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의 보람, 3배로 즐기기

2005.08.30 10:37:00

"선생님! 안녕하세요? 한00입니다."
"S대생 한00?"
"소식 늦게 드려 죄송합니다. 그 동안 군대에 다녀왔습니다."

넉넉치 않은 가정 환경을 딛고 시골 읍내에서 일류대학을 진학하여 고장의 자랑이었던 제자. 성우 뺨치는 멋진 목소리로 내 휴대폰을 두드리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영광중앙초등학교에서 6학년을 가르칠 때 유별난 추억을 남긴 제자였다. 지금 생각하면 30대 초반의 나는 무모하리만큼 파격적인 교육 방법이나 에피소드를 많이 남기며 6학년을 가르치던 정열이 되살아났다.

수학경시대회를 지도한답시고 하교시키지 않기, 수요일 오후까지 가르치기를 비롯해서 도난 사건이 발생하면 밤늦게까지 아이들을 보내지 않고 설득하고 회유하며 수사반장 노릇까지 하며 기어이 버릇을 고치곤 했었다.

40명 가까운 6학년 아이들과 사는 일은 공부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더 많았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들을 참 힘들게 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하나라도 더 가르칠 욕심에 점심 시간에 공부 가르치는 일은 다반사였고 쉬는 시간 잘라서 형성평가까지 보게 하는 못된 담임이었음을 후회한다.

그러기에 아이들과 즐거웠던 추억들이 별반 없다. 오히려 아픈 추억은 잊혀지지 않고 남아 있다. 가정 불화로 가출을 결심한 아이의 정보를 미리 알아내어 졸업을 시킬 때까지 마음 고생했던 일, 선생님 몰래 친구들에게 주먹을 일삼던 여학생을 몇 개월간 고쳐서 졸업하는 날 감사의 인사를 받았던 일 등. 아픈 추억만 생각난다.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려면 6학년을 많이 가르치는 일은 투자(?)라고 생각한다. 이왕에 마음 고생하고 힘든 교직에서 알곡을 마무리하는 단계인 6학년을 가르치는 보람은 가르쳐 본 사람만이 안다. 학습지도, 진로지도, 교우관계 지도, 중학교 입문지도 등 어느 것 하나라도 손이 빠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학년을 지도하는 게 더 쉽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인생의 한 단계를 마무리짓는 학년이므로 챙겨주어야 할 것이 더 많다는 이야기이다. 마음씀이 많은 만큼 수확의 기쁨도 넘치는 학년이 6학년이었다.

저학년은 가르치는 동안 참 예쁘다고 하는데 6학년을 가르치면서 예쁘다는 생각보다는 힘들다, 비뚤어지지 않게 지도할 아이들이 많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다. 세월이 흘러 제자들의 주례를 서주는 일에서부터 결혼식장에 초대 받는 일, 돌찬치에 가는 일, 군인 제자의 후가 방문, 진로 상담을 묻는 전화는 물론 결혼 문제로 인생 상담을 해오는 제자들을 보며 내 자리의 무게를 절감하게 된다.

졸업할 때 만들어 준 동창회를 꾸준히 가꾸어가는 제자들이 성년이 되어 한 자리에서 모일 때면 세대 차이를 의식하지 않고 만나는 재미까지 있으니 '사람을 기르는 아름다운 직업'임을 감사한다.

우리 한00 군은 두뇌가 우수함에도 학업에 욕심을 부리지 않아 입버릇처럼 내게 충고를 듣던 제자였다. 때로는 그 눈에서 눈물이 쏙 나오게 잔소리로 생각을 자극하곤 했었다.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네가 가진 재능은 우수한 두뇌이니 성공할 수 있는 길은 곧 공부하는 일이며 부지런해지는 일"이라고. 어쩌다 머리를 자르지 않고 오는 날은 긴 앞머리를 핀으로 , 고무줄로 묶어서 6학년 5개반 교실을 순회시킬만큼 짓궂었던 내 말에도 그대로 순응하며 추억거리를 만들었으니, 사춘기 소년의 가슴에 상처를 주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동안 연락을 끊지 않고 찾아주는 제자의 마음가짐이 고맙기만 하다.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다녀와서 취직도 했고 곧 결혼할 거라며 연락을 해온 것이다. 결혼하고 해외로 공부하러 간다며 꼭 뵙고 싶다고 힘주는 제자의 믿음직한 목소리는 아들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인생의 힘든 고개를 하나하나 잘 넘어온 제자의 밝은 목소리에 나까지 힘이 넘친다. 군대에도 다녀오고 좋은 직장에도 취직하고 예쁜 아가씨와 결혼을 앞둔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으니 이처럼 행복한 직업이 또 있을까?

교직의 기쁨을 3배로 즐기는 나만의 방법은 젊었을 때 되도록 6학년을 맡는 일이 첫째요, 쉽게 열매를 주지 말고 어려운 과정을 통해서 깨닫게 하는 마음 지도가 두번째이며, 할 수만 있다면 졸업후에도 인생의 조언자 역할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들은 나의 평생 고객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먼저 산 선배이니 진솔하게 나누는 대화 속에서 공유해 왔던 어린 날의 추억을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통할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으니, 다소 힘들고 업무도 더 많은 6학년 담임의 보람은 시간이 흐른 뒤에 10배, 100배로 다가옴을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제자의 결혼식이 기다려진다. 서울에서 치러질 제자의 결혼식에는 그 동안 만나지 못한 다른 제자들도 많이 올 테니 더 더욱 설렌다. 14년이 넘은 시간의 벽도 우리반 아이들과의 만남을 막지 못할 테니 나는 다시 과거로 날아서 추억을 건져낸다.

스물 일곱 살짜리 청년들과 숙녀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이동 교실을 상상만 해도 기쁘다. 오늘부터 미루어온 다이어트라도 해야겠다. 제자들이 못 알아보면 곤란하니 말이다.
장옥순 담양금성초/쉽게 살까, 오래 살까 외 8권 출간
ⓒ 한국교육신문 www.hangy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구독 문의 : 02) 570-5341~2 광고 문의: sigmund@tobeunicorn.kr ,TEL 042-824-9139, FAX : 042-824-9140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 등록번호 : 서울 아04243 | 등록일(발행일) : 2016. 11. 29 | 발행인 : 문태혁 | 편집인 : 문태혁 | 주소 : 서울 서초구 태봉로 114 | 창간일 : 1961년 5월 15일 | 전화번호 : 02-570-5500 | 사업자등록번호 : 229-82-00096 | 통신판매번호 : 2006-08876 한국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는 저작권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