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아가는 모든 행위에 대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직간접적으로 ‘평가’를 받으면서 살고 있다. 흔히 사람들이 모이면 다른 사람 얘기를 많이 한다. 그 자리에 있건 없건 상관없다. 호평일 수도 있고 악평일 수도 있다.
대화에서 가장 빈번하게 화젯거리로 등장하는 것은 정치인에 관련된 얘기가 으뜸이고, 자기 직업 및 직장에 관련된 얘기도 많다. 업무에 관한 얘기일 수도 있고, 동료 직원에 관한 얘기일 수도 있다. 학부모들끼리 만나면 학교 교사들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 그 때에 교사에 대한 간접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직 이성적 판단력이 약한 학생들의 단편적인 얘기에 근거한 평가일 수밖에 없는데도 철석같이 믿는다. 그 믿음들이 모여져 ‘좋은 선생님’ ‘나쁜 선생님’이 구분되어 지는 것이다.
언젠가 ‘교사 평가 필요한 것인가?’ 라는 주제로 TV 토론을 본 적이 있다. 토론자로 참석한 ㅍ중학교 학교운영위원장이란 분이 “요즘 학부모들 학력이 높아서 선생님들의 수업을 평가하는데 문제가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교원평가에 대해 적극 찬성하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학부모의 교사 수업평가에 대해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30여 년을 교단에서 학생들만을 가르쳐 온 나에게 시범수업이든지 연구수업을 하라고 하면 가능한 한 기피하고 싶다. 동료 교사들 모두가 한결같이 수업전문가이면서도 실제 수업은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는 교사가 없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수업은 전문적이면서 어려운 활동인 것이다. 교사들의 그 많은 업무들 중에서 가장 두렵고 어려운 것이 수업이라고 할 수 있다.
시범수업이나 연구수업에 참관하는 많은 교사들이 그 수업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조차도 조심스러워 하고 있다. 왜냐하면 수업은 어떤 특정한 기술을 요하는 것도 아니고 특정한 형식을 요하는 것도 아니다. 교사와 학생간의 유기적인 상황의 변화에 따라 대처해야 하며, 학생 개별화 교육에 중심을 두다 보면 사전 각본에 의해 연기를 하듯이 천편일률적인 흐름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업 참관 교사들조차 평가라는 생각보다는 소감 정도를 발표하는 경향이 많은 편이다.
그런데 학부모들이 교육학을 전공하지 않았고, 수업 실무 경험이 없을 텐데 고학력이라는 이유만으로 교사의 수업평가에 문제가 없다는 인식은 교직의 전문성을 너무 경시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더구나 한 학기에 한 두 번의 수업참관으로 해당 교사들 모두에 대해 평가할 수 있다니 어불성설이다. 전문가를 비전문가가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사리에 맞지 않다.
그렇다면 왜 학부모들의 수업평가에 자신 있다고 생각할까? 학교운영위원장으로서 그런 객관적인 과학적인 실상을 전혀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아직 어린 학생들의 단편적인 교사나 수업에 대하여 들은 얘기들이 학부모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간접적인 평가(?)로 집약되어 어떤 선생님은 어떻다고 단정해 버리는 ‘소문’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선입견을 갖게 되면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학생들의 입을 통해 좋은 교사라는 호평을 받기 위해서는 인기 있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학생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고(설사 잘못된 의견일지라도) 잘 놀아주고 편하게 해주면 좋은 선생님이라고 할 것이다. 교육적 소신을 펴기보다는 인기에 영합하는 교사가 증가할 가능성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엄한 선생님보다는 인기 있는 선생님을 원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판단이 곧 학부모들의 평가가 되어 정작 수업을 평가할 때는 과학적인 평가방법이나 절차 등은 무시된 체 평가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교사평가’에서 학부모나 학생에 의한 ‘수업평가’를 도입해서는 안 된다. 꼭 ‘수업평가’를 하고 싶다면 교육학전문가나 수업장학에 대한 심도 깊은 연수를 받은 교장이나 교감 또는 교사들로써 평가단을 구성하여 활용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인기 있는 교사보다는 교육에 대한 사명감이 투철하여 학생들을 사랑하고 교육활동에 최선을 다하는 교사가 될 수 있도록 해야겠다. 교사를 평가의 대상으로만 여기지 말고 자긍심을 갖고 온갖 열성을 다할 수 있도록 사회적 국가적 지원 확대 정책이 더욱 시급하다.
학생들이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을 만큼의 존경의 대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교권을 확립해 주는 것은 학부모나 사회 및 국가가 담당해야 한다. 또한 아직도 개선되고 있지 않은 교사의 잡무 경감과 정원의 확보에 최선을 다해 오직 학생교육에 전념할 수 있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