법 제2조는 ‘학교 내외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사고를 학교폭력이라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폭력의 범위를 너무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학교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학생 간 폭력사건은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학폭법에 연령 특성을 고려한 단계별 적용이 필요합니다. 초1학생과 고3학생의 친구 폭행을 동일하게 판단한다면 범죄의식 인식 정도, 상황 판단, 동기 등을 볼 때 타당성이 결여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체·정신적으로 12년의 차이가 있는 성장기 학생의 행위를 동일한 의미로 해석하고 법률을 적용해 학교현장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정=대부분 연구에서 방관자 역할을 하던 아이들이 피해자 편에 설 때 학교폭력은 사라집니다.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죠. 학교폭력에도 공소시효를 규정하고 분쟁조정이 소송보다 신속히 처리돼 해결될 수 있도록 독립된 분쟁조정기관을 설립해야 합니다. 아울러 동일한 사건에 대해 가·피해학생의 재심이 각각 다른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일원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학교폭력을 유형별로 분리해 경찰 등 전문가가 해결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학교폭력의 유형을 잘 분리해 즉각 조치되도록 관리해주고, 사후조치는 학교 모든 구성원이 함께 해결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부처 간 혹은 정부와 여러 사회기관(NGO, 연구기관 등)들이 협력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합니다. 즉, 현재 교과부와 경찰청 혹은 교과부와 법무부가 협력해 진행되고 있는 스쿨폴리스제도나 학생자치법정과 같은 사업들이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확산돼야 합니다. 또 긍정적 ‘학교문화’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서=현장에 어려움이 많지만 학교폭력 해결의 열쇠는 여전히 교사가 쥐고 있다는 결론을 주셨습니다. 정책의 지속적 시행을 위해 가정·학교·사회·정부 모두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실천하는 한 해를 만들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