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체험학습을 가는 날이었다. 유치원과 1, 2, 3학년 41명이 통학버스를 타고 행동을 같이 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둘씩 혹은 셋씩 앉아서 김밥과 먹을 것이 가득 든 가방을 안고 한껏 멋을 내고 들떠 있었다.
고사리 손으로 병 따기가 어려워 "선생님 음료수 병좀 따주세요" 하며 부탁하기도 하고 과자 봉지를 뜯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받아쓰기를 잘 못해 맨날 기가 죽어 지내던 경태도 내게 과자와 껌, 음료수를 준다. 그것도 아무 말없이 그냥 내민다. 나는 눈물이 나게 고마워 "어유! 경태야, 고마워" 하며 받아 챙기고 다른 선생님들과 나누어 먹었다. 뭐니뭐니 해도 현장학습의 재미는 버스에서 맛있는 것 먹는 재미다.
그런데 아까부터 유치원생 지우가 인상을 찌푸리고 앉아 있다. 우리는 전교생 다 이름을 알고 지낸다. 얼마 안되는 학생수이기도 하고 대부분 남매나 형제, 자매가 동시에 재학하고 있기 때문에 저절로 알게 된다. 지우는 우리반 태우의 동생이라서 잘 알고 있다. 그리고 1학년 교실과 유치원 교실이 같이 붙어 있으니 복도를 지나가는 실루엣만 봐도 누군지 다 안다.
평소에도 왈가닥인 명물 지우이기에 나는 자꾸 놀려댔다. "지우야 김치~이 하고 웃어 봐" 하고 웃는 모양을 지어 줬지만 요동도 않는다. 바로 내 뒷자리에 앉았기에 자꾸 말을 걸지 않을 수 없었다.
"지우야, 즐겁지 않니? 히히 웃어 봐, (못생긴 얼굴에 인상 쓰면 더 못생겨 보이잖니?)"
그래도 눈썹은 밑으로 늘어지고, 눈 꼬리도 같이 기운다. 지우는 즈이 선생님(유치원 선생님)이 입맛 다시는 것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선생님이 지우 입에 먹을 것을 넣어 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지우가 평소 유치원 오듯이 왔어요, 먹을 것 전혀 없이요"
"아!"
나는 그때야 알았다. 지우의 표정이 왜 그리 어두웠는지를······. 태우는 뒷쪽에 앉았으니 오빠 것 같이 먹을 수도 없었고, 옆에 친구 보고 달라고도 못했던 것이다. 나는 뒷쪽에 앉은 태우에게 들리도록 큰 소리로 말했다.
"태우야, 지우 먹을 것좀 줘라, 지우 아무 것도 안 가져 왔단다."
그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여기 저기서 고사리 손들이 쏟아졌다.
"지우야"
"지우야"
'지우야'를 부르며 내민 손에는 고소미, 콘칩, 빼빼로, 껌, 밤, 감등이 들려 있었다. 지우의 보따리(가방)는 금방 배가 불러서 잠글 수가 없게 되었고 지우의 얼굴엔 금새 함박 웃음꽃이 피었다. 전전날 유치원이 차를 타고 견학을 갔다 왔다는데 지우 엄마는 오늘 행사를 그 때 한것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꼬마 친구들의 고운 마음씨를 눈물나게 체험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