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맛이다'

2005.07.03 15:05:00

‘밥맛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이나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얼마나 밥이 맛이 없으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나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과 같은 의미로 쓰겠는가! 사람이 사는데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 ‘밥’이라고 생각하는 내겐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밥보다 더 좋은 먹거리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잦은 외식으로 화학조미료 맛에 길들여져 있다. 밥보다는 불고기, 삼겹살, 해물탕, 생선회 등 다양한 음식을 자주 먹게 되었다. 라면, 피자. 햄버거 등의 패스트푸드를 즐겨먹는 신세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배가 고파본 적이 없던 이런 사람들에게 밥 냄새나 밥맛은 고리타분하고 역겨울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다닐 때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을 살며시 놓아두고 그냥 가서, 점심을 굶고 허기져 녹초가 되곤 했다. 알루미늄 도시락 뚜껑을 살짝 열어보고 보리가 쌀보다 훨씬 많을 때면 으레 도시락을 가지고 가지 않았다. 보리밥은 맛이 없기도 했지만 친구들 보기에 창피하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그때 흰 쌀밥을 먹는 것은 세상의 무엇보다 큰 즐거움이고 큰 행복이었다. 하얀 김이 피어오르고 구수한 밥 냄새가 식욕를 자극하는 쌀밥이야말로 어릴 적 꿈이었고 희망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하루 세 번 밥을 먹지 않으면 아무리 배가 불러도 허전하기만 하다.

고등학생 때였다. 꽤나 잘사는 친구 집에 갔다. 친구네 식구들과 함께 밥을 먹게 됐다. 밥그릇이 유난히 적었다. 그 정도 크기면 보통 밥그릇 1/3 정도 밖에 안 될 것 같았다. 한 그릇을 후다닥 먹었다. 먹었지만 양이 차지 않았다. 밥 욕심은 채워지지 않았는데 손님 체면에 더 먹는다고 할 수가 없었다. “잘 먹었습니다” 하며 아쉬움을 간직한 채 밥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용기 없는 내 자신을 원망하면서 배고픈 하루를 보냈었다.

이제 50이 훌쩍 넘은 내겐 아내와 두 아들이 있다. 네 식구가 먹는 식량의 절반 정도를 나 혼자서 소비한다고 한다. 이미 혈기 왕성한 청년인 아들들이지만 먹는 밥의 양은 유아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다. 별로 간식을 먹는 것 같지도 않은데도 밥에 대한 관심이 적은 걸 보면 밥 경시 풍조가 어쩔 수 없는 세태인 것 같다.

‘밥’맛이 ‘밥’맛다워 질 때 각종 성인병에 대한 우려가 줄어들고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나 ‘밥’냄새가 구수하고, 구미가 당기고, 군침이 돌고, 밥 한 그릇 '후다닥' 먹어 치울 때 자연스런 ‘웰빙’ 시대가 올 것 같다.
이학구 김제 부용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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