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도난마’식 교원평가는 위험한 발상

2005.11.16 13:52:00

고사성어 ‘쾌도난마(快刀亂麻)’는 ‘날랜 칼로 복잡하게 헝클어진 삼을 베다. 곧 어지럽게 뒤얽힌 일이나 정황(情況)을 재빠르고 명쾌하게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남북조(南北朝)시대 북제(北齊)의 창시자 고환(高歡)은 난폭했지만 전투에는 용감했던 북방 변경 지대의 선비족 군사의 힘을 배경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정권을 이을 아들을 여럿 두고 있었다. 하루는 이 아들들의 재주를 시험해 보고 싶어 한 자리에 불러들여 뒤얽힌 삼(麻)실 한 뭉치씩을 나눠주고 실마리를 잘 풀어 추려내 보도록 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한 올 한 올 뽑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양(洋)이라는 아들은 달랐다. 그는 잘 드는 칼 한 자루를 들고 와서는 헝클어진 삼실을 싹둑 잘라버리고는 득의에 찬 표정을 짓고는 놀란 아버지 앞에 나아가 "어지러운 것은 베어버려야 합니다(亂者須斬·난자수참)" 라고 말해 주위를 놀라게 한 연유로 해서 ‘快刀亂麻’란 성어가 생겨났다.

그러나 큰일을 해낼 인물이 될 것으로 믿고 정권을 물려준 아버지의 기대와는 달리 훗날 문선제(文宣帝)가 된 고양은 백성들을 못살게 굴며, 아버지 앞에서 했던 것처럼 술김에 재미로 사람을 죽이곤 하는 폭군(暴君)이 되었다. 이에 중신들도 어떻게 할 수 없어 머리를 짜낸 것이 사형수를 술 취한 고양(문선제) 옆에 두는 것이었다.

복잡하게 뒤얽힌 일을 앞뒤 정황을 무시한 채 ‘쾌도난마’식으로 재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훗날 돌이킬 수 없는 부직용과 후유증을 낳을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당초 교·학·정 협의기구를 통해 합의시행을 약속했던 교육부가 그동안 음흉하게 감추고 있던 속셈을 드러내면서 돌연 태도를 바꿔 교원평가 시범운영을 전격 추진을 강행하는 것, 이것이 바로 참여정부의 쾌도난마식 정책이 아니고 무엇인가.

폭군 문선제의 옆에 사형수를 두어 제물로 삼았듯이 정부는 교육공약은 팽개치고, 학교자치를 무시한 채 교육비전문가인 교육부장관을 앞세워 죄 없는 교원을 제물로 삼아 교직 흔들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교육부가 지난 5월에 발표한 당초의 교원평가 방안이 많은 문제점이 있음을 시인하고 ‘학교교육력 제고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한 것이 6월 24일, 그러나 4개월여 동안 교원평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는 고작 열흘에 불과했다. 그동안 부적격교원 대책과 학부모단체의 탈퇴를 핑계로 한 공전 끝에 10월 24일에야 논의가 재개되었다.

그런데 교육부는 일 주일밖에 남지 않은 10월 말까지 합의가 안 되면 11월 1일부터 강행하겠다고 ‘1주일만’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교육개혁을 통한 교육의 질 향상이라는 명분을 내건 중차대한 정책 결정을 논의하는 과정이었다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애초부터 교육부는 합의이행에는 뜻이 없고 오히려 괴멸을 유도했음을 알 수 있다.

열악한 교육여건과 불합리한 입시제도하에서 학생들이 교육권을 침해당하고 있는데도 계속 교원들만 제물로 삼고 정권유지를 위해 ‘쾌도난마’식으로 교육을 이용한다면 결국 불행을 초래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교원평가가 전문성 신장에 기여하고 학교현장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40만 교원의 동참과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은식 충북영동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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