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 출근을 하니 책상 위에 편지 한 통이 놓여있었다. 그런데 봉투 위에 적혀진 발신인의 이름이 낯설었다. 혹시라도 졸업을 한 지 오래되어 잊혀진 제자의 이름이 아닐까 싶어 지나간 교무 수첩 모두를 꺼내 확인해 보았으나 동명이인(同名異人)의 이름이 없었다.
조심스레 편지 봉투를 뜯어보니 'OOO 선생님께'라는 글씨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지난 학부모회의에 참석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을 편지 첫 구절에 써 놓은 것으로 보아 우리 반 모 학부모가 쓴 편지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문득 지난주에 있었던 일이 떠올려졌다. 학부모회의 일주일전부터 학생들에게 조.종례시간에 빠뜨리지 않고 한 말이 있었다.
"새 학기 처음 실시하는 학부모 회의에 많은 부모님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하자."
그런데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말없이 고개를 떨구던 한 여학생이 있었다. 오늘 그 여학생의 어머니로부터 편지를 받고 나서야 비로소 그 여학생의 얼굴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가 나로 인해 생긴 것이라 생각하니 왠지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 물론 부모님이 참석할 수 있는 학생은 담임선생님인 내 말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되어질 수 있으나 그렇지 못한 학생에게는 상당한 부담감으로 받아들여졌으리라 본다. 새삼스레 학부모회의를 지나치게 강조한 내 자신이 머쓱해지기까지 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편지지 네 장 분량 가득히 채워진 내용들이었다. 그렇게 잘 쓴 글씨체는 아니었지만 글자 하나 하나에 정성이 들어가 있었다. 편지에서 그 어머니는 학부모회의 에 참석하지 못한 이유와 가정환경 및 자녀에 대한 교육적인 가치관 등의 이야기를 자세하게 써놓았다.
"OOO 선생님께
우선 지난번 학부모 회의에 참석하지 못해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선생님 반의 OOO의 엄마입니다. 제 여식으로부터 선생님의 얘기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 한번 찾아뵙는다고 하는 것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혼자서 벌어 생계를 꾸려나간다고 하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군요. 제가 지면으로 펜을 든 이유는 여식에 대한 제 마음을 담임선생님께 전하려고 합니다. 막상 고3이 되니 제 여식도 걱정이 많이 되는가 봅니다. 우리 모녀는 매일 자기 전에 누워서 그 날 있었던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누곤 한답니다. 요즘 들어 진로에 대해서 신경이 예민해진 딸을 보며 안쓰러워 가슴을 쓸어 내린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집안 형편 때문에 진학을 포기하려는 딸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자신의 무지함으로 인해 여식을 희생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쪼록 제 여식이 대학을 포기하지 않도록 담임선생님의 좋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저희 반 모든 아이들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끝으로 선생님의 가정에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2005. 4월 어느 날
OO이 엄마 드림"
편지를 읽고 난 뒤, 자식에 대한 한 어머니의 따스한 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한편으로 두 모녀가 침대에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그려보며 입가에 미소를 지어보기도 하였다. 특히 어머니로서 배우지 못한 한을 자식에게 물러주고 싶지 않다는 말은 왠지 눈시울을 뜨겁게 하였다. 그리고 어머니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