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무덤, 김구 선생 침대…“아픈 역사 가슴에 되새겨”

2016.01.28 21:22:16

교총 중국·일본 동계연수 후기


교총이 동계방학을 맞아 교원들의 해외 문화 체험을 위해 중국·일본 전세기 해외연수를 실시했다. 류충성 광주 문성중 교장은 19~22일 일본 오사카, 교토 등에서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 아픈 역사를 느꼈다. 이에 앞서 박명규 경남 경해여고 교사는 8~11일 김구 선생 피난처 등 독립운동 현장을 돌아봤다. 우리 역사의 흔적을 생생히 체험한 이들의 후기를 요약해 담았다.

◆일본= 일본의 왜곡된 역사의식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가 일본에 와서 돈을 쓰는 것은 모순일까? 그러나 현장에서 일본을 정확히 바라보고 이를 우리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벌써 세 번째 방문 길이다.

이번 연수에서 다시금 확인했지만 일본의 고대사에서 한반도의 영향은 심대했다.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수한 왕인박사, 일본 최초의 절인 아스카 사와 최초 관립 사찰인 사천왕사의 건립에 기여한 백제 기술사, 고구려 고분과 유사한 다카마츠 고분 등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조선인을 죽이고 신체의 일부를 모아 만든 ‘귀 무덤’과 일제 강점기를 저항했던 윤동주 시비도 찾았다. 가슴 아픈 역사를 온몸으로 견디고 저항해야 했던 이들. 처절하게 싸웠지만 결국은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죽어간 수많은 영혼들의 원한이 지금도 구석구석 스며있는 듯했다.

이번 여행은 나를 겸허하게도 만들었다. 교토의 혼노지 귀퉁이에서 오타 노부나가의 사당을 찾았을 때가 그랬다. 일본의 전국시대 말, 권력의 최정상에 오른 오타 노부나가는 부하의 배신으로 이곳 혼노지에서 불에 타 죽는다. 시신이 없기 때문에 무덤도 없다. 조그만 사당이 최고 권력자의 마지막을 나타내는 무덤인 셈이다. 새삼 권력의 무상함과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게 했다. 1995년 1월 17일 고베 대지진을 주제로 한 ‘사람과 방재 미래센터’를 찾았을 때도 같은 느낌이었다. 6400여 명의 인명을 앗아간 대재앙에 맞서 인간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새삼 변화무상한 자연 앞에서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한없이 미약한 나 자신을 발견하고 더욱 겸허해지게 됐다.

◆중국= 1시간 30분의 비행을 거쳐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가흥. 바로 김구 선생이 신변의 위협을 받고 3년간 피신해 있던 곳이다. 당시 상해 법과대학 총장이었던 저보성의 도움으로 저씨 일가가 운영하는 종이공장인 수륜사창에 머물게 된 것이다. 김구 선생은 2층 침실을 사용했는데 침대 옆에 비상 탈출구를 만들어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면 배를 타고 호수로 피신하곤 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다시 또다른 피난처인 해염 지역의 재청별서도 방문했다. 일제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 독립을 위해 잠 한번 편히 자지 못했을 김구 선생의 흔적들을 보니 조국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게 됐다.

상해 임시정부 청사도 찾았다. 독립 투사들의 애환과 비장한 애국 정신이 서린 곳이지만, 그 이름이 주는 무게감과는 달리 규모가 협소하고 초라한 3층짜리 빨간 벽돌 건물이었다. 화려한 도심의 뒷골목에 위치한 낡고 허름한 건물이 안타까워 보였다. 건물은 그대로 보존하되 이 일대에 기념관을 만들어 우리의 독립 정신을 되새길 수 있었으면 하고 기대해 본다.
박명규 교사, 류충성 교장 ymy@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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