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글 교육반 할머니들의 여름

2005.08.12 20:30:00


지난 6월21일 1학기 종강이 예정되어 있었지만 뒤늦게 ‘공부’에 재미를 붙이셨던 평생교육‘우리글교육반’ 할머니들 30명과 ‘수영반’ 할머니들 60명은 종강일을 미루자고 건의 하셨다. 이제 막 재미를 붙였는데 너무 아쉽다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2개 반에 한해서 1학기 교육일정을 3주간 연장하였다.

본교는 전북교육청지정 ‘평생교육 시범학교’로 지정되어 금년 4월부터 14개 취미활동교실을 개설 190여 명의 지역주민 및 학부모 대상으로 2년간의 평생교육 운영을 시작한 바 있다. 그 중에서 ‘우리글교육반’ 수강생은 60-80대의 할머니들로서 처음 13명으로 시작하였으나 우수한 교육내용(‘토속어’ 중심의 우리글 익히기 교재 - 전북교육청 제작)과 지도교사의 친절하고 성의 있는 태도가 소문나서 30명으로 대폭 늘었다.

‘거시기’ ‘하나씨’ ‘마누라’ ‘오라비’ 등 늘 써오던 토속어와 자신들의 ‘살아온 이야기’를 중심으로 엮어진 교육 내용은 한글 미해득자 교육 교과서로 많이 사용하던 초등학교 1학년 ‘국어’교과서 보다는 훨씬 친숙하고 흥미 있어 할머니들의 교육효과가 크다고 지도교사(김수진 30세)는 말했다.

처음에는 손자들 보기에 부끄럽다고 보이지 않는 검정 비닐봉지에 책을 넣고 다니고, 집에서는 ‘노래교실’에 다닌다고 하는 등 ‘우리글교육반’에 다닌다는 사실조차 감추려 했었다. 그러나 그 동안 평생 처음으로 경험하는 ‘교실생활’과 ‘재미있는 공부’ 덕분에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나’만 못 배운 줄 알았더니 ‘나’같은 할머니들이 그렇게도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자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용기를 얻게 되었고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는 것을 느끼게 되어 당당한 모습으로 1주일에 두 번씩 등교하였다.

초등학생 30명이 있는 교실도 좁다는 생각이 드는데 할머니들께서 30분이 계시니 냉방 시설이 잘 되지 않은 교실이 너무 덥고 답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작시간 보다 항상 일찍 등교하여 학생들의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숙제’이야기나 손자들에게 배웠던 이야기 등 학습에 높은 관심을 떠들썩하게 얘기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동안 글씨쓰기를 연습하셨던 86세의 할머니 공책을 보면 참으로 놀랄 만 하다. 반듯하고 힘이 넘치고 정성이 깃든 글자 한 자 한 자가 보는 이들 모두에게 감탄을 자아내곤 했다. 이제는 계시지 않는 ‘영감님’의 이름과 얼굴 모습을 그려보는 할머니들은 어려웠던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서 늦게나마 학교 공부를 하게 되어 다행이라고 말씀을 하시곤 했다.

아직은 생각만큼은 학습 성과가 크진 않지만 한 술 밥에 배부를 수는 없다. 동심으로 돌아가 순수한 웃음을 엮어내며 60분간 수업시간이 너무 짧다고 여기고 비뚤어지게 글자를 쓰시고도 ‘왜 잘 안 써진다냐 잉?’하며 너털웃음으로 대견해하시기도 아쉬워하시기도 하시면서 재미있게 공부하신다면 학습 성과는 크리라고 믿는다.

이제 할머니들은 동네에 들어오는 시내버스의 행선지 읽기, 전화기의 전화번호 등 쉬운 것은 알게 되었다. 자신들이 직접 쓴 편지를 아들딸이나 손자들이 읽게 될 날이 곧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들이 ‘우리글교육’을 받았던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날이 곧 올 것이다.

지난 8월 초 전북지방의 집중호우로 본교 학구 내 큰 저수지가 붕괴 직전이라고 대피까지 했었지만 다행이 큰 재난만은 면했다. 그러나 상당수의 할머니들의 가정에도 수해의 피해를 입으셨을 것이다. 집과 농경지 침수로 허탈해 하시는 할머니들이 계실 텐데 어떠한지 걱정이 된다.

9월 개학하는 날 모든 할머니들이 초등학생 같은 밝은 웃음으로 등교하시길 바란다.
이학구 김제 부용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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