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을 놀고 먹는 자로 매도하지 말라

2005.11.03 09:17:00

스승을 놀고 먹는 사람으로 매도하는 나라가 잘 될까? 교사는 상품을 생산하는 공장의 기계 부속품이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다스리는 사람이다.

S방송국의 '위기의 선생님' 기획시리즈가 교육을 바로세우겠다는 것인지 교육을 더 혼란스럽게 하자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고, 전국에서 방송을 본 교사들은 한결같이 분노를 느끼다 못해 허탈감에 빠졌다.

교육이 무엇인가?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며 남을 배려하고 도우면서 살아가는 삶을 가르치는 일이 아닌가. 한마디로 공존하는 삶을 의식화시켜 가는 과정이 교육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교육이 제 살기 위한 도구로 전락되어 극도의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로 흐르고 있다. 심하게는 남을 속이고, 죽이더라도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으로 가치관이 변하고 있다. 매사에 자기중심적인 가치관이 판을 치고 있어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조차 구분하기 어렵게 된 세상이다.

총체적인 가치 부재의 현실 속에서 학교교육을 바로 하기란 몹시 힘들고 어렵다. 바른 인간을 만들기 위해 애를 쓰는 교사를 욕하고 폭력 교사로 매도해 버리며, 인간적으로 학생을 지도하려는 교사를 무능한 교사로 시대에 뒤떨어진 교사로 취급해 버리고 있다.

귀한 자식 칭찬해 주고 편안하게만 해주면 좋은 선생님이다. 내 아이 잘 살게 하면 그만이라는 소박한 어른들의 마음이 버릇없는 아이, 자기만 아는 아이로 만들어 버렸다. 공부만 잘하면 될 줄 알았는데 대학을 나오고 어른이 되었는데도 부모의 속마음을 모르고 제멋대로 행동한다. 어설픈 자녀 과잉보호가 빚어진 서글픈 결과다.

요즈음 아이들 너무 당돌하며 자기중심적이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일에는 앞장서고 자기에게 손해가 되면 제각 물러선다. 희생정신과 인내심도 부족하고 남을 의식하지 않으며 배려하는 마음도 부족하다. 너무 아이 중심으로 키운 결과다.

아이의 인권이 있으면 선생님의 인권도 있고 부모의 인권도 있다. 그런데 아이의 인권만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여러 번 있다. 그래서 학교 교육을 제대로 하기가 더욱 어렵다. 학교 교육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이유를 교사들에게 전가시키려 한다. 그동안 가정과 사회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유신, 5공, 문민, 국민, 참여 정부를 거치면서 수업을 접어가면서까지 공문처리를 하고 교육개혁에 동참하여온 교사를 격려는 해주지 못할망정 공교육 부실에 대한 책임을 지라니 너무 황당하다.

초 ․ 중등교육은 인성교육이 우선이고 그 다음이 지식 교육이다. 그런데 학부모가 바라는 것은 바른 인성 지도보다는 성적만 향상시켜 주면 그만이라 생각한다. 공부한다는 핑계로 아이들의 언행을 일찍부터 바로 잡아주지 못하고, 잘못을 저질러도 쉽게 용서를 하거나 묵인해 버렸다. 내 아이가 귀하기에 매를 대는 교사를 폭력 교사로 몰았고 잘못을 꾸짖는 교사를 싫어하였다. 거액의 사교육비를 투자해 보았지만 얻은 것은 몇 점의 점수일 뿐 아이는 버릇이 없어져 버렸다.

SBS의 '위기의 선생님' 보도 기사를 보면 아이들이 "학교에서는 자고 학원에 가서 공부한다"고 하였는데 학원에도 가지 못하는 농어촌 아이들은 얼마나 되는지 알고나 하는 소리인가? 아이들이 자는 이유는 교사의 지도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학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였기 때문에 지쳐서 자는 현상이다.

