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지역 매스컴을 대서특필하는 시청 직원의 뇌물수수 사건과, 인륜을 의심케 하는 한 아버지의 일가족 몰살 강력사건들이 우리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이러한 일들에도 불구하고 분노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준 일화가 예전에 있었기에 이렇게 몇 자 적어본다.
교육청의 직원으로 온 지 1년여가 지나가고 있다. 한 3년전 이맘때쯤 중학교 직원으로 있을 때 있었던 한 학생의 미담(美談) 하나가 생각나 지금도 내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띄게 한다.
3년전 가을경에 교장선생님께서 운동부를 위문차 방문하는데 격려금을 업무추진비에서 10만원 인출하라고 하셨다. 급히 가셔야 하기 때문에 융통해서 먼저 달라고 하셔서 결재판에 봉투를 껴 넣은채 교장실에 가다가 갑자기 뒷 건물에 일이 있어서 올라갔다 왔는데 결재판에 있어야 할 봉투가 빠졌다. 부랴부랴 다시 뒷 건물에 가봤는데 봉투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책상 위 아래를 샅샅이 훑어봐도 보이지 않았다. 불과 5분여에 생긴 일이었다. 뒷건물에 갔을 때는 쉬는 시간이라서 학생들의 내왕이 빈번한 관계로 돈 봉투가 보이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10만원이라는 돈은 없어도 그만, 있어도 그만인 돈이긴 하지만 영 개운치 않은 뒷맛이었다. 차라리 어려운 사람 도와줬거나 술 한 잔 먹어서 없앤 돈이라면 하는 어리석은 생각도 생겼다.
'그래, 내가 관리 잘못해서 생긴 일이니 내가 책임져야지. 에이, 재수없다. 요즘 애들이 어떤 애들인데 10만원 현금을 주워 오겠나'하고 체념했다.
그렇게 포기하고 하루가 지났는데 2학년 부장선생님이 내려오더니 "혹시 봉투 잃어 버리지 않았어요?"한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이기에 왜 그러시냐 했더니 자기 반 남학생이 복도를 지나가다가 봉투를 발견하여 무엇인가 하고 보니 현금이 10만원 들어 있었다고 한다. 생전 처음 만져보는 큰 현금이기에 오히려 어떻게 그냥 가져갈까 하는 貪心(탐심)보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일어났다고 한다. 약간 고민한 후에 담임 선생님에게 전달한 것이었다. 봉투를 보니 찾았다는 기쁨도 컸지만 아직도 세상 인심이 썩지는 않았구나, 세상의 동량지재가 될 우리 학생들이 양심을 지키며 살고 있구나 하는 희망이 살아났다. 아마도 지금 그 학생은 어엿한 고등학생이 되어 앞날을 설계하며 학교에 열심히 다닐 것이다.
전날까지만 해도 세상 인심을 탓하며 돈 봉투 회수에 대하여 포기하고 있었는데 그 남학생의 양심을 지킨 일화는 지금도 내게 깨끗한 양심을 지키며 공직자 생활을 하라는 따끔한 일침(一針)으로 다가오고 있다.
누가 그랬던가.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고. 몇 년 전 철로에 떨어진 취객이 열차에 받히기 전에 목숨을 걸고 뛰어들었던 의인 박모씨가 생각난다. 그는 자기가 한일에 대하여 극구 알리기를 원치 않았던 의인(義人) 중의 의인이었지만 이 미담만은 따뜻한 세상 만들기에 일조할 것 같아서 이렇게 몇자 적어봤다. 마오쩌둥의 '작은 불씨 하나가 너른 들판을 불사른다'는 말처럼 모든 공직자들의 올바른 초심(初心)이 정년까지 이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