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노랗다

2005.11.11 11:25:00

먼 산은 붉게 물들어 가고, 하늘은 금방이라도 폭포 되어 쏟아질 듯 파랗다. 봄부터 길고 긴 날들을 진한 향기 만들면서 국화꽃이 피었다. 누런 벼는 사라지고 그루터기 사이사이로 늦가을바람이 키 낮추며 불어와 교정의 샛노란 은행잎 꽃가루를 흩날린다. 은행잎 쌓여 포근한 이불처럼 검은 아스팔트의 모습을 감춘다.

가을은 노랗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변에는 은행나무가 많아졌다. 가로수로도 마을의 공터나 교정의 뒤뜰에도 은행나무가 많아졌다. 바람이 스치면 노란 은행잎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차 지붕에도 유리창에도 노란 부채 살 같은 은행잎 천지다. 쌓인 은행잎 더미에 손을 넣으면 포근하고 따뜻할 것 같다. 나의 주변은 온통 노랗다.

어릴 때 나무가 무척이나 귀한 고장에서 자랐다. 온통 평야뿐인 광활한 너른 들녘에서 자랐기에 나무를 잘 모르고 자랐다. 30여 리 떨어진 야산에 있는 소나무 외에는 별로 아는 나무가 없었다. 아니 포플러와 아카시아는 많았다. 농업용수로 제방이나 신작로 가장자리에 심은 나무들이다. 은행나무는 미술책에서나 보았었다. 노란 부채 같은 은행잎은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다른 나뭇잎에 비해 노란색이 너무 진해서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노란 은행잎을 실물로 본 것이 언제인지 자세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중학교 때쯤인 것 같다. 중학교 교정에는 은행나무가 있었다.

아침마다 아이들은 노란 가을을 쓸어낸다. 흉물스런 검은 아스팔트가 드러나게 자꾸만 쓸어낸다. 가을을 밟을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간다. 포근하고 두툼하게 쌓여있는 노랑들을 헤치면서 걸어 보고 싶은데 쓸어다가 한쪽 구석의 깊은 웅덩이에 버린다. 그 곳에서 자연으로 돌아가 새로운 생명을 키워나갈 귀한 거름이 되겠지만 낙엽을 꼭 쓸어내야만 하는 것일까? 귀한 자연의 선물인데 그렇게 매정하게 버려야만 할까?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걸어보고, 푸근하게 쌓인 노란 자연을 발로 헤치면서 걸어보고, 정말 예쁜 은행잎 두세 개 책갈피에 넣어보고, 또 그 위에서 뒹글고 싶은데 모두 모아서 버린다..

나는 일부러 주차장의 은행나무 아래에 주차를 한다. 퇴근할 때 나의 차 위에는 온통 샛노란 은행잎들의 쉼터가 되어있다. 앞 차유리에 소복하게 쌓여있는 은행잎들을 차속 운전석에서 바로보는 느낌이 색다르다. 마치 은행잎들 따뜻한 품속에 있는 것 처럼 아늑하기도 하다. 금년 가을 날씨가 여느 해와는 다르게 고른데다가 아직 서리가 내리지 않아 노랑의 정도가 더욱 선명하고 예쁘다. 쓸어내지 않고 그냥 출발한다. 하나 둘씩 바람에 날리어 사라지지만 와이퍼에 찰싹 끼어 집에 도착할 때까지도 잘 버티는 놈도 있다. 지금은 꽤 여러 개가 끼어있다. 나는 그 노랑들이 바람에 빠져 나가지 않기를 바라면서 오늘도 집에 도착했었다.

이제 곧 서리가 오면 그나마 남아 버티던 노란 은행잎들이 주룩주룩 쏟아질 것이다. 정말 미련 없다는 듯이 한 잎도 남지 않고 모조리 떨어질 것이다. 추위가 오면 앙상한 가지는 내년 봄을 생각하면서 잎망울이 강한 추위에 얼지 않기를 바랄 것이다. 다시 올 봄을 생각하면서 계절에 순응할 줄 안다. 사람도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면서 참으로 아름다운 마음을 갖기를 소망한다.

내 주위의 가을은 온통 노랑이다. 적어도 서리가 올 때까지는…….
이학구 김제 부용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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