서울이나 일부 도시 학교의 현실을 전국에 있는 학교가 다 그런 것처럼 호도하지 말았으면 한다. 학교에서 아무리 잘 가르쳐 놓아도 이에 만족하지 않은 학부모가 있다면 학생이 원하지 않아도 부모는 아이를 학원에 보낸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학교와 학원을 단순비교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설립 목적이 다르고 교육 과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학원이 학교보다 학생지도에 더 적극성을 보인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요즈음 아이들 생활지도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나 있는가. 학원 강사가 생활지도를 하게 된 연유는 학생들의 태도가 날로 달라지기 때문에 학원 질서 유지와 수입 확보를 위한 자구책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전문 상담교사가 하기에도 어려운 학생 생활지도를 사탕발림식으로 하여 오히려 학생들의 버릇을 나쁘게 하지나 않을까 두렵다.

요즈음 학생들이 이렇게 말한다.
"선생님 생일 파티 해주세요."
"왜, 학교에서 네 생일 파티를 해주어야 하는데?"
"학원에서는 생일 파티를 해 주는데."

이렇게 맹랑하게 말한다. 모든 학교가 학생들의 생일 파티를 해준다면 학교 교육이 어떻게 될까?

때리지도 말라, 욕하지도 말라. Mp3를 들어도, 휴대폰을 사용해도 이제는 말릴 명분과 힘조차도 없어져 버리고 있다. 이를 엄하게 다스리려 하면 부모는 내 돈 주고 사 주었는데 왜 사용을 못하게 하느냐고 반문을 한다. 부모는 사용하라고 사주고, 학교는 사용하지 말라고 지도하려니 갈등만 생겨 있다. 그렇다고 학교가 매일 수많은 학생들의 휴대폰을 보관하였다 내어주는 일도 만만치 않다.

휴대폰 문제의 근원은 왜 학생들이 바쁘게 사업하는 사람도 아닌데 휴대폰을 꼭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다. 급한 연락이 있으면 교무실이나 공중전화를 이용하면 된다. 학교에 공중전화를 더 많이 설치하면 해결될 일이라 본다. 부모가 필요해 휴대폰을 사주었다면 학교에서 일과 시간에는 절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가정교육을 철저히 하라. 괜히 교사의 무능으로 착각시키지 말았으면 한다.

우수한 인재들이 어렵게 임용고사를 거치고 교사가 되었다니 반가운 소리다. 대기업에 취업하기를 바라던 학생들이 교직을 원하다니 교사의 한 사람으로서 자부심도 생긴다.

그런데 신임 교사가 의욕적으로 자기 계발이나 교수 활동을 할 수 없는 이유가 선임 교사들 때문이라니 가관이다. 잘못된 관행이 있으면 학교에서 고쳐보려는 의지도 없이 어떻게 아이들을 지도하겠다는 말인가. 아이가 원하면 원하는 대로 그냥 방치할 교사상이다. 취업이 어려우니까 교사라도 한 번 해 볼까 하는 심정으로 들어온 기회주의자인가?

유신 시대에도 옳은 것을 주장하며 권력에 저항하다 투옥된 교사들이 숱하게 있었는데 요즈음처럼 자유 분망한 시대에 동료교사 핑계를 대다니 말도 안 된다. 그런 의지로 교사직을 선택하였다면 교직을 떠남이 마땅하다.

요즈음 교사들의 수준은 대단하다. 자의건 타의건 교사의 과반수 정도가 대학원을 나오고 있다. 국비도 아닌 자비로 자기 계발을 하며 수업에 임하고 있는 선임 교사들을 늙은 교사, 무능한 교사로 몰아 밀어내려는 속셈이라면 하루 빨리 교단을 물러서라. 빠르게 다가오는 고령 사회에 대한 대안은 세워주지 못하면서 자신의 자리만 만들려 하다니 교사로서의 자질이 없다. 젊은 사람이 중요하면 늙은 사람은 더 중요하며 사회 문제를 보는 거시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교육은 경험의 연속 과정이다. 노련한 경험이 바탕이 되었을 때 교육의 효과는 엄청나게 나타난다. 오늘날 사회의 각 분야에서는 젊은이들로 세대교체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교육 현장은 다른 분야와는 다르다. 스승은 오래될수록 무게가 있고 그 영향력이 더 크기 때문이다. 어린 나이에 분야별 천재는 나올 수 있어도 훌륭한 스승은 나오기 힘든다. 교육의 장은 남녀노소와 자연이 어우러져 함께 하는 공존의 장이 되어야 한다.

