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다음날인 13일. 수능 과목별 정답지와 가채점 통계표를 들고 교실로 올라갔다. 우선 가채점 통계표를 한 장씩 나눠주며 어제 본 시험 점수를 적어내라고 주문했다. 아이들 대부분이 예비소집 일에 미리 나눠준 정답 이기용 스티커에 정답을 적어와 채점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여기저기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끓는물수능’에 허탈감 빠진 교실
채점을 시작한 지 이 십여 분이 지났을까. 한 아이가 벌떡 일어나 울면서 교실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그 이유를 물어볼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책상 위 구겨진 수험표를 본 순간 그 이유를 대충 가늠할 수 있었다. 평소 모의고사 성적이 최상위권이었던 터라 주목받는 아이였다.
체육관 쪽 등나무 벤치에서 훌쩍거리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는 자신이 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나와 눈이 마주치는 것을 애써 피했다.
“수능 때문에 많이 속상하지? 최선을 다했는데.” “…….”
“가채점이니까 지금 점수에 너무 속상해하지 마. 결과는 나와 봐야지.” “선생님, 이번 수능 잘못된 거 아녜요? 분명 쉬울 거라고 했는데….”
아이는 시험이 어렵게 출제된 것에 화가 많이 난 듯했다. 그리고 이제 갈 대학이 없다며 마치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속에 있던 이야기를 토로했다. 특히 1교시 국어 시험을 보고 난 뒤의 심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전혀 알 수 없는 지문을 읽고 문제를 푸는 데 시간을 낭비해 결국 몇 문제는 찍었다고 했다. 그리고 1교시 국어시험의 여파가 2교시까지 영향을 미쳐 결국 수학시험까지 망쳤다며 하소연했다.
3학년에 올라와 매번 모의고사에서 줄곧 100점을 맞아 자신만만했던 3교시 영어시험도 단락 속에 몇 개의 어려운 어휘 때문에 해석이 모호해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다. 쉬운 수능이 올해도 이어질 것이라는 발표를 믿은 게 후회스럽다고 했다.
1교시 국어 시험 후, 수능출제위원장이 기자회견에서 작년 수준과 비슷하게 출제했다고 말한 것과 수험생이 직접 느낀 체감 온도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특히 1교시 국어시험이 끝난 뒤, 시험이 너무 어려워 맨붕 상태로 시험을 치렀다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론과 실제가 너무 다른 출제위원장의 말을 다시금 곱씹어 봤다.
입시전형, 기말고사 끝까지 최선 다하길
가채점 결과, 지난 6월, 9월에 치른 모의고사와 비교해 성적(총점기준)이 오른 아이는 고작 5명뿐이었다. 대부분 과목에서 성적이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어떤 아이는 무려 총점이 50점 떨어졌다며 울먹였다. 심지어 수시모집 1단계에 합격한 아이 중 일부가 최저학력을 맞추지 못해 다음 주에 시행되는 대학 면접을 아예 포기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직 확실한 점수가 나오지 않았는데도 이 아이를 비롯해 학급별 상위권 학생 중 일부 아이들이 성적이 잘 나오지 않자 아예 정시를 포기하고 부모님과 상의해 일찌감치 재수학원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단 한 번의 실패로 아이들이 일 년 동안 다시 입시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생각에 왠지 모를 씁쓸함이 마음을 눌렀다.
앞으로 수능 성적 발표일(12월 2일)까지 십 여일이 남았다. 정확하지도 않은 가채점 결과에 너무 주눅들지 말고 수능 후유증에서 빨리 벗어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번 주부터 시작되는 기말고사 포기하지 말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주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