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생각나는 일

2005.05.18 08:33:00

올해도 어김없이 스승의 날이 다가온다.

이틀 전 스승의 날에 즈음한 가정통신문이 나갔다. 스승의 날에 일체의 촌지나 선물을 받지 않겠다는 학교 측의 단호한 의지를 담아서 보낸 글이었다.

왜 이래야만 할까?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수년 전부터 이와 같은 가정통신문이 나가고 있다. 학교측에서 공식적으로 가정통신문이 나가지 않을 때는 알림장에 색종이로 만든 꽃 외에는 일체의 선물을 받지 않겠다고 적어보내긴 했었다. 또 홈페이지를 통해서 역시 이와 같은 나의 의지를 담은 글을 올리며 스승의 날을 맞아 교사란 직책에 대해 돌이켜 보는 글도 아울러 올리기도 하였다.

스승의 날이 돌아오면 텔레비전 프로그램이나 신문기사는 교사의 사기를 진작시키거나 권위를 지켜주는 내용보다는 오히려 교사의 부정적인 측면을 드러내는 경우가 다소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런 경우 교사로서의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있다. 교사의 양심을 지키고 교육의 일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교사들의 마음은 과연 어떠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는 스승의 날이 돌아오면 잊혀지지 않는 일이 하나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20년 전 스승의 날이다. 교사경력 5년째인 당시 6학년 담임을 하고 있었다. 스승의 날인 만큼 교사로서의 각오를 새로이 다지고자 평소보다 일찍 출근을 하였는데 y에게 또 지고 말았다. y는 버스가 하루에 두 번 밖에 다니지 않는 동네에 살았는데 학교는 언제나 1등으로 왔었다. 3월초부터 그 당시까지 형에게 물려받은 듯한 낡은 감색 잠바만 매일 입고 다니고 도시락도 가끔 싸오지 않으며 걸어서 그 먼 거리를 통학하고 있는 걸 보면 집이 매우 어려운 아이인 듯했다.

“y왔구나! 오늘만은 선생님이 y보다 일찍 오고 싶었는데...” 하고 교실에 들어서서 책상을 보니 공책을 한 장 찢어서 무엇을 싼 것이 책상위에 놓여 있었다. 포장지 앞에는, “선생님, 고맙습니다.”라고 쓴 글씨가 보였다. 바로 y가 스승의 날에 준비한 선물이었다.

‘가슴이 뭉클하였다’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었다. y는 얼굴을 책상에 파묻고 나를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y야, 고마워.”라고 하며 조심스럽게 선물포장을 열었다. 쵸컬릿이었다. 쵸컬릿을 싼 포장지 앞에 100원이라고 하얗게 씌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y야, 고마워. y가 선생님이 정말 좋아하는 것을 선물했구나!”하며 꼭 안아주니 어쩔 줄 모른다. “선생님, 쪼끄만 건데...” 나는 이 감격을 즉시 써서 K신문사에 보내었고 ‘쵸컬릿 하나의 정성’이라는 제목으로 교단수기 코너에 실렸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신문을 본 어느 여회사원이 y에게 큰 선물박스를 하나 보내온 것이었다. 정성껏 쓴 편지에는 그렇게 착한 어린이에게 이 선물을 주고 싶다는 내용과 함께 y가 오랜 기간 쓸 수 있는 온갖 학용품들이 가득 들어있는 선물 상자였다. 며칠 뒤에 어느 분에게서 또 연락이 왔다. y가 있는 동네에 대해서와 그 지역 교통상황을 자세히 물어보셨다. 아마 교통과 관계있는 곳에서 근무하시는 분이셨던가 보다. 얼마 뒤 버스가 다니는 횟수가 늘었다고 들었다. 또 며칠 뒤 서울에 있는 어느 6학년 초등학생 여자 어린이가 y와 펜팔을 하고 싶다고 하며 편지와 함께 선물을 보내왔다.

y의 얼굴은 전보다 훨씬 밝아졌고 학교생활도 활기찼다. 친구들과 공을 차며 소리 없이 미소만 짓던 y였는데 그 후로 제법 웃는 소리도 들렸다. 나도 y를 볼 때마다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20여년이 흘렀지만 스승의 날만 돌아오면 그 때 그 일이 잊혀지지 않으며 지금 이 순간 역시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다.
이은실 가능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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