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순간도 선생님을 잊지 못합니다

2016.09.22 20:02:20

교육부 ‘내 마음의 선생님’ 공모
대상 2편, 입상 8편 최종 선정


‘(전략)…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선생님들의 구두를 닦게 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모든 선생님들이 거절했고 그동안 고생했다며 한 명씩 소년을 안아줬습니다. 소년은 선생님들의 책상에 캔 커피를 하나씩 올려두고 교무실 바닥에 큰절을 하고는 일어나지 못한 채 엎드려 한참동안을 서럽게 펑펑 울었습니다. 선생님은 대성통곡하는 소년을 눈물 가득한 얼굴로 일으켜 세웠고 힘껏 껴안아 줬습니다. 교대를 졸업하고 선생님이 되면 나보다 더 훌륭하고 언제나 아이들 편에 서는 올바르고 정의로운 선생님이 되어 있으라고….(후략)’ <‘구두닦이 소년의 꿈’ 중에서>

박순걸 경남 송진초 교감은 26년 전 고등학교 졸업식만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앞을 가린다. 절벽 끝에 주저앉아있던 가난한 소년을 일으켜 세우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한 스승이 기억 속에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그 때는 잘 몰랐습니다. 제게 선생님이 얼마나 큰 선물이었는지….”

그 시절 그 소년은 이제 23년차 교사로 장성했다. 스승을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할 때,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 놓인 아이들을 가르칠 때 스승의 깊은 사랑을 다시금 깨닫는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학업도 포기할 뻔 했던 소년을 교사의 길로 이끈 건 스승 오재석 경남 창원고 교사다.

박 교감은 최근 교육부가 주최한 ‘내 마음의 선생님 공모대회’에서 ‘구두닦이 소년의 꿈’으로 대상을 받았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선생님을 잊은 적 없다”며 “선생님이 베푼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고 싶은 마음에 수기 공모대회에 참가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부도로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수업료를 내지 못해 자퇴 위기에 내몰릴 정도였다. 그런 그에게 오 교사는 손을 내밀었다. 교무실 복도 구석에 자리를 마련하고 점심시간과 청소시간에 교사들의 구두를 닦게 했다. 그리고 학비와 한 달 생활비로 쓸 수 있는 돈을 근로 장학금 명목으로 건넸다.

차가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구두를 닦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친구·선·후배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가난이 주는 설움은 견디기 힘들었다. 몇 번이고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 때마다 스승은 가난은 죄가 아니라고, 더 당당해져야 한다고, 포기하지 말고 삶을 가꾸라고 설득했다.

박 교감은 “빠뜨린 선생님이 있을까봐 늘 시간에 쫓겼지만, 공부하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할 수 있다는 사실에 행복을 느꼈다”며 “졸업할 때쯤에는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을 갖게 돼 선생님들의 사랑과 인기를 얻었다”고 웃었다.

최근 그는 스승과 방송 촬영을 하면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눴다.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됐다. 당시 교사들이 왜 교탁 바로 앞자리를 내어줬는지,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친구가 왜 짝꿍이 됐는지, 그 친구가 왜 도시락을 건넸는지…. 28년 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궁금증의 실마리는 결국 스승에게 있었다.

“얼마 전에서야 알게 됐습니다. 제게 이 모든 일이 일어났던 건 선생님 덕분이었다는 사실을요. 바닥을 치던 성적이 상위권으로 올라갈 수 있었던 이유도요. 선생님께 ‘왜 하필 구두 닦는 일이었는지’ 여쭸습니다. 학교에 구두닦이가 오는 걸 보고 ‘돈이 되겠다’고 생각하셨다더군요. 선생님이 주셨던 근로 장학금은 구두를 닦은 동료 선생님들에게 받은 수고비였다는 걸… 28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알게 됐습니다.”

박 교감은 스승이 보여준 헌신과 사랑에 보답하는 길은 사회에 보탬이 되는 아이들을 길러내는 일뿐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자신처럼 어려운 환경에 놓인 아이들 편에서, 사랑이 고픈 아이들에게 사랑을 채워주는 스승이 되겠다, 다짐한다. 그는 “‘늘 내리사랑을 생각하라’던 선생님의 말씀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나의 선생님, 나의 선생님,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내 마음의 선생님 공모대회’는 스승 존경 문화를 확산하고 교원의 자긍심 함양과 사기 진작을 위해 마련됐다. 총 585편이 접수된 가운데 최종 10편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구두닦이 소년의 꿈’과 ‘아버지와 같고 형님과도 같은 나의 선생님’ 등 2편이 대상을 수상했고, △신기한 인연 △그래도 공부는 해야지 △인연 △들국화의 행진처럼 살거라 △구피, 꿈을 이루다 △구구구 모임을 아시나요 △잊을 수 없는 스승님께 △못난 제자는 선생님 덕분에 교단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등 8편이 입상작으로 선정됐다.

이들의 사연은 내 마음의 선생님 3부작 특집 프로그램으로 제작돼 KBS 1TV에서 방영됐다. KBS 홈페이지에서 다시보기 서비스를 통해 시청할 수 있다.
김명교 기자 kmg8585@kft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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