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지 않는 물

2005.07.14 13:30:00

작은 물보라를 이루면서 ‘졸졸’ 소리 내며 흐르는 시냇물, 그 깨끗한 물속에는 온갖 생명들이 활기찬 세상을 이룬다. 피라미, 송사리, 소금쟁이, 물장군 등이 수중 식물의 사이사이를 누비면서 바쁘게 움직인다. 바닥을 기는 다슬기의 느린 움직임이 대조적이지만 활기차고 생명력이 넘치는 생태계를 이룬다. 흐르는 물은 언제나 깨끗하고 발랄하고 생동감이 넘치는데….

“ 선생님, 이슬이 또 피나요.”
어느 날 점심 식사 후 보건실에서 소파에 몸을 기댄 채 동료들과 얘길 나누면서 여가를 보냈다. 3학년 이슬이가 친구의 도움을 받으면서 보건실에 온 것이다.

그런데, 옷에 밴 핏자국이 선홍빛이어야 할 텐데 검은 먹물을 묻혀 놓은 듯했다. 바지를 내리자 왼쪽 다리의 허벅지부터 종아리 발등까지 특히 옆 부분 쪽으로 검은 포도송이를 짓이겨 발라 놓은 것처럼 더덕더덕 까만 딱지 같은 핏줄이 피부 밖으로 돌출되어 있었다. 애들과 놀다가 조금만 스쳐도 그 핏줄에선 피가 나오곤 한단다. 그것도 검은 피가 …….

“지혈이 잘 안돼요.”
거즈로 상처 부위를 눌러 지혈을 시키면서 보건교사가 말했다. 어릴 때부터 시작 된 ‘딸기혈관종’이란다. 허벅지에서 발등까지 ‘하지정맥류’와 비슷하나 딸기 모양으로 핏줄이 피부 밖으로 나와 있고 부풀고 늘어져 쉽게 출혈되고, 지혈이 잘 되지 않아 바지가 흠뻑 젖곤 한단다. 또 그쪽 다리의 뼈가 이상 성장으로 양다리의 길이가 세월이 흐를수록 불균형이 된단다. 또 환부가 넓어지고 출혈이 더 잦아진단다. 발등은 부풀어서 온통 울퉁불퉁하다. 흐르지 않는 피가 머물러 있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전문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단다. 그때그때 응급처치만 받을 뿐이라고 한다. 언젠가 종아리 부분은 수술을 했지만 상태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고 한다. 핏줄이 늘어져 출혈이 심하게 되면 그때그때 응급처치로 수술을 해야 한단다.

간신히 지혈이 되어 바지를 입혔다. 상처는 바지 속에 감춰져 보이지 않았다. 여느 어린이와 다를 바 없다. 9살의 꼬마 소녀 이슬이, 얼굴은 귀엽고 예뻤고 천진스럽다. 맑은 눈동자 속에 깃든 슬픔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친구들과 마음껏 뛰놀고 싶은 소망이 언젠가는 이루어질 수 있을까? 검은 피가 아닌 빨간….

물보라를 일으키며 ‘졸졸졸’ 흐르는 생동감 넘치는 시냇물 같은 이슬이의 모습이 보고 싶다. 맑은 물 속에서 동식물의 활기찬 삶이 이루어지듯 이슬이의 건강한 몸이 예쁜 마음과 슬기로움을 담는 그릇이 되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이학구 김제 부용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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