교원평가를 행여 보험회사에서 보험 계약 액수를 보고 평가하려는 식으로 착각하고 하려 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그러한 발상으로 교원 평가를 한다면 이 나라 교육의 장래는 암담하다.

교사가 행하는 수업의 질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사의 바른 행동거지다. 교사의 인품이 하나의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박사 선생님의 수업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열정을 지닌 선생님을 더 좋아한다.

한 시간 잘하는 수업만 보려면 EBS 수업을 권하고 싶다. 그런데 왜 학생들은 EBS 수업에 의존하지 않고 학교 선생님의 수업을 더 좋아할까? 가르치는 기술은 좀 부족하여도 공부하게 하는 선생님이 더 훌륭한 선생님이다. 인품이 넉넉한 사람다운 사람에게 배운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고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어떻게 하면 그런 교사를 찾아낼 것인가? 교원평가는 반드시 그런 교사를 찾아내고 우대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교원평가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성과급과 근무 평정을 연장자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하였는데 그렇지 않다. 나이든 교사가 교감, 교장이 못 되어 있지 않은가? 성과급 문제도 마찬가지다. 교사 평가는 총체적 평가를 하여야 하는데 그가 그렇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교문에서 매일 지도를 한 교사와 교문에 서지는 않았지만 그윽한 인품으로 학생들에게 감화를 주는 일을 하였다면 두 선생님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여야 할까? 교원 평가는 업무량이나 시간으로 따질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성과급을 나이든 사람에게 더 드리게 된 이유는 아마 자식 대학 교육비도 부담해야 하니까 너그럽게 봐주는 예우가 아닐까? 이가 뭐 그리 큰 잘못인가. 나중에 젊은 교사도 그날이 곧 다가올 터인데 말이다. 학교의 성과급은 보험회사의 성과급과는 다른 특수성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야 한다.

스승의 봉급을 단순한 돈의 액수로 따지는 세상이 씁쓸하다. 더욱이 교사직을 두고 철밥통이라니 더욱 섭섭하다. 교사는 공장의 생산라인에서 생산을 하는 근로자와는 차별이 된다. 아무나 사람을 바꾸어도 생산이 되는 그런 자리는 분명 아니다. 과목별 교사는 그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전문인이다. 나이든 교사일수록 그 전문성은 높아져 간다.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노는 것처럼 보여도 전혀 그렇지 않다. 비록 학위 논문은 없어도 학생들을 이끌어가는 인품과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 박사도 있어야 하지만 늙은 스승도 있어야 한다.

스님과 목사님을 급여의 액수로 평가하다니 될 일인가? 교사가 돈을 많이 받는 직업이 되다니 놀랄 일이며, 놀고먹는 집단으로 매도하고 있으니 더욱 분노가 치민다. 법으로 정해진 정년을 교원평가라는 어설픈 잣대로 몰아내려 하지 말라.

교육에 대해서 말할 자유는 있지만 아무렇게나 말하지 말라.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눈을 맞아 애꾸가 된다. 교육 관료들은 임기 동안 어설프게 무엇인가 개혁하겠다는 의지로 졸렬한 대안을 내놓지 말았으면 한다. 잘못된 제도의 시행으로 많은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힘들어한다. 지금까지 잘못된 제도와 정책에 대한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개혁만 내걸다 자리를 나가면 그만인 사회에서 국민들이 무엇을 배울 것인가?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바른 스승 밑에 바른 제자가 태어난다. 사회는 바른 스승이 있어도 이를 보지 못하고 있으니 바르지 못한 교원들이 더욱 날뛰고 있다.

교육에 관심을 가진 자들이여 잘못하는 사람을 벌하고 격리시키려는 연구를 우선하지 말고, 잘하는 사람을 존경하는 분위기와 우대하는 제도를 만드는데 우선순위를 두고 연구하고 노력하라. 그리하면 바른 교육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정병렬 포여중,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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