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쓰는 편지>어머니, 이제 환하게 웃어보세요.

2005.06.26 21:12:00

어머니, 이제 환하게 웃어보세요.

요즘 들어 화장실에 오래 앉아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걱정이 되어 병원에 다녀온 지 며칠이 지났습니다. 병원에서 어머님이 변비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자식들이 모르고 있었느냐며 호된 꾸지람을 하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변비 원인이 음식을 씹지 않고 그냥 넘겨 그렇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 자식이 아프면 모든 일을 제쳐두고 병원으로 데려갔던 제가 당신이 아프다고 했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집에 있는 상비약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지난 일들이 후회가 됩니다.

이제야 생각해보니 최근 식사를 하던 중 자주 화장실로 달려가곤 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처음에는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 싶어 소화제 몇 알을 갖다 주었더니 ‘당신 병은 당신이 안다ꡑ라며 극구 사양하셨지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머니는 입안에서 덜커덩거리는 틀니를 자식 앞에서 내뱉지 못하시고 화장실로 달려가신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힘들어하는 자식에게 부담감을 줄까 닳아서 십 년 이상이 된 틀니를 잇몸에 걸치고만 계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밥을 씹지도 않으시고 그냥 삼키기만 하셨습니다. 예전에 비해 말씀이 적으신 이유 또한 틀니가 자꾸 빠져 말이 새는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 그러셨던 것이었군요. 죄송한 말씀이오나 아내와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이상한 생각까지 하였습니다.

요즘 들어 당신의 그 구부정한 허리가 더 휘어 보입니다. 지금까지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으셨던 당신이었습니다. 가난은 죄가 아니라며 남들 앞에서 당당하게 행동하라고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던 어머니께서 왜 자식들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이십니까? 어떤 때는 그런 모습에 화가나 짜증을 내면 어머니는 지긋이 미소만 지으셨습니다. 이제야 그 미소의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문득 어릴 때의 일이 생각나는군요. 제 나이 사십이 넘은 지금 생각해도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보다 좋지 않은 기억이 더 마음속에 남아 있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가 봅니다. 아버지의 잦은 외도(外道)로 어머니의 마음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요. 그런 모습에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를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를 이해시키려고 안간힘을 쓰시던 어머니가 오히려 미운 적도 있었습니다.

특히 매일 반복되는 아버지의 주사(酒邪)는 늘 어머니의 구타로 이어졌지요. 몇 년 전 평소 건강하셨던 어머니께서 중풍으로 쓰러져 수족(手足)을 잘 못 쓰시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감히 해 봅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장애 3급 판정을 받던 날, 우리 가족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마치 아무런 일이 없다는 듯 출근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에 우리 자식들은 욕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우리를 더 꾸짖었습니다.

"너희는 아버지를 원망해서는 안 된다. 그래도 너희들의 아버지가 아니시니?"

지금까지 저는 어머니의 눈물을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신용불량자로 지명수배를 받던 형님이 경찰서에 잡혀 들어간 날, 잠자는 나의 머리맡에서 어머니는 울고 계셨습니다. 혹시라도 내가 잠에서 깰 까 당신의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는 모습에 돌아누워 제 자신도 울고 말았습니다. 이제 당신의 눈물 조금 이해할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그 많은 눈물을 자식 앞에서 감추고 계셨습니다. 무엇보다 자식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거리 행상에서부터 식당 일까지 당신의 손금이 닳을 때까지 온갖 고생을 다하신 어머니.

다음 날, 자식이 준 용돈 전부를 내놓으시면서 형님을 꼭 구해내야 한다며 애원하셨습니다. 왜 어머니께서는 당신의 건강은 돌보시지 않고 평생 아버지와 자식을 위해 희생만 하려고 하십니까.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을 제가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제 어머니는 그 희생에 대한 대가를 받으셔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고희(古稀)가 넘은 당신의 얼굴 위에 핀 검붉은 저승꽃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아픕니다. 세월 앞에서는 당신도 어쩔 수가 없는가 봅니다. 지금까지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다 갚을 수 있겠습니까마는 어머니의 여생(餘生) 동안 못 다한 효도를 다하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머님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야 합니다.

식사시간, 늘 자식의 눈치를 살피며 식사를 하셨던 어머니이셨습니다. 그리고 자식에게 누(累)가 되는 일은 추호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무엇하나 제대로 해드린 것이 없기에 어머니 앞에만 서면 마음이 작아지나 봅니다. 틀니 값이 얼마인지는 잘 모르지만 적금을 해약해서라도 틀니를 해드릴까 합니다. 매번 자식에게 양보만 해 오신 어머니이셨기에 이번에도 고집을 부릴까 걱정이 됩니다.

아무쪼록 이번만은 자식의 뜻대로 따라와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틀니를 하고 환하게 웃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저희에게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주신 어머니께서 건강하셔야만 이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는데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형님을 비롯한 자식들 모두가 이를 악물고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저희는 어머니의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끝으로 저는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어머니,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김환희 강릉문성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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