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4일. J일보 '최고의 대우, 최악의 공교육'이라는 제하의 사설을 읽고 분노와 동시에 암담함을 느낀다. 이 나라 제4부라 하는 언론기관에 몸을 담고 있는 논자의 시각이 이렇게 편협하고 또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니 필봉이 아니라 침봉이었다.
1. 미국 중학교 교사는 1127시간 수업하는데 비해 한국 교사는 달랑 701시간 수업한다. 수업 시수를 어떻게 산출하여 비교한 것이며, 한국 교원이 좋은 대접을 받으면서 수업은 매우 적게 한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미국의 법정 수업일수는 한국에 비해 분명하게 적은데, 어찌하여 이런 비교가 나왔는지 납득하기 어렵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
2. 높은 임금을 받으면 그에 상응하는 일을 하는 게 정상인데 한국의 교사는 월급에 걸맞은 교육을 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였으며, 대다수 교사는 62세 정년 때 까지 적당히 가르치고 월급이나 받겠다는 안이한 생각에 빠져 있다고 하였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힘들게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선생님들을 게으름뱅이로 매도하고, 62세까지 적당하게 학생을 가르친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이는 객관적 사실이 아닌데도 사실을 왜곡한 보도에 대해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한다. 교사의 임금이 박봉이라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기업체 수준으로 임금을 올려주겠다는 약속은 거짓이었나? IMF가 터지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교사의 보수가 높아 보이고 인기가 상승된 것이다. 임금을 따지지 않고 학생 교육에 큰 보람을 느끼며 살아 가고 있는 원로교사를 모독하였으니 석고대죄 하라.
원로교사를 무시한 교원 정년단축으로 경험 많은 교사들을 몰아낸 자리에 경험이 부족한 기간제 교사를 끌어들여 얻은 결과는 무엇이었나? 양질의 교육은커녕 전 국민의 기본적 가치관을 마구 흔들어 버렸다. 말이 통하지 않으며,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없이 그저 그렇게 제마음대로 살아간다.
교육개혁 주체 세력들은 공교육 부실의 원인을 제공하고서도 그 책임을 느끼지 못하고 애매한 교사들에게 그 책임을 전가시키려 하니 환장할 노릇이다. 어찌하여 나이든 경험자를 밀어내고, 투표장에도 나오지 말라는 식의 자기만의 논리가 팽배하고 있다. 늙으면 인생을 포기하라는 논리가 나오지 않을까 두렵다.
3. 논자는 교사의 능력과 실력이 부족하고, 전문성을 향상시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요즈음 초·중등 교사들 중에서 석 ․ 박사를 학위를 취득한 사람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나 하는 말인가? 여름 ․ 겨울 방학이면 자비를 들여서까지 연수를 통해 전문성과 교양을 넓혀가는 것이 교사들이다. 일부 초·중등 교사들을 대학 강단에 세워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전문성과 교양을 높이 쌓아 가고 있는데 실력과 전문성이 부족하다니 환장할 노릇이다.
4. 학생들이 학교 교사 보다 학원 강사를 더 존경한다고 하였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학원 강사의 목표는 돈이고 점수지만, 교사의 목표는 기초 지식을 쌓게 하고, 학문의 길을 열게 하며, 바른 인간성을 만드는데 있다. 역할이 다른 사람을 단순하게 비교를 하려하는 논자의 논리가 의심스럽다. 좋아하는 것과 존경하는 것도 구분하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논지를 펴려 하는가?
학원 교육이 이 나라 교육을 살릴 수 있다면 학원 강사를 학교에 보내고, 학교 교사를 학원에 보내면 된다. 학교 교육과정을 학원 교육과정으로 바꾸면 이 나라의 교육은 어떻게 될까?
5. 논자는 무능한 교사에 대한 불만으로 초·중등 학생들이 해외유학과 어학연수를 떠난다고 하였는데, 과연 그럴까? 이리와 사리에 밝은 요즈음 학부모가 선생님이 무능하기 때문에 엄청난 유학비용을 부담하고 자녀를 먼 해외로 보낼까?
