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동창회, 가을 만큼 정도 깊어갑니다

2005.10.10 11:04:00


시골 동창회는 참으로 재미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동네에서 오랫동안 살았기에 만나서 몇 마디만 나누면 누군지 대충 다 압니다. 떨어져 있는 우리 형제들도 모두 같은 학교를 나왔기에 시골 동창회에 가면 모두 만납니다.

그 중에서도 동기생들의 만남이 제일 반갑습니다. 조그만 학교라서 몇 십 년만에 만난 동기라도 금방 알아봅니다. 이제 만나면 옛날에는 수줍어서 말도 못 붙이던 여자 동기생이 대뜸 나에게 질문하는 게 “너희 형님, 잘 있니?” 입니다.

“네가 우리 형님을 어떻게 아니?”

시골 학교는 보통 남녀공학에다가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을 같이 다니므로 한 동네에 살았더라면 친구뿐만 아니라 오빠, 동생, 부모님들까지 대충 압니다만 이 친구는 같은 마을에 살지도 알았는데 우리 형님을 압니다.

“너희들은 꼬맹이라 같이 놀지 못하고 주로 너희 형님들 하고 놀았다 아이가!”

그때는 가난한 시절이라 여자 아이들은 학교를 한두 해 놀고 늦게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거기에다 여자 애들은 빨리 성숙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랑 놀지 않고 형님들이랑 놀았나 봅니다.

옛날에는 여자들은 상급학교로 진학할 기회가 적었기에 시집도 빨리 갔습니다. 우리들의 아이들은 아직도 어린데 비해 여자 동기생들은 벌써 사위를 본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서 이젠 우리들을 영계(?) 취급합니다. 남녀 비율에서 여자가 더욱 많이 나오는 걸 보니 영계 같은 우리들과 노는 게 좋은 모양입니다.

“김 사장, 혈색 좋네.”
“여기 와서 술 한 잔 따라 봐라.”
“어이, 이 선생.”

하고 손짓하며 부르면 남자 동기생들은 무서워서 도망갈 준비부터 합니다. 온갖 비밀들이 다 나옵니다. ‘누가 어디에서 누구랑 뽀뽀했다’부터 온갖 비리(?)가 다 나옵니다. 그걸 듣고 모두 깔깔깔 넘어갑니다. 비리도 세월이 쌓이면 골동품이 되나 봅니다. 그러는 가운데 가을도 깊어가고 정도 깊어갑니다.
이태욱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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