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초등학교 교감의 항변

2005.05.11 18:00:00

광역시만을 제외하고 邑(읍), 島嶼(섬), 僻地(벽지), 市(시), 서울특별시까지 35년을 교단에서 근무해오다가 36년째인 올해 처음으로 교감으로 승진한 초등학교 교감이다. 몇 년 전부터 스승의 날이 있는 5월이 되면 촌지에 대한 참담한 기분에서 벗어나 싱싱한 푸르름으로 변한 아름다운 산야의 자연을 벗 삼아 여행이라도 갈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 보지만 그것은 생각 뿐이며 또 잔인한 5월은 시작되었다.

얼마전에 부패방지위원회에서 교육청을 통하여 보낸 촌지수수 금지라는 공문 한 장이 반평생의 교직에 대한 자괴감을 느끼게 한다. 공문의 내용은 해마다 연례행사와 같은 '촌지수수 금지'인데 학부모에게 촌지를 주지 말라는 가정통신문을 보내고 그 발송 여부를 확인 하겠다는 것이며 교사들에게도 주지도 않을 촌지를 받지 않겠다는 교육을 시키라는 내용이다.

또한 단속반을 학교에 잠복시켜(학교내에 근무하는 교사 모두는 촌지수수를 할 수 있는 용의자이기 때문에) 암행단속을 펴서 촌지수수를 적발하겠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으며 부패방지위원회에서 작년에 교사들의 촌지수수의 사례를 분석해 보니 촌지 내용은 현금, 양주, 보약, 귀금속 등이 있었으며 수수장소, 수수시간 등에 대하여도 큰 사건의 전모를 발표하 듯이 자세하게 발표하였고 언론들도 이런 발표를 자귀하나 틀리지 않게 앞다투어 보도하였다.

그러나 정작 이런 발표나 보도들이 40만 교원 대다수의 근무 의욕을 상실시키고 사명감에 불타는 교사들에게 교직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우리 국민들중에 알고 있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 것인가 우려될 뿐이다. 언론 또한 이러한 보도를 거리낌 없이 경쟁적으로 보도하는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술이라도 한잔 먹고 취해서 고래고래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마음이다.

교육부도 정말 얄밉다. 우리 교사들의 방패막이가 되어 주어야 할 교육부는 그런일에 오히려 맞장구나 치며 팔장 끼고 강 건너 불구경이나 하고 있으니 이래저래 속상하는 사람을 교사들이며 우리 사랑스런 아이들에게는 정말 미안한 생각이지만 아름다운 5월이 달력에서 없어져 버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그 공문이 처리를 놓고 내 개인의 생각으로는 그 공문을 못본 것으로 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교장님과 상의하여 역설적일지도 모르지만 어쩔 수없이 '우리 교사들은 사명감도 없고 오로지 촌지나 밝히는 그런 교사들이니 학부모님들은 절대로 촌지를 주셔셔는 안됩니다'라는 내용의 가정통신문을 발송했다.

그런데 우려되는 일은 만약 아이들이 그 가정통신문을 읽어 보고 '아 그랬구나.... 우리 부모님은 선생님께 가끔 촌지를 보내고 있으며 우리 선생님은 부모님이 보낸 촌지를 가끔 받으셨구나...'라고 생각할 것 같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또 하나 너무 속이 상한 것은 우리 교사들은 정말 힘없는 집단이라는 사실이다. 즉, 정부나 부패방지위원회가 학교의 수장인 학교장에게 '우리 선생님들은 촌지를 받을 수도 있는 용의자이기 때문에 절대로 촌지를 보내지 마라'고 모든 교사들을 준범법자 취급을 하여 강제로 가정 통신문을 보내게 강요했어도 우리들은 그들을 상대로 명예훼손죄로 고발도 못하지 않는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매달고 오라고 죽을지도 모르는 곳으로 몰아내는 힘 있는 기관들의 횡포는 누가 말려 줄 것인가. 초등학교 교사들에게 어린이들의 일기장을 검사하지 말라고 권고하는 인권위에 진정이라도 해보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보지만 교사들이 정말 힘없는 집단이라는 사실이 실감이 난다.

어떤 책에서 읽은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사람은 누구나 앞뒤에 하나씩 두개의 자루를 메고 다니는데 앞의 자루는 남의 허물과 잘못을 모아 담는 자루이며 뒤의 자루는 자기의 허물과 잘못을 주워 담는데 뒤의 자루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앞에 있는 자루에만 남의 허물과 잘못을 잔뜩 담아 넣는데 이상한 것은 앞에 있는 자루에 그렇게 가득 집어넣어도 절대로 앞으로 넘어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정답은 뒤에 있는 자루는 언제나 자기의 허물과 잘못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예화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해주게 한다. 사명감으로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대다수 교사들을 촌지나 받는 그런 집단으로 몰고 가는 고위 공직자들은 어떤가? 주민등록을 옮겨 땅 투기 한사람은 없으며 직위를 이용하여 주식에 투자하여 큰 돈을 모은 사람은 없는가? 또한 국민의 혈세인 수십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수조원의 국가 재정을 축내는 그들에게 말 한마디 한 적이 있는가? 합법을 빌미로 수억원의 뇌물을 받고도 오히려 큰소리치는 정치인은 어떤가"

교사들에게 사표(師表)로 향하는 길은 만들어 주지도 않으면서 그 길을 조금만 잘못가면 혼이 나갈 정도로 야단만 치는 우리의 세태속에서 '교육이 국가의 백년대계'라는 말의 참 뜻을 찾을 날이 과연 있을 것인가 의구심이 든다.
위동환 서울금양초등학교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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