해외유학이나 어학연수를 가는 이유는 공교육이 부실해서가 아니라 회화능력이 좋아지고, 남다른 해외 체험이 득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어서 자녀를 유학 보낸다. 무능한 교사에 대한 불만으로 유학을 간다는 말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유학은 재력 있는 사람들의 장기 교육 투자이기 때문이다.
6. 수업을 등한시하는 교사일수록 노조활동이나 권익 찾기에 열심인 교사라고 하였는데 이는 엄청난 편견의 소치다. 수업을 잘하는 교사가 교사의 권익 활동에도 적극적일 수 있기에 말이다. 시대가 변하여 교사도 노동조합에 가입할 수 있고, 정당에도 가입할 수 있다. 우리도 머지않아 정당 활동이 허용될 것이라 확신한다. 오히려 전문적 지식과 교양을 갖춘 교사들의 바른 정치 참여가 민주화의 꽃을 활짝 피게 할 수 있다.
7. 논자는 무능력 교사를 가려내기 위한 교원평가제를 무능한 교사들이 결사반대하고 있다고 호도하고 있다. 전혀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양식 있는 교사, 경험 많은 교사, 미래를 걱정을 하는 뜻 깊은 교사들이 이를 더 반대하고 있다. 무능한 교사의 퇴출을 누가, 왜 막겠는가?
교원평가만 되면 공교육이 살아난다는 논리는 착각이다. 학문에 왕도가 없듯이 교육제도에 왕도가 없다. 어느 선진국 제도를 도입하여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의식 개혁이 선행되지 않는 한 제도만의 개혁은 모래 위의 누각일 뿐이다.
현재 타고 다니는 차를 잘 수리하여 타고 다녀도 되는데 왜 꼭 새 차를 구입하여야만 교통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는가? 교육도 마찬가지다.
일선 교사를 교원평가라는 필터로 걸렀다 하자. 어떠한 필터로 어떻게 양질의 교사를 걸러낼 것인가? 걸러진 교사들은 또 어떻게 학부모의 의식구조를 얼마나 변화시킬 것인가 예측하기 어렵다.
일선 교사를 무능하고 게으른 사람으로 몰아붙이면 교육은 훨씬 더 어렵게 되어버린다. 제대로 된 가치관을 가진 교사들이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밀어주어야 한다.
열악한 분위기 속에서 외롭게 고분 전투하며 바른 길을 걷고 있는 교사를 소외시키지 말고, 경영자와 학부모, 교육 당국은 이런 교사를 우대하고 그들이 교육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와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개혁을 하라. 그리하면 교육은 저절로 바로 된다.
잘못된 교사를 퇴출시키려 하는데 초점을 두지 말라. 착하고 성실하게 교단을 지키는 교사를 우대하는 정책에 초점을 맞추어라. 그리하면 이를 추종하려는 교사들이 많아지고 부적격 교사는 스스로 물러나 자멸하게 된다.
대다수 교사들이 교원평가를 반대하고 있는 이유는 교원평가라는 또 하나의 형식이 오히려 성실한 교사에게 피해를 주고 또 다른 요령의 교사가 생겨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교사를 도마 위에 올리면 교사의 권위는 더욱 위축되고 상대적으로 교원평가자의 권위는 올라가게 되어 교사는 눈치를 보게 되며, 소신 있는 교육을 제대로 하기가 어렵다.
교육개혁은 먼저 자기중심적이고도 이기적으로 움직여 가는 국민의 심성을 바로잡는 일이다. 학원 강사가 학교 선생님보다 더 존경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풍토가 있는 한 어떠한 교육개혁안도 무리수가 될 수밖에 없다.
공교육 부실의 원인을 왜곡하고 개인의 편견으로 교사를 무능한 존재, 게으른 존재로 호도한 J일보 사설에 대해 40만 교육자의 이름으로 '교사 무고죄'로 고발한다. 비록 스승이 메달은 못 따고 노벨상은 받지 못하였어도 제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지도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있다면 그 제자가 메달을 딸 수 있고 노벨상도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