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대를 버리니
세상의 모든 그림들이 보입니다.
그대의 그림자가 얼마나 컸는지
나를 덮고 있었는지 놀랍니다.
이제 보니 그대는
짧은 가을의 노래였습니다.
잎새에 물이 오르는가 싶어
바라보면
어느 사이 가 버리고 없는
가을 단풍이었습니다.
그 긴 시간
알밤 하나 키우려고
밤꽃은 그렇게 산을 누볐는데
땡볕에도 태풍에도
가시돋힌 슬픔도 다 이겼는데
한 순간에
홀랑 나를 잊고 마는
그대의 무심함에 눈물이 났습니다.
아! 가을엔
알밤 하나도
홀랑 까먹기 미안합니다.
장옥순 지음 졸시 <알밥을 